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27일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주요 골자로 한 선거법개정안이 논란과 혼란 속에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더불어민주당, 바른미래당 당권파, 정의당, 민주평화당+대안신당으로 구성된 4+1 협의체의 논의를 거쳐 통과된 이 법에 대해 국회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이전부터 날치지 입법이라는 이유로 반대해왔다.
한국당은 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를 대비해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이루어진다면 대응방도로서 ‘비례 전용’ 정당을 창당할 것이라고 밝혔다.
2020년 1월 13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한국당이 추진 중인 ‘비례한국당’의 명칭 사용을 정당법에 근거해 불허했다. 그러나 한국당은 당명 변경과 같은 대안을 강구하면서 위성정당 설립을 추진해 나갈 것임을 밝혔다.
앞으로 실제 정당 창당으로까지 이어질지는 불확실하지만,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 촉발시킨 위성정당 창당 논란은 망가진 한국 정당정치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자유한국당 정유섭 의원이 지난해 12월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72회 국회 (임시회) 본회의에서 공직선거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하고 있다. / 사진=홍봉진 기자 honggga@ |
[the300]위성정당과 민주주의 역행
위성정당은 대체로 권위주의 정부나 일당제 국가에서 정권을 잡은 정당이 민주적 다당제의 구색을 맞추기 위해 만들어낸 명목상 정당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제5공화국 시기 군부정권이 관제야당을 창당한 사례가 있지만, 민주화 이후에는 모두 사라졌다. 한국당에서는 알바니아, 베네수엘라 등 국가에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이후 위성정당들이 난립했고 결국 이 제도를 폐기하기에 이르렀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반대했는데, 선거법개정안이 통과되자 바로 위성정당 창당을 시도했다.
그러나 위성정당 난립으로 인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폐기한 국가들은 대부분 민주주의가 공고화되지 않은 국가들이며,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운영 중인 독일, 뉴질랜드 등에서는 위성정당과 같은 사례가 발생하지 않았다. 한국당의 위성정당 창당은 시도만으로도 법적으로 문제가 있을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발전을 역행한 것이다.
위성정당의 법적 문제
선관위는 비례정당 명칭 사용이 정당법 41조 3항 “이미 신고된 창당준비위원회 및 등록된 정당이 사용 중이 명칭과 뚜렷이 구별돼야 한다”는 것을 위반한 것으로 해석하였다.
정당법 제 2조에서는 “정당이라 함은 국민의 이익을 위하여 책임있는 정치적 주장이나 정책을 추진하고...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함을 목적으로 하는 국민의 자발적 조직”임을 명시하고 있는데, 비례정당은 책임있는 정치적 주장이나 정책을 결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당 본연의 역할을 할 수 없다.
또 당원의 당적과 관련해서도 “누구든지 2 이상의 정당의 당원이 되지 못한다”는 정당법 42조 2항과 관련 문제의 소지가 있다.
위성정당이 비례성을 보장하는가? 아니다
한국당의 위성정당 창당 시도는 또한 비례대표제가 지닌 취지와 의미를 퇴색시켰다. 물론 4+1 협의체가 연동형 비례제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연동형 본래의 의미가 쇠퇴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비례대표제는 표의 등가성, 즉 득표율과 의석수가 가능한 한 일치하도록 보장하는 데 중점을 둔 제도이다. 비례대표제는 국회 구성의 비례성을 구현하면서, 소수와 비주류의 목소리가 정책에 반영될 통로를 만들어 내어 합의제 국회를 가능하게 한다.
기득권 정당이 위성정당 창당을 통해 비례의석까지 차지하게 된다면 이러한 비례대표제의 의미까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교통표지판 뒤로 국회의사당이 보이고 있다. / 사진=홍봉진 기자 honggga@ |
유권자와 정당
기득권 정당의 위성정당 창당은 무엇보다도 유권자의 입장에서는 선택의 자유를 빼앗기는 셈이다. 다양한 배경과 이해관계를 지닌 유권자는 자신과 가장 유사한 정책, 이념을 제공한 정당을 지지하여 표를 던지게 된다.
다수의 정당들은 유권자의 이익을 집약하면서 선거를 통해 경쟁하고, 유권자와 국회를 잇는 매개체로 작용하면서 대의제를 실현시킨다.
단순히 유권자의 표를 얻기 위해 만들어진 구색용 정당은 건전한 경쟁과 정책선거를 막는 걸림돌로 작용하게 될 것이고, 유권자의 정당과 정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더욱 강화되어 결국 유권자의 불신 혹은 무관심, 참여 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책임정치의 실현
한국당의 비례정당 창당이 실현될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창당 시도만으로도 민주화 이후 시민의 힘으로 이룩해온 민주주의를 퇴행시키는 것이다.
정당은 다양한 이해관계를 결집하여 유권자에게 이를 확인받을 기회를 부여하면서 선거를 통해 경쟁하고 정권을 획득해야 한다. 그러나 공식제도를 우회한 편법을 통해 정권을 획득한다면, 누가 정통성을 인정할 것인가?
민주주의가 ‘동네의 유일한 게임(the only game in town)’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 발전의 큰 틀에서 백년대계를 세우는 책임정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정하윤 성공회대 교수 swallow@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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