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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g 체구로 400개 데이터 남기는 쥐…"아프려고 태어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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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쥐의 해 경자년을 맞아 살펴보는 실험쥐의 탄생과 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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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31일 오후 충북 오창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실험동물자원센터에서 함석현 연구원이 연구용 생쥐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이 연구원에는 2500여종, 약 1만5000여마리의 연구용 쥐를 보유하고 있다. 김성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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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8cm, 무게 25g의 작은 체구에서 생체 데이터 400개를 남기는 ‘작은 거인’. 인간의 건강과 생명을 위한 연구에 보탬이 되기 위해 국내에서만 연간 350만 마리가 희생 되는 동물. 인간 유전자와 90%이상 일치한데다, 평균 수명도 2~3년 정도라 노화 연구에까지 용이한 실험실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

참, 내 자랑만 하고 소개를 안 했구나. 나는 지난해 충북 청주시 오창읍에 위치한 한국생명공학연구원(생명연) 실험동물자원센터에서 태어난 실험 쥐야. 사실 난 태어날 때 부터 당뇨를 앓고있어. 의도적으로 아프게 태어난 셈이지. 바로 ‘질환모델’이야.

‘질환모델’이 뭐냐고? 쥐는 2만8000여개의 유전자를 가지고있는데, 그 중 특정 유전자를 일부러 망가뜨려 기능을 못 하게(Knock-out, KO) 만드는거야. 유전자 가위 기술을 이용해 수정란 상태에서 해당 유전자를 편집하는거지. 이 쥐가 만들어지면 특성(표현형)을 확인하는 작업을 거쳐야해. 사람들이 하는 건강검진과 비슷해. 청각ㆍ시각도 체크하고 엑스레이와 골밀도 검사도 해. 죽고 나서는 해부를 통해 병리조직학 검사까지 이뤄진다고 해.

그런데 어느 한 나라 혼자서 2만8000개 유전자를 하나씩 모두 편집할 수 없으니까, 각 나라가 뭉쳐 ‘국제마우스표현형분석컨소시엄(IMPC)’을 만들었어. 현재 전 세계적으로 8500건이 등록됐다고 하네. 우리나라도 여기 일원으로 참여하고 있어. (2013년 국가마우스표현형분석사업단이 발족했다. 현재 성제경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가 단장을 맡고 있다. 170여건의 유전자 변형 쥐를 개발했고, 이 가운데 95건이 IMPC에 등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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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솔레이터(격리실)에 있던 쥐들이 움직이는 모습. 김성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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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태어난 생명연은 쥐를 공유하는 일종의 플랫폼이야. 사업단에서 만든 쥐 등을 보존하고 번식시켜 전국의 연구자들이 분양해 갈 수 있도록 제공해. 연구자들이 연구소에 와서 당뇨, 신경계 질환, 암 등 각자 연구의 필요에 맞게 유전자가 편집된 쥐들을 데려가는거지. 그래서 그 유전자가 질병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살피는거야. 유전자 치료법 신약 테스트에도 쥐가 쓰여. 사람에게 임상실험을 하기 전에, 쥐에게 먼저 투약해 반응을 보는거지. 정리하면, 쥐는 특정 유전자와 질환의 상관관계를 밝히거나 신약효과를 검증하는 데 쓰이는 거야. 연구의 처음과 마지막 모두에 쓰인다고 보면 돼.



