1906년 개성서 개교…한국전쟁 때 피란 와 1952년 인천 정착
1938년 송도고 교직원·학생 |
(인천=연합뉴스) 강종구 기자 = 인천 송도고등학교가 개교 114년 만에 100회 졸업생을 배출했다.
송도고는 지난 8일 교내 체육관에서 100회 졸업식을 개최해 343명의 학생이 졸업했다고 25일 밝혔다.
100차례의 졸업식을 치르기까지 일제 강제 휴교, 한국전쟁 피란 개교 등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송도고는 대한민국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인재 양성의 요람 역할을 묵묵히 해 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1938년 금강산 만물상으로 수학여행 간 송도고 학생들 |
송도고는 원래 인천이 아니라 북한 개성에서 1906년 10월 3일 한영서원이라는 이름으로 개교했다.
윤치호 선생이 미국 남감리회 선교부의 후원을 받아 한영서원을 설립하고 초대 원장으로 취임했다.
개성에서 시작한 학교여서 학교의 한자 이름도 개성 송도(松都) 지명과 같다. 인천 송도국제도시의 한자 '송도(松島)'와는 다르다.
일제의 사립학교 규칙 개정에 따라 한영서원은 1917년 사립 송도고등보통학교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이듬해 1918년 졸업한 학생들이 1회 졸업생이 된 것도 이런 배경이 작용했다.
이후 송도고 학생들은 1919년 3·1 만세운동 때 개성 거리로 나가 동참하고 1929년 12월에는 광주학생운동 지지 시위를 벌이는 등 항일투쟁의 선봉에 서기도 했다.
1952년 인천으로 피란 와 재개교한 송도고 |
1945년 광복의 기쁨을 맞이했지만 한국전쟁 발발로 송도고는 1950년 12월 13일 무기한 휴교를 단행하고 정들었던 개성 교정을 뒤로 한 채 피란길에 오르게 된다.
전쟁이 생각보다 장기전 양상으로 흐르자 동문들은 1952년 봄 부산에서 재단 이사회를 열고 일단 임시로 학교를 재개교하기로 결정했다.
임시 학교 후보지로 영등포·수원도 거론됐지만 경기도와 강화도에 흩어져 있는 개성과 연백 피란 학생을 고려, 인천에 학교를 다시 세우기로 의견을 모았다.
결국 1952년 4월 인천시 중구 송학동 판잣집에서 피란 학생 500여명을 수용해 학교를 다시 열었다.
정전협정이 체결된 뒤인 1953년 11월에는 지금의 송도중학교 자리(인천시 중구 답동)로 이전하며 새로운 둥지를 마련하게 됐다.
송도고 100회 졸업식 |
송도고는 재정 여건이 넉넉하지 않았지만 동양제철화학 창업주인 이회림 회장이 1982년 송도학원 이사장으로 취임하면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다.
개성 출신인 이 회장의 통 큰 지원 덕분에 송도고는 재정 상황이 호전됐고, 1983년 9월에는 학교를 새로 지어 인천시 연수구 옥련동 현재 건물로 이전했다. 송도중은 원래 있던 답동 교정에 아직 남아 있다.
송도고는 당시만 해도 인천에서 가장 외진 해안 쪽으로 이사를 한 탓에 학생과 학부모 사이에 인기가 없었다.
그러다가 1990년대 연수 신도시 개발과 2000년대 송도국제도시 개발 등으로 우수 인재 확보 기회도 늘어나면서 중흥기의 서막을 열게 됐다.
송도고의 최근 명문대 진학률은 전국 일반고 중 최상위권에 속하고, 인성 교육과 글로벌 리더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들도 다양하게 운영되고 있다.
송도고 교정 |
100차례의 졸업식을 거쳐 사회에 진출한 송도고 동문 2만8천여명 중에서는 정치·경제·체육·문화 등 각 분야에서 명성을 날린 이들도 적지 않다.
한국인 최초의 물리학 박사인 최규남 전 문교부 장관, 한국의 슈바이처 장기려 박사, 우리나라 나비 이름의 70% 이상을 지은 한국의 파블로 석주명 박사가 송도고 출신이다.
또 최제창·우만형·이규현·이동원 등 장관 출신과 조진형·최용규·민경욱 등 전·현직 국회의원도 즐비하다. 군에서는 송도고 출신 장성들의 별을 합치면 40개가 넘는다.
또 유희형·김동광·이충희·정덕화·강동희·신기성·김승현 등 대한민국 농구계를 주름잡던 스타플레이어들도 모두 송도고 출신이다.
정규성 송도중고등학교 총동창회장은 "송도고는 100여년간 격동의 역사 속에서도 행복한 꿈을 꾸는 인재 양성에 주력해 왔다"며 "한 세기 넘게 쌓아 올린 전통 사학 명문의 위상을 앞으로도 이어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iny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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