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임시국회가 '패스트트랙 블랙홀'에 빠져 공전을 거듭하고 있다. 국회는 정기국회 마지막 날인 지난 10일 내년도 예산안을 처리한 뒤 11일부터 임시국회를 소집했지만 22일까지 본회의를 한 번도 열지 못하면서 '개점휴업'에 직면했다. 내년도 예산 부수법안과 각종 민생·개혁 법안 처리가 줄줄이 지연되면서 국회가 경제 회생과 민생 안정 발목을 잡는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22일 정치권에 따르면 연내 입법 처리가 절실한 대표적인 법안들로 데이터 3법과 유치원 3법이 꼽힌다. 데이터 3법은 인공지능(AI)·빅데이터 산업 활성화 추진을 위한 법안이고, 유치원 3법은 사립 유치원 회계투명성 강화가 골자다. 재계가 국회 통과를 줄기차게 요청했던 데이터 3법은 우여곡절 끝에 3개 상임위원회(정무위·행정안전위·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를 통과해 법제사법위에 계류됐지만 여야 간 대치 속에 막판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를 내용으로 한 근로기준법도 국회 통과가 시급한 법안이다. 소득세법 등 세법 개정안과 국가재정법, 예산 부수법안들도 연내에 반드시 처리돼야 하는 법들이다. 특히 예산 부수법안이 연내에 처리되지 못하면 세입·세출 예산 편성이 불가한 상황에 빠지게 된다. 세법 개정안은 소득세·법인세·부가가치세 등 각종 세법 개정 사항을 담고 있고, 국가재정법은 일본 경제 보복을 극복하기 위한 소재·부품·장비 산업 육성을 위한 특별회계 근거법이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22일 대체복무 관련법에 대한 연내 조속한 국회 처리를 요청했다. 정 장관은 이날 국방부에서 긴급 대책회의를 열고 "법률이 통과되지 않을 경우 병역 판정, 입영 등 병무 행정에 중대한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며 이같이 촉구했다.
12월 임시국회가 공전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패스트트랙(신속 처리 안건)에 지정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놓고 여야 각 정당이 사활을 건 '밥그릇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을 패싱한 채 4+1(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 협의체가 등장해 선거법을 논의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당은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 진행 방해)를 신청한 상태다. 여기에 최근 4+1 협의체가 선거법 개정안을 강행 처리할 가능성에 맞서 '비례한국당'이라는 위성정당 창당을 검토하며 맞불을 놓고 있다. 정치권 관계자는 "당장 내년 총선에 당락이 걸려 있는 선거법이 시급하기 때문에 다른 법안들은 심도 있는 논의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런 가운데 집권 여당인 민주당 내부에서는 패스트트랙 관련 법안 처리를 내년 1월로 연기하자는 의견도 제기됐다. 4+1 협의체가 선거법과 관련해 최종 합의를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 연내 상정과 표결을 강행한다면 정치적 부담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선거법과 관련해 민주당을 제외한 군소 야당들이 비례대표 50석 가운데 30석에만 50% 연동률을 적용하는 합의안을 만들었지만 민주당이 석패율제 도입에 반대하면서 최종안 마련이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다.
한국당은 문희상 국회의장이 제안했던 여야 3당 교섭단체 협상에 참가하지 않고, 대신 지난주 국회 본관에서 집회를 주도하며 대치 국면을 이어갔다. 한국당은 주말인 지난 21일에도 울산에서 '문재인 정권 국정농단 3대 게이트'를 규탄하는 장외집회를 열었다.
한편 여야 간 '치킨 게임'으로 국회가 멈춰선 가운데 민주당은 23일 예산 부수법안과 민생 법안 처리를 위한 '원포인트' 본회의 카드를 검토 중이다. 민주당은 선거법 개정 관련 4+1 협의체 협상이 난항을 지속하면 선거법 개정은 내년으로 미룰 수 있지만 예산 부수법안과 민생 법안은 반드시 올해 안에 처리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문 의장은 여야 3당 교섭단체 원내대표에게 23일 본회의 개최를 제안했지만 한국당은 "내년도 예산안 날치기 통과 사과가 먼저"라며 선을 긋고 있어 전망은 밝지 않다.
[김명환 기자 / 백상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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