몸값 5~10만원…더 비싼 '노령쥐'는 수십만원



내 몸값은 5만~10만원 정도인데, 다른 친구들 중에는 50만원 정도로 더 비싼 아이들도 있어. 당뇨나 신경계 질환에 걸린 쥐나 암에 잘 걸리는 쥐들이 연구자들에게 많이 ‘픽’(pick) 당한다고 해. 예를 들어 P53은 암을 억제하는 유전자인데, 여기에 이상이 있는 친구들은 암에 빨리 걸린다고 해. 이런 친구들을 데려가서 약을 먹인 후 암이 발병 하는지 안 하는지 독성 실험을 하는데, 일반 쥐들이 보통 18개월이 지나야 암이 생긴다고 하면 P53 KO 쥐들은 6개월 만에 생기기도 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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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실험에 쓰이는 쥐 중에는 나 같은 ‘결함모델’ 말고도 건강한 ‘노령 쥐’들도 있어. 이들은 노화 연구에 쓰이는데, 30만~60만원으로 몸값이 좀 더 비싸. 연구자들이 와서 15개월, 24개월, 30개월 등 연구에 필요한 나이의 쥐를 찾아서 데리고 가는 식이야. 요즘 더 많은 사람들이 찾고있다고 하네. 보통 생후 15개월 이상 쥐들을 노령 쥐라고 하는데, 생후 30개월 쥐는 사람 나이로 따지면 무려 80세에 해당하는 할머니ㆍ할아버지 쥐라고 할 수 있어.



불결하다 오해 '억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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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오후 충북 오창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실험동물자원센터에서 함석현 연구원이 아이솔레이터(격리실) 안에 있는 연구용 생쥐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이 연구원에는 2500여종, 약 1만5000여마리의 연구용 쥐를 보유하고 있다. 김성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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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체외수정을 통해 태어날 때까지 약 3개월이 걸려. 생명연에서 1년에 200~300 종류가 탄생하는걸 감안하면, 거의 매일 하나씩 나온다고 볼 수 있지. 내년에는 150~200종의 친구들이 추가 될 예정이라고 해.

참, 우리집에 대해서도 소개 해줄게. 나는 A4용지 보다 작은 케이지에 비슷한 친구들 4~5명과 함께 지내고 있어. 이 케이지는 ‘무병원균’ 상태로 유지돼. 그래서 공기도 깨끗하게 걸러서 들어오고 물과 먹이도 고압증기멸균기(120℃로 작동) 를 통과해야 들어올 수 있어. 나는 많이 먹지 않아서 하루~이틀에 한 번 씩 물과 먹이 각각 25g 정도만 제공해주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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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이와 물, 깔짚 등을 소독하는 고압멸균기(왼쪽)와 깔짚(오른쪽)의 모습. 권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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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에 대한 오해를 좀 바로잡고 싶어. 나는 생각보다 무척 청결해. 시골에 출몰하는 들쥐 때문인지, 사람들이 쥐를 불결함의 상징으로 생각하는데 대해 굉장히 억울한 마음이 들어. 실험실에서 깨끗하게 길러져서 그런지, 나는 더러운걸 참을 수 없어. 항상 혀로 몸을 핥아서 스스로 깨끗함을 유지하지. 또, 사람들이 실험 쥐는 흰 쥐만 있는 줄 알지만, 사실 검은 친구들도 많아. 희고 검은 쥐들이 큰 차이는 없지만, 검은 쥐에 대한 기존 실험 데이터가 많아서 검은 쥐들을 찾는 사람도 많다고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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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지 안에 있는 흰쥐와 검은쥐. 김성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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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국가에서도 나를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 한 것 같아. 2018년 쥐가 국가전략생명연구자원 중 하나로 선정됐어.국가 차원에서 중요한 생명자원을 체계적으로 관리한다는 뜻이지. 그런데 한편에서는, 나 같은 쥐들이 실험에 쓰이기 위해 태어나고 죽는 것에 대한 윤리적 문제도 제기되고 있더라고. 그래서 요즘에는 동물 실험의 한계를 극복할 대체 시험법으로 인체의 생리적 특성을 정확히 모사한 ‘장기 칩’도 주목받고 있대. 혈관ㆍ폐ㆍ간 등 인체 장기를 구성하는 세포를 3차원으로 배양한 뒤 전자회로가 형성된 미세 유체 칩 위에 놓고 실제 인체와 유사한 생체환경을 만들어 약물 반응성을 시험하는 기술인데, 국내에서는 아직 상용화 되지 못 한다고 해.

나에 대해 좀 더 잘 알게됐어? 올해는 풍요의 상징인 ‘흰 쥐’의 해 경자년(庚子年)이라고 하네. 다들 풍성한 한 해 되기를 바랄게. 안녕!

(본 기사는 '실험 쥐'의 입장에서 1인칭으로 작성됐습니다)

오창=권유진 기자 kwen.y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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