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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0 (화)

이슈 양승태와 '사법농단'

[연합시론] 사법농단 첫 판결 '무죄'…실체적 진실 예단하긴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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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법원이 '사법농단 의혹' 연루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 출신 유해용 전 판사에게 1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부가 사법행정권을 남용했다는 의혹에 관한 첫 법원 판단이다. 유 전 수석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공모해 특정 재판의 경과 등을 파악해 문건을 작성하도록 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사법농단 의혹은 박근혜 정부 때 대법원이 법원행정처를 앞세워 정치 권력과 유착해 이른바 '재판거래'를 하고 비판적인 판사들에게 인사 불이익을 주는가 하면 사찰까지 했다는 게 핵심이다. 이 사건으로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 임 전 차장이 기소됐고 유 전 수석 등 전·현직 판사 10명도 추가로 재판에 넘겨졌다.

근엄한 법대 뒤에 가려져 있던 법원의 민낯이 검찰 수사를 통해 속속 드러나면서 사법개혁을 촉구하는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제왕적 권한 폐지를 비롯한 대대적인 개혁을 약속했지만, 기대에 못 미쳤다는 평가다. 여기에 검찰개혁 이슈에도 밀리면서 사법개혁은 사실상 실종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유 전 수석에 대한 무죄 판결은 주목을 받을 만하다. 하지만 이번 판결을 갖고 사법농단 의혹의 실체적 진실과 이에 대한 검찰 수사를 평가하기는 이르다. 핵심 피고인인 양 전 원장 등의 재판과 비교할 때 인물이나 사건 비중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아 사법농단 사건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일 가능성이 커서다. 또 상급심 판단도 지켜봐야 한다.

그런데도 이번 판결을 보면서 왠지 씁쓸해하는 이가 적지 않을 듯하다. 법원이 제 식구 감싸기를 한 게 아니냐는 막연한 의구심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우선 사법농단 의혹의 정점인 양 전 원장과 임 전 차장 등의 재판이 이례적이라 할 정도로 계속 지연되고 있다. 주범의 재판이 헛바퀴를 도는 상황에서 공범에 대한 판단이 먼저 나와 버린 셈이다. 양 전 원장의 재판은 지난해 12월 20일 공판을 끝으로 중단돼 2월 21일에야 재개된다. 폐암 의심 진단을 받아 오는 14일 수술을 받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수술 후 1주일 입원 치료가 필요하고 이후에도 4주간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양 전 원장 쪽 요청을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수술 후 재판을 열어 건강 상태를 살핀 뒤 재판 재개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의견서를 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난해 3월 시작된 양 전 원장 재판은 모두 260명의 증인을 불러야 하는데 현재까지 36명을 신문하는 데 그쳤다. 임 전 차장 재판도 재판부 기피 신청으로 반년째 중단된 상태다. 지난해 6월 낸 기피 신청이 서울중앙지법과 서울고법에서 잇달아 기각돼 9월 대법원에 올라갔지만, 아직도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핵심 피고인들의 재판지연 전략 못지않게 증인으로 채택된 판사들의 태도 또한 마뜩잖다. 형사소송법에는 소환장을 받은 증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출석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부과하고 구인할 수 있다고 돼 있지만, 판사들은 재판 일정과 당직 등을 이유로 줄줄이 불출석했다. 이런 모습은 법 앞의 평등을 강조하는 사법부의 신뢰를 스스로 깎아 먹는 일이다. 사회적 관심이 쏠린 사안의 경우 재판이 공전할수록 피고인에게 유리한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 국민 정서와 여론이 재판 분위기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적지 않아서다. 사법농단 사건 재판부가 심리에 속도를 내서 법과 양심에 따라 엄정한 판단을 내리기를 촉구한다. 아울러 김명수 대법원장과 정치권은 멈춰선 사법개혁의 수레바퀴를 다시 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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