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사는 특히 “한ㆍ미 워킹그룹에서 한ㆍ미 간 마찰이 있느냐를 지레 걱정하는데, 지금까지 (워킹그룹에서) 미국이 거절한 것이 없다”며 “워킹그룹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현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이어 “(워킹그룹 협의는) 유엔 안보리 제재 위원회에서 문제가 없도록 사전 준비하는 것”이라며 “불편한 점도 있지만, 이 단계를 거치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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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 남북대화 막히자 워킹그룹 때리기
지난해 5월 서울 종로구 외교부에서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한미 비핵화·남북관계 워킹그룹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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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사의 이날 언급은 최근 한·미 워킹그룹을 놓고 벌어진 논란을 의식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연초 남북 교류를 강하게 띄우는 와중에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가 “제재를 촉발하지 않도록 한ㆍ미 워킹그룹과 협의해야 한다”고 언급한 게 발단이었다. 여권에선 ‘내정 간섭’이라고 반발하면서 워킹그룹이 논란의 중심에 서는 모양새가 됐다.
워킹그룹은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가 주축이 돼 미국 국무부 대북 협상팀과 협의하는 통로다. 2018년 중순 스티븐 비건 대북특별대표가 임명된 후 그해 11월 만들어졌다. 그 뒤 1년 넘는 동안 남북 철도 연결사업 착공식을 위한 대북제재 면제 건 등을 협의해 왔다.
그러나 워킹그룹의 성격을 놓고 '제재 면제를 받기 위한 통로'라는 인식이 정부 일각에 자리 잡으면서 '남북 관계의 훼방꾼'이란 의혹의 눈초리가 있었다. 이번 해리스 대사의 발언에 정부·여당이 유독 민감하게 반응한 것도 이런 불만이 누적된 결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당사자인 외교부는 반발이 여권발이라는 점에서 일단 침묵을 지키고 있다. 그러나 외교가에서는 “남북문제 교착의 원인을 워킹그룹에 돌리는 건 무리”라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김홍균 전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22일 “제재 면제 여부를 결정하는 건 워킹그룹이 아니라 유엔 대북제재위”라며 “이 절차는 한ㆍ미 워킹그룹이 없어도 밟아야 하므로 우리 입장에선 오히려 워킹그룹을 통해 일이 빠르게 진행된 측면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워킹그룹을 남북 협력의 '족쇄'인 양 보는 것은 팩트가 아니라는 얘기다.
실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의 제재 면제 절차는 보통 서너 달이 넘게 걸린다. 하지만, 워킹그룹 협의를 거친 철도 착공식이나 이산가족 상봉 사례 등을 보면 한 달로 줄어들었다. 또 워킹그룹 안에는 미국의 독자 제재 담당인 재무부 관계자들도 포함돼 미 정부의 이해를 넓히는 효과도 있다.
제임스 김 아산정책연구원 미국연구센터장은 “워킹그룹 출범 배경을 되짚어 보면 2018년 하반기 북·미 대화 교착 국면에서 미국이 한국과의 공조를 통해 대화 동력을 찾으려 했던 측면이 있다”며 “반대로 남북 대화가 단절된 지금 시점에서 워킹그룹 무용론이 국내에서 나오는 것은 한국에도 절대 유리하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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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관광도 결국 워킹그룹 통할 듯
지난해 10월 조선중앙통신이 공개한 금강산관광지구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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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개별 관광 문제도 한·미 워킹그룹에서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외교부 당국자는 다만 “워킹그룹의 협의 대상이 될지, 된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을 다룰지를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미국도 먼저 한국이 구상하는 구체적인 관광의 형태가 정해진 뒤 논의하자는 입장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관광객의 소지품에 대한 면제를 워킹그룹을 통해 처리할지, 자율 관광인 만큼 제재 문제도 개인의 책임으로 둘지를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 워킹그룹의 역할은 대폭 축소되겠지만, 복잡한 제재 규정 해석을 개인에게만 맡길 경우 추후 한국의 대북제재 위반 문제가 불거질 위험성이 있다. 이에 따라 조만간 한·미 워킹그룹 회의가 개최될 것이라는 말도 들려온다.
한편, 한국의 개별 관광 추진과 관련, 버지니 바투 유럽연합(EU) 외교안보정책 대변인은 21일(현지시간) 자유아시아방송에 “대북 제재에 따라 관광은 금지되지 않지만, 대북 송금이나 여러 제한사항이 여전히 적용된다"며 "북한과의 관여 범위는 유엔 안보리 결의와 일치돼야 한다”고 밝혔다. 미 국무부의 입장과 결을 같이 하는 것이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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