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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5 (수)

'고 3 유권자' 14만명… 교실에 들어온 선거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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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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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만 18세 청소년 유권자들이 입당하는 뉴스를 보면서 투표권이 생겼단 게 실감 났어요. 선거에 대한 기초 지식부터 차근히 배우고 싶어요.” (김연지·서울 자양고 3)

선거권에 목말라 있던 청소년들이 오는 4월 처음 투표에 나선다. 올해 총선에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 만 18세 청소년은 약 14만명. 현재 고 3 학생 중 2002년 4월 15일 출생자까지다. 일각에서는 ‘교실의 정치화’를 우려하는 시선도 만만치 않다.

◇총선 앞두고 선거교육 실시… 주목받는 '모의선거'

최근 교육부는 신학기 전까지 선거교육용 학습 자료를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선거교육은 '사회' '정치와 법' 등 관련 교과나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에 이뤄질 예정이다.

청소년들은 이번 선거교육을 통해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기초 지식을 쌓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백열준(경기 양영디지털고 3)군은 "여당, 야당 등의 용어를 잘 모르는 친구도 많아 기본적인 정치교육이 필요하다"며 "삼권분립과 선거제도 등 민주주의의 기반이 되는 제도와 역사 등을 중점적으로 배웠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열린 토론'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하종현(경기국제통상고 2)군은 "학생들이 선거 공약이나 이슈에 대한 의견을 발표하고 다양한 견해에 대한 인식을 넓힐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특히 현실 정치를 교실에 들여와 토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군은 "각자 지지하는 정당과 인물을 밝히고 토론해 선거를 단순 인기투표로 여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떠오른 대안은 '모의선거'다. 지난해 12월 서울시교육청은 총선을 앞두고 40개 학교를 대상으로 실제 선거와 연계한 모의선거 교육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학생들이 실제 후보와 정당의 공약을 놓고 토론하고, 이후 선거관리위원회를 구성해 실제 선거처럼 투·개표 과정을 직접 체험하는 식이다. 지난해 11월 서울시교육청의 '학교민주시민교육 활성화 방안 연구'를 수행한 연구진은 "모의선거 교육을 통해 학생들은 누구에게 표를 줄 것인지 공약을 비교·분석하며 정치적 판단력을 기를 수 있고, 선거의 의미와 정당의 정책 등을 토론하며 민주시민교육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밝혔다.

◇준비 늦어 운영 부실해지나… 교사 정치 편향 우려도

그러나 올해 총선이 3개월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선거교육에 대한 준비가 늦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부 학교는 교내 선거교육을 책임질 민주시민교육 부서를 부랴부랴 만드는 상황이다. 앞서 연구진도 "총선을 앞두고 실시하는 모의선거는 사전에 충분히 준비하지 않으면 바쁜 학년 초 업무에 밀려나 부실하게 진행되기 쉽다"고 명시했다. 윤준수(강원 영월고 3)군은 "선거제도를 명확히 이해하지 못한 일부 학생들이 자칫 복잡한 선거법을 어길 수도 있지 않겠느냐"며 "청소년을 대상으로 선거법 위반 사례에 대한 교육을 선행했어야 한다"고 했다.

일부 교사들의 정치적 편향성도 학생들이 우려하는 대목이다. 서울의 한 고 3 학생은 "평소 교과 수업에서도 가끔 정치적인 성향을 드러내는 선생님들이 있다"며 "선거교육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 편향적인 내용을 은밀하게 포함할 것 같아 걱정"이라고 털어놨다.

교육계 안팎에서는 제삼자의 정치적 이념이 반영될 여지를 차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고교 교육 현장의 정치화를 우려하며 입법 보완책 마련을 주문했다. 초·중등학교에서 예비후보자의 명함 배부, 의정 보고와 연설을 금지하고, 공무원 지위를 이용한 선거운동 금지 조항에 사립학교 교사를 포함하는 것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교실 선거장화 근절 3법' 개정 추진을 촉구하고 있다. 학교에서 정당과 후보자는 물론 학생들의 선거운동을 제한하고, 교내 당원 모집 활동이나 정당 홍보 행위 등을 금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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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 학교에서 학생들이 모의선거에 참여하고 있는 모습. /징검다리교육공동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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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정치 반영 여부가 관건… "구체적 논쟁 다뤄야"

관건은 선거교육을 통해 학교 현장에서 현실 정치를 대면할 준비가 돼 있느냐다. 그간 우리나라의 청소년 대상 선거교육에선 현실 정치나 사회 현안에 대한 토론을 피해왔다. 교육 현장에서 사회 현안에 대한 언급 자체를 꺼리는 배경에는 뜻하지 않게 정치적 중립성을 어길 수 있다는 우려가 자리 잡고 있다. 수년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연수원에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선거교육을 진행해온 한 초빙교수는 "특정 정당이나 후보 이름만 거론해도 자칫 선거교육을 편향적으로 실시한다는 오해를 살 수 있어 현실 정치 사례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고 했다.

반면, 해외 청소년들은 교육 현장에서 현실 정치를 마주하고 있다. 미국아이오와주의 청소년은 ‘코커스 101’ 프로그램을 통해 대통령 선거 전 가상투표를 경험한다. 가상투표 전 수업에서 ‘정당’을 다룰 땐 실제 공화당과 민주당의 정당 강령을 발췌한 자료를 활용해 이념에 대한 퀴즈를 풀고, 지지 정당과 후보를 주제로 과제를 수행하는 식이다.

독일은 연방총선, 주의회선거, 유럽의회선거 7일 전부터 청소년 모의선거를 실시한다. 학교는 한 달간 후보자 공약집과 토론회 등을 중심으로 수업하며, 학생들은 실제 후보자와 정당의 공약을 비교·분석하고 투표한다. 독일 정부는 2022년까지 모든 학교에서 모의선거를 실시할 예정이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딜레마를 겪은 곳도 있다. 지난 2015년부터 18세 청소년에게 선거권을 부여한 일본은 당시 가이드라인을 통해 고등학생의 선거운동과 정치활동을 제한할 것을 학교에 강하게 권고했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일본에선 그간 정치적 중립성을 강조하며 가이드라인에 여러 제한을 두다 보니 지식 위주 교육에 그쳤다는 반성이 나오고 있다”며 “정치적 중립성에 갇힌다면 피상적인 지식 전달에만 그칠 우려가 있기 때문에 보다 구체적인 논쟁을 다루는 교육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오푸름 조선에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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