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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충무로에서] 위법한 압수수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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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54·사법연수원 19기)이 지난 13일 직권남용 등 모든 혐의에 대해 1심 무죄 판결을 받았다. 지난해 3월 기소 이후 10개월 만이다. 보도용(개인정보 등 보호) 판결문을 보면, 어떤 특허사건 요약 문건을 후배 연구관에게 작성시켜 보고받고 이를 청와대에 전달하는 데 공모했다는 게 주요 혐의다. 그 사건이 박근혜 전 대통령 지인들 사건이라서 청와대와 사법부 간 '거래 의혹'을 뒷받침한다는 주장이다. 재판부는 검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위법한 압수수색 등 수사의 문제점을 상세하게 지적했다.

검사는 그 특허사건 자료 압수를 위해 관련 사건 번호로 유 전 연구관 컴퓨터를 수색할 영장을 발부받았다. 그러나 기대했던 자료가 검색되지 않자 임의 변형한 검색어로 어떤 자료들을 찾아냈고 이 자료들 리스트가 나타난 모니터 화면을 촬영해 증거로 제출했다. 재판부는 "검사는 이 사건 영장 집행 과정에서 영장 기재 범죄사실과 전혀 무관한 별건 혐의사실에 대한 증거인 이 사건 모니터 화면 사진을 압수하였음에도, 피고인에게 압수물 목록을 교부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압수물 목록은 피압수자 등이 압수 처분에 대한 준항고를 하는 등 권리행사 절차를 밟는 가장 기초적인 자료가 되므로, 수사기관은 이러한 권리행사에 지장이 없도록 압수 직후 현장에서 압수물 목록을 바로 작성하여 교부해야 하는 것이 원칙(대법원 2009년 3월 12일 선고 2008도763 판결 참조)"이라고 했다. 특히 "검사는 이 사건 영장에 기재된 압수할 물건과 수색 방법의 제한을 명백하게 인식하고 있었으면서도 의도적으로 위법하게 압수 절차에 나아간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결국 압수할 물건이 없었던 이 사건에서 영장의 집행 과정을 보다 투명하게 진행하기 위하여 굳이 사진 촬영이 필요했는지도 의문"이라고 밝혔다. 검사는 '디지털 증거 수집 및 분석 규정(대검찰청예규 410호, 2006년 11월 21일 제정) 9조 3항' 등을 근거로, 촬영은 적법하다고 항변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위 규정은 2012월 11월 6일 대검찰청예규 616호로 개정되면서 삭제되었으므로 이 사건 모니터 화면 사진 촬영의 근거가 될 수도 없다"고 기각했다.

유 전 연구관은 압수수색 당시부터 검사에게 위법한 압수수색을 계속 문제 삼았고 이는 판결문에도 적시됐다. 그러나 평범한 시민들은 압수수색을 당해도 어떤 위법이 벌어지는지 잘 모른다. 이 판결문이 널리 읽히길 바란다.

[사회부 = 전지성 법조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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