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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필동정담] 첨단 告訴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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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사기범죄율 1위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매년 25만건 안팎의 사기사건이 일어나고 성인 100명당 1명 이상이 사기 피해를 당한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엔 항상 억울한 하소연이 넘치고 언론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수시로 사기주의보를 날려도 피해자는 좀체 줄어들지 않는다.

대인관계와 거래행위에서 경제력에 걸맞은 계약문화가 정착되지 않은 탓에 눈 뜨고 코 베이는 사례는 주변에 너무 흔하다. 사기 피해가 많다 보니 법원도 크고 작은 사기사건 처리에 골머리를 앓는다. 세계적으로 가장 일반적인 형사사건은 절도지만 유독 한국은 사기가 절도를 훨씬 능가하는 특이한 나라다. 세계 최고 교육 수준 덕분에 범죄 유형도 몸보다 머리를 쓰는 쪽으로 진화했다고 위안을 삼아야 할까.

더구나 사기사건을 남의 일로만 여기던 사람들이 막상 본인이 피해 당사자가 되면 어찌할지 몰라 쩔쩔매게 된다. 정보기술(IT) 강국답게 전자소송 시대가 되면서 법적 대응이 기술적으론 한결 편리해졌지만 내용 면에선 여전히 낯설고 두려운 작업이다. 난해한 서류 작성과 절차, 콧대 높은 변호사 의뢰는 경험 없는 사람들에겐 거대한 장벽처럼 느껴진다.

그런 고충을 해소해주기 위해 최근엔 사건 내용만 입력하면 자동으로 법적 절차를 대행해주는 첨단 애플리케이션까지 등장했다. 한 변호사가 개발한 '고소하게' 앱과 웹은 10만원 미만의 소액으로 내용증명, 소장 작성과 접수를 해주는 법률 서비스다. 더 나아가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사건 내용을 말로 설명하면 자동으로 서류를 만들어주는 기법도 연구 중이라고 한다.

4차 산업 기술을 접목한 '고소의 첨단화' 추세는 마냥 반가운 현상은 아니다. 한국은 사기 못지않게 무고(誣告)도 횡행하기 때문에 '고소 권하는 사회'의 부작용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적어도 억울한 피해자들이 돈이 없어 법률 장벽 앞에 좌절하는 사례를 줄일 수 있다면 나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이동주 비상임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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