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재판관들이 지난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자리하고 있다./사진=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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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헌법재판소가 지난 27일 한·일 정부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는 헌법소원 심판 대상이 아니라면서 사실상 판단을 유보하는 결정을 내리면서 이 결정에 담긴 의미는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헌재는 일본군 '위안부' 생존 피해자 29명과 피해자 유족·가족 12명이 2016년 3월 제기한 헌법소원 사건에 대해 본안으로 넘어갈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면서 각하 결정을 내렸다고 지난 27일 밝혔다.
헌재는 2015년 12월28일 한·일 양국 정부는 일본 정부의 책임 통감과 내각총리가 사죄를 표명하고, 한국 정부가 설립하는 위안부 피해자 지원재단에 일본정부가 10억엔을 출연하는 대신 위안부 문제를 최종적·불가역적으로 마무리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한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에 대해 판단했다.
각하 결정은 청구인이 판단을 구하는 내용 자체가 잘못돼 본안에 대해 판단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로 그대로 절차를 종료하는 헌재의 결정 중 하나다. 헌재는 한일 위안부 합의와 관련 피해자 측이 낸 청구가 형식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보고 본안 판단에 들어가지 않았다.
헌재는 이 합의에 대해 “양국 외교 장관의 공동 발표와 정상의 추인을 거친 공식적인 약속”이라면서도 “일본군 위안부 관련 문제의 해결을 위한 외교적 협의 과정에서의 정치적 합의에 불과하다”면서 이런 결정을 내렸다.
또 헌재는 문제가 된 합의에 대해 △서면으로 이뤄지지 않았고 △통상적으로 조약에 사용되는 형식을 사용하지 않았으며 △헌법이 규정한 조약의 체결 절차도 지키지 않았고 △합의의 효력에 관한 양 당사자의 의사표시가 없었고 △내용이 구체적이거나 국민들의 법적인 권리나 의무를 새롭게 만들고 있지 않다고 했다.
한일 위안부 합의는 ‘정치적 합의’일 뿐 헌재가 위헌 여부를 판단할 대상인 법률 등이 아니란 얘기다. 국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적다는 이유도 들었다.
이를 통해 헌재는 이 합의가 실제로 큰 의미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위안부 합의가 법적으로 구속력이 있고 실제로 피해자들에게 법적으로 어떤 영향을 주는 합의였다면 헌재가 이런 식으로 본안 판단을 하지 않고 ‘각하’로 넘어갈 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의미다.
이에 더해 헌재는 "이 합의로 인해 위안부 피해자들의 권리가 처분됐다거나 대한민국 정부의 외교적 보호권한이 소멸했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헌재가 정부에게 관련 피해자들의 권리 보호를 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고 해석되는 부분이다.
피해자 측을 대리한 민변 측이 “이 합의가 공식적 협상 등에 이르지 못한다고 한다면 조금 더 강력하게 정부가 과감하게 합의를 파기하거나 재협상하는 과정으로 나가야 하는 단초를 마련한 게 아닌가하고 생각한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부분들을 본다면 헌재는 ‘각하’ 결정을 통해 피해자들에게 오히려 손을 들어줬다고도 평가할 수 있다. 물론 이 헌재 결정에 정부가 구속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헌재가 이렇게 판단한 것 자체는 정부에게 관련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은 남는다. 헌재에 대해 이 합의에 대한 결정을 너무 늦게 내렸다는 비판도 나온다. 헌재는 위안부 합의가 이뤄진 지는 4년, 헌재에 헌법소원을 제기한 지 3년9개월 만에 이번 결정을 내렸다.
피해자들의 나이 등을 고려하면 헌재가 더 빠른 결정을 내렸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헌재는 이번 선고에서 심리 중 사망한 청구인들에 대해서 "해당 절차는 각 청구인들의 사망으로 종결됐다"고 했다.
헌재가 본안 판단에 들어가지 않은 것은 안전한 선택을 한 결과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렇게 민감한 사건의 경우 어떤 결정을 내려도 반대의 목소리가 쏟아질 수 있어서다.
이 사건은 한일 관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 결정이 나오기 전부터 외교적 충돌 등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다며 모두의 관심이 집중됐다. 실제로 헌재에 이번 선고를 취재하러 온 기자들 가운데는 일본 언론사들도 있었다. 하지만 헌재는 헌법 위반여부를 판단하지 않고 유보하는 ‘회피성 결정’으로 2019년의 마지막 선고를 마쳤다.
송민경 (변호사) 기자 mkso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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