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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이슈 고령사회로 접어든 대한민국

"나 묻힐 땅 돌려줘" 법정까지 오가며 아들과 싸우는 97세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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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부양 거부하는 자녀 급증 추세에 잦은 소송

19대 국회 때 불효자방지법 발의됐으나 폐기

중앙일보

초고령화 사회 부모 부양 문제에 따른 갈등이 늘고 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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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부천시에서 혼자 사는 A씨(97)는 아들과 소유권이전 등기 말소 청구 소송을 진행중이다. 거동이 불편한 고령의 노인이 부천에서 춘천지법을 오가며 법정 싸움을 하는 건 자신이 죽은 뒤 묻힐 땅을 되찾기 위해서다.

A씨는 31년 전인 1988년 1월 셋째 아들 B씨(55)에게 평창군 용평면에 있는 임야 1만6264㎡를 증여했다. 이 땅은 A씨의 아내가 묻힌 곳이다. A씨는 당시 선산을 증여하면서 아들에게 절대 땅을 팔지 않고 자신을 잘 부양하라는 조건을 걸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들이 땅을 팔지 말라는 약속을 어기고 자신도 제대로 부양하지 않자 증여한 땅을 되돌려달라고 수차례 요구했고, 결국 법정 싸움까지 가게 됐다. 현재 해당 선산은 아들이 자신의 동업자(46·여)에게 1300만원에 판 상태다. 아들과 동업자는 이 땅에서 버섯 농사를 함께 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A씨는 아들이 실거래가보다 턱없이 낮은 가격으로 동업자에게 땅을 판 것은 자신에게 돌려주지 않기 위해 위장 매매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부양 의무 등을 조건으로 아들에게 땅을 증여했다는 것을 입증할 만한 각서나 기록이 없는 만큼 A씨의 주장은 이유 없다”고 했다. 현재 A씨는 항소를 제기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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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령화 사회 부모 부양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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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령화를 맞아 사회 부모 부양 등을 둘러싼 가족 간의 갈등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특히 부양을 거부하는 자녀가 급증하는 추세다. 현행 기초생할보장법에는 부양의무자(자녀)가 있지만, 부양을 거부하거나 기피하는 사실이 확인되면 부모를 기초수급자로 보호하게 돼 있다. 2001년엔 이런 이유로 보호받은 사람이 3만3907명이었는데, 2010년에 11만9254명으로 증가하더니 2015년에는 28만2609명이나 됐다.

부모 부양을 소홀히 했다는 이유로 동거녀를 둔기로 때려 숨지게 하는 등 부모 부양 문제가 살인이라는 비극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서울고법 춘천재판부(김복형 부장판사)는 18일 살인 혐의로 기소된 C씨(52)가 “형량이 무겁다”며 낸 항소를 기각하고 원심과 같은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비극적인 결말의 시작은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2년 손님과 식당 종업원으로 알게 된 C씨와 D씨(52)는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 이후 7년을 만난 이들의 사이에 문제가 생긴 건 부모의 부양과 상속 문제 때문이었다. C씨는 5남매 중 유일하게 미혼으로 고령의 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다. 남매들 간 상속 갈등을 피하기 위해 부친 소유의 아파트를 소유권 이전받으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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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령화 사회 노후 준비 이미지.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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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신용불량자라 자신 명의로 소유권 이전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때 D씨가 “아버지를 잘 모실 테니 아파트 명의를 내 앞으로 이전해 달라”고 제안하면서 이들은 함께 살게 됐다. 다툼은 D씨가 자신의 아버지 부양을 소홀히 하고 자신에게 함부로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시작됐다. 여기에 D씨가 아파트를 가로챌 목적으로 자신에게 접근한 것이라고 의심을 하게 되면서 불만이 커졌다.

결국 C씨는 지난 2월 D씨로부터 이별 통보를 받은 뒤 둔기로 수차례 내리쳐 D씨를 숨지게 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범행 수법이 극히 잔인하고 결과도 참혹할 뿐만 아니라 피해자를 비난하면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려는 모습 등을 고려할 때 진정으로 참회하고 반성하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며 “원심 형량은 적정하다”고 판시했다.

한편 이러한 비극을 막기 위해 더불어민주당 민병두 의원이 19대 국회에서 재산을 받고 나서 부모를 제대로 부양하지 않으면 재산을 환수하는 내용을 담은 민법개정안(일명 불효자방지법)을 발의했으나 폐기됐다.

춘천=박진호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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