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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World & Now] CES2020에서 얻은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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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개인적으로 CES 2020은 놀랍지 않았습니다. 훌륭한 전시가 없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무언가 세상을 뒤흔들 만한 '기대 이상의 그 무엇(Next Big Thing)'이 확 들어오지 않았다는 측면에서 그렇습니다. 소니의 전기차, 현대차의 전기헬리콥터, 도요타의 스마트시티, 삼성이 만든 가정용 로봇 등 국내외 언론들이 'CES 2020에서 눈여겨볼 아이템'이라고 선정한 것들도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봤던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웬만한 기술에는 소스라치지 않을 정도로 미래에 스포일돼 버린 것 같습니다. 이렇게 생각한 게 저뿐만은 아니었나 봅니다. CES 2020에 참석했던 분들이 '이번 CES에서 볼 것이 별로 없더라'는 이야기를 하시는 것을 적잖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CES 2020에는 주목해 볼 점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보이는 곳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랬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첫째, 참가한 대다수 기업이 '인공지능' 합창을 하고 있는 사이, 진짜 인공지능을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인텔 AMD 퀄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의 회사들은 기술 전시보다 CES에 참가한 수많은 B2C 전시 기업들을 상대로 개별 마케팅을 하고 있었습니다. 많은 B2C 전시 회사들이 CES에 와서 전시하느라 돈을 쓰는 사이, 이들은 B2B 영업으로 돈을 벌고 있었던 셈이죠. 인공지능과 같은 기술들이 이제는 수도꼭지만 틀면 나오는 수돗물처럼 일상적으로 구매할 수 있는 상품이 되어버린 지금, 수도 배관을 공급해 주는 역할을 하는 이들 기업은 CES에서 울려 퍼진 '인공지능 합창'만큼 좋은 일도 없었을 겁니다(그래서 이들 회사의 주가는 CES 2020 이후 크게 올랐습니다).

둘째, 그에 반해 대다수 상품을 전시한 B2C 기업들은 기술에 방점을 찍기보다 소비자들의 어떤 '위급한 고통'들을 해결해 줄 수 있을지를 놓고 고군분투 중이었습니다. '인공지능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데?'라는 질문에 '스마트홈'(삼성 LG 구글)이 등장했고요, '사물인터넷으로 우리 생활의 어디가 좋아지는데?'라는 질문에 수면테크와 베이비케어(P&G 등) 기술들이 나왔었지요. 올해 새로운 디바이스와 소프트웨어 출시를 준비하고 있는 구글만 하더라도 그런 신제품들을 미리 공개하는 것보다, 우리 삶 속에 구글 어시스턴트가 어떤 새로운 도움을 줄 수 있는지를 체험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전시를 구성했었습니다. 수년간 '곧 완성된다'는 말의 향연이 무성했던 자율주행차 쪽도 기술의 우월성보다는 운전자가 실제로 얼마나 더 편리할지 등을 체험할 수 있게 하는 전시들(혼다 등)이 눈에 띄었습니다.

종합해 보면 이렇습니다. 이제 5G, 인공지능 등 각종 기술은 누구나 쓸 수 있는 것이 돼버렸습니다. 그래서인지 이번 CES 2020에서는 보다 많은 B2C 회사가 어떻게 하면 그런 기술들로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다'를 넘어서서 '당장 무엇을 할 수 있다'를 보여주려는 압박을 강하게 받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기술로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던 시대는 지나가고, 이제 그렇게 말로 뱉어뒀던 기술들을 실제 현실에 적용해야만 하는 시기가 본격적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총이 없었던 시대에는 총을 소유한 이들이 전쟁에서 압도적 우위를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총을 소유할 수 있게 된 시대에는 총을 활용한 전술적 혁신이 더 중요해질 겁니다. 그리고 향후 10년의 승리는 기술을 마스터한 상태에서 전술적 혁신을 어떻게 구축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을 겁니다.

[실리콘밸리 = 신현규 특파원 rfrost@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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