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할린 강제징용 피해자 재산 청구권 ‘정부 부작위 소송’ 각하
다카기·경수근 변호사 비판
고향마을에 모인 강제징용 피해자 측 경수근 변호사, 다카기 겐이치 변호사, 전국사할린귀국동포연합회의 권경석 회장,성준모 고문(왼쪽부터)이 5일 경기 안산시 고향마을에서 사할린 강제징용 피해자 관련 소송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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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기 겐이치 변호사(76)가 지난 5일 경기 안산시 고향마을을 찾았다. 영주 귀국한 사할린 동포 500여가구가 모여 사는 곳이다. 다카기 변호사는 1975·1990·2007년 일본에서 사할린 강제징용 피해자 관련 소송을 제기했다. 일본 유학 시절 다카기 변호사와의 인연으로 2012년 한국에서 헌법소원을 제기한 경수근 변호사(65)도 동행했다.
똑같은 문제에 ‘다른 판결’
변론 없이 서면 공방 진행
결국 꿰맞춘 것 아닌가
다카기 변호사와 경 변호사는 지난달 27일 헌법재판소가 사할린 징용 피해자의 헌법소원을 각하한 것을 비판했다. 이들은 헌재의 각하 결정이 “국가가 위안부 문제 해결에 나서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고 판단한 2011년 결정보다 퇴보했다고 비판했다. 다카기 변호사는 “2011년 헌재 결정과 똑같은 사건인데 8년 만에 다른 결론이 나왔다”며 “헌재가 한·일 양국 사이가 좋지 않으니 눈치를 보느라 결론을 미리 내놓고 꿰맞춘 건 아닌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피해자 한문형씨(86) 등 2296명은 2012년 한국 정부가 재산청구권 문제 해결을 위한 외교적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은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냈다. 일제강점기 일본은 러시아 사할린의 탄광, 군수시설 등에서 강제노동을 한 피해자들의 급여를 일본국 우편예금 등에 강제로 저금시켰다. 인출은 허용되지 않았다. 2000년 일본 우정성이 공식 확인한 사할린 잔류 한국인의 미불 우편예금 계좌 수는 약 59만건(2000년 조사 당시 약 1억8000만엔)이다.
피해자들은 1995년 일본 정부가 대만 사할린 강제징용 피해자의 미불 우편예금을 156배로 환산해 지불한 선례를 들며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조치를 취한다면 재산청구권 문제가 해결되리라 보고 위헌 소송을 냈다.
헌재는 한국 정부가 수차례 일본과 실무협의를 하는 등 ‘부작위’(아무것도 하지 않음) 상태에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7년 만에 각하 결정을 내렸다. 각하는 소송 요건이 갖춰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본안 심리를 거절하는 것이다.
한·일 형식적 서면 교환은
의무 이행으로 보기 어려워
문 정부 더 강하게 말해야
“헌재는 (한·일 정부가) 형식적으로 몇 번 주고받은 서면을 두고 정부가 작위 의무를 이행했다고 본 겁니다. 한국 정부는 (양국) 중재위원회 회부 의무까지 이행했어야 해요.” 다카기 변호사는 양국 간 협정 해석 분쟁으로 사할린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권리구제가 이뤄지지 못하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한일청구권협정 3조 2항이 정한 절차를 따라야 할 의무가 있다고 했다.
3조 1항은 ‘협정 해석에 관한 양 체약국 간의 분쟁은 외교상의 경로를 통해 해결’, 3조 2항은 ‘1의 규정에 의해 해결될 수 없는 분쟁은 중재위원회에 회부’라고 규정한다. 헌재는 3조 1항에 따른 외교당국 간 협의만으로도 정부가 작위 의무를 이행했다고 판단했다.
다카기 변호사는 “중재위에 가면 일본이 100% 지게 돼 있다. 문재인 정부는 (사할린 강제징용 피해자는) 한일청구권협정 대상이 아니라고 더 강하게 얘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 변호사는 “2016년 1월21일 일본 정부에 대한 구술서 회답 재촉이 마지막이었다. 2016년 1월 이후 한국 정부가 외교적 조치를 강구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고령화에 텅 빈 주차장 한국과 일본 정부가 협력해 지은 경기 안산시 고향마을. 영주 귀국한 사할린 동포들이 입주했다. 우철훈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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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 변호사는 각하 과정을 두고 문제를 제기했다. “다카기 변호사를 증인으로 신청하려 했는데, 변론을 한 번도 열지 않았습니다. 서면 공방만 몇 번 했어요. 7년 만에 (본안 판단을 회피하는) 결론을 내릴 거면 헌재가 존립할 이유가 없습니다.”
다카기 변호사는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와 협력해 안산 고향마을을 건립할 때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문제를 거론하지 않다가 이제 와서 말을 바꾼다고 지적했다. 고향마을은 1994년 노태우 정권과 무라야마 정권 간 합의로 건설에 들어갔다. 일본은 아파트 건설비 32억엔을 대고, 한국은 부지를 대는 방식이었다. 입주는 2000년 시작됐다.
일본은 영주 귀국한 사할린 동포들의 개인청구권이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소멸됐다고 주장한다. 한국은 1965년 체결 당시 피해자들은 한국 국적이 아니었으므로 개인청구권이 소멸되지 않았다고 본다. 다카기 변호사는 “사할린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가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최종 해결됐다면 일본이 돈을 냈겠나”라며 “일본이 책임이 있다는 걸 인정했으니 정부 예산에서 32억엔이라는 큰돈을 지원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는 (사할린 동포가) 영주 귀국했다며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소급 적용 운운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말이 안 맞는다”고 했다.
강제성 없다 주장한 한국인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나
다카기 변호사는 이영훈 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등이 낸 저서 <반일 종족주의>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위안부와 강제징용에 ‘강제성’이 없었다는 주장 등을 담은 이 책은 일본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됐다. 다카기 변호사는 이 책을 두고 “한국 사람이 어떻게 ‘강제성이 없다’고 말할 수 있나”라고 했다. 그는 2007년 일본 법원에 제기한 사할린 강제동원 피해자 손해배상 사건을 거론하며 이같이 말했다. “소송 당시 강제로 봉급이 차압된 부분에 대해서는 일본 정부도 다투지 않았습니다. 미지급금이 남아 있다는 것은 일본 정부도 인정한 부분입니다. 원고 중 한 명인 이희팔씨(사할린 귀환자·재일한인회장)는 도망가려다 산에서 보초를 선 일본군에게 끌려가서 결국 탈출하지 못했다고 법정에서 증언했습니다.”
다카기 변호사는 한국인·필리핀인 위안부 피해자 사건, 한국인 피폭 피해자 사건 등을 대리한 ‘전후 보상’ 소송 전문가다. 1990년 사할린 강제징용 피해자 21명이 낸 보상청구 소송은 일본 정부에 ‘전후 보상’을 요구한 최초 소송으로 꼽힌다. 사할린 동포들이 영주 귀국할 수 있도록 힘써온 공로를 인정받아 1989년 한국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유설희 기자 s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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