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각하' 의견서를 헌재에 제출한 바 있는 외교부는 헌재 결정을 존중한다며 피해자들의 명예·존엄 회복과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노력을 지속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헌법소원은 헌법상 보장된 국민 기본권이 침해됐는지를 판단하는 것인데, 해당 합의는 법적 효력이 있는 조약이 아닌 정치·외교적 행위여서 헌법소원 요건에 맞지 않는다는 외교부의 논리가 받아들여진 것이다. 한일 갈등 해소는 여전히 정부와 정치권이 주도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는다. 피해자들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채 강행된 당시 합의는 '피해자 중심주의' 원칙을 무시한 졸속 외교의 산물이어서 일본 정부가 출연한 10억엔을 기금으로 한 '화해·치유 재단' 해산 등 사실상 합의 파기 수순이 불가피했다. '보편적 인권과 정의에 관한 사안은 정부 간 합의로만 될 일이 아니다', '진정한 사과와 반성이 빠진 화해와 치유는 불가능하다'는 교훈을 남겼다.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 정부도 이런 보편적 갈등 해소 원칙에서 예외일 수 없다.
위안부 합의가 법적 구속력을 갖춘 조약이 아니었더라도 당시 합의가 도출됐다는 사실은 되돌릴 수 없다. 정부가 재협상을 요구하거나 파기를 선언하지 않는 이유다. 아베 정부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과 위안부 문제 합의가 있었다며 국가 간 약속을 지키라고 지속해 압박하는 것도 이런 취약점을 파고든 전략이다. 그렇다고 밀접히 교류·협력해야 한 이웃 국가와 첨예한 대립의 늪에 빠져 있을 수만은 없다. 외교적 해법을 찾기 위해 지혜를 발휘해야 할 이유다. 한일은 15개월 만에 성사된 지난 24일 청두 정상회담을 통해 최근 갈등의 근본인 한국 대법원의 일제 징용 배상 판결에 대해선 입장차를 확인했지만, 대화를 통한 해결에 공감대를 이뤘다. 관계 복원을 향한 본격적인 출발점이 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셈이다. 피해국인 한국에서 오히려 해법을 찾느라 분주한 듯한 작금의 상황은 바람직하지 않다. 진정한 반성과 사과를 외면하는 가해국의 태도가 큰 걸림돌이라는 점을 아베 정부는 직시해야 한다. 인권과 정의의 원칙은 바로 세우되, 미래 지향적인 한일 관계 정립이라는 과제를 본격적으로 풀어나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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