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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매경포럼] 플랫폼 시대, 혁신과 독점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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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배달의민족 운영사인 우아한형제들과 독일계 기업인 딜리버리히어로(DH)의 합병 승인 여부를 놓고 논란이 뜨겁다. 요기요와 배달통 대주주인 DH가 배달의민족까지 인수하면 국내 배달 애플리케이션(앱) 시장의 99%를 차지한다. 더 이상 경쟁할 필요가 없어지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벌써부터 수수료 인상과 배달 기사에 대한 처우가 나빠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소상공인들이 두 기업의 결합을 반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부 정치권과 시민단체들은 소상공인 편에 가세해 합병 심사에 들어간 공정거래위원회를 압박하고 있다. 우아한형제들 쪽에서는 합병 이후에도 별개 법인으로 운영하며 경쟁 체제를 유지하겠다지만 결국 독점 폐해가 나타날 것이라고 이들은 주장한다. 수익을 추구하는 기업 속성상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논리는 배달 앱 시장점유율만 봤을 때 얘기다. 배달 앱은 '플랫폼을 통한 배달'이라는 신개념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장과 다양한 혁신을 창출하고 있는데 이런 측면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배달 앱에 대한 소상공인과 배달 기사들의 불만이 적지 않지만 배달 앱의 등장으로 소비자 편익이 늘어난 것만은 부정할 수 없다. 식당에 전화를 걸어 음식을 배달시켜 먹을 때에 비해 소비자 선택 폭이나 만족도가 높기 때문이다. 공유차량과 공유숙박 앱이 소비자 편익을 높인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다른 플랫폼 시장과 마찬가지로 이용자가 많아질수록 배달 앱 서비스도 진화할 것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배달 앱을 배달 사업의 하나로 본다면 독점 여부를 따지는 기준도 달라진다. 배달 앱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지만 지금도 음식을 배달시키는 사람 10명 중 8명 이상이 전화를 이용한다. 배달 앱의 잠재력이 크다는 뜻이다. 독과점을 이유로 합병을 불허하면 소비자 편익이 커지고 성장 가능성이 높은 서비스와 혁신을 정부가 막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이 배달의민족 합병과 관련한 질문을 받고 "혁신을 촉진하는 측면과 독과점에 따른 소비자 피해 측면을 균형 있게 다뤄 보겠다"며 애매한 답변을 내놓은 것도 두 기업의 결합이 내포한 '독점과 혁신의 딜레마' 때문인 것으로 볼 수 있다.

공정위가 모두가 만족할 해법을 내놓을 수는 없겠지만 합리적인 타협점을 찾는 일은 가능하다. 합병을 승인하되 배달 시장에 또 다른 혁신 기업이 나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다만 배달 앱 시장의 경쟁 체제가 구축될 때까지 수수료 인상이나 수수료 할인 축소 등 소상공인 피해로 이어지는 영업을 한시적으로 제한할 필요는 있다. 그렇다 해도 배달 앱의 서비스 혁신을 막아서는 안 된다. 물론 상당 기간 독점이 해소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배달 앱 시장에 도전하려 하는 후발 주자를 지원하는 정책이 필요한 이유다. 규제로 인한 걸림돌이 있으면 즉시 제거해야 한다. 제2, 제3의 배달의민족이 나오면 독점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네이버와 카카오 등 기존 플랫폼 기업들이 배달 시장에 뛰어들도록 유인책을 쓰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어쨌든 소비자 편익을 높이고 신규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 궁극적인 정책 목표가 돼야 한다.

플랫폼은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5세대(5G) 이동통신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에 최적화된 사업이다. 구글과 아마존, 페이스북 등 우리 시대 혁신을 이끌고 있는 기업들은 대부분 플랫폼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플랫폼의 본질은 '규모의 경제'다. 덩치가 커질수록 수익률도 높아진다. 그러니 독점 논란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각국 정부는 어디까지 이들을 규제해야 혁신을 해치지 않으면서 독과점을 막을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공정위도 당장 완벽한 답을 내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혁신과 독점의 딜레마를 풀 솔로몬의 지혜가 절실하다.

[장박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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