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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예산 1.2조 깎았다지만…`무늬만` 삭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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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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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교통부가 운용하는 주택도시기금의 '주택구입·전세자금 지원사업'은 국회 예산안 심의를 거치며 2020년도 지출액이 정부안 대비 2450억원 감액됐다.

그런데 이번 예산 삭감은 정부의 사업 운용에 사실상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 주택구입·전세자금 지원 사업에는 '수요 확대 등 추가 지출 소요 발생 시 기금운용계획 변경을 통해 지원할 수 있다'는 부대의견이 달렸기 때문이다. 그 결과 정부는 내년 사업의 실제 수요가 예상을 뛰어넘으면 국회를 통과한 지출예산 대비 20%까지 지출액을 늘릴 수 있다. 주택구입·전세자금 지원 사업은 국회 심의 결과 지출액이 약 9조4000억원으로 결정됐다. 여기에 20% 확대를 적용하면 총 11조2800억원가량까지 지출을 늘릴 수 있다. 당초 정부안 대비 1조6200억원가량 큰 액수다. 정부 관계자는 "국회 예산심의권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국회가 감액을 하고, 필요시 정부가 지출을 확대하는 과정을 거칠 뿐"이라며 "예산안 서류상으로는 수천억 원이 오가지만 실질적으로는 영향이 거의 없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국민연금의 2020년도 지출액은 국회 예산 심의 과정에서 4000억원이 삭감됐다. 국민연금 급여를 산정할 때는 그해 물가상승률이 반영되는데, 당초 정부안은 소비자물가 상승률 목표치인 2.0%가 달성될 것을 가정해 작성됐다. 정부가 국회에 예산안을 제출한 8월 말 기준 소비자물가는 한 해의 절반을 넘긴 7월 수치까지 발표돼 매월 0%대 상승률을 기록하고 있었다. 결국 정부가 삭감될 수밖에 없는 예산을 국회에 제출하고, 이후 계산식에 따라 자동으로 깎이는 예산을 국회가 감액한 것처럼 생색만 낸 셈이다.

2020년도 예산안이 국회 심의를 거치며 정부안 대비 1조2000억원가량 감액됐지만 그중 상당수는 이처럼 생색만 낸 '가짜 감액'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가짜 감액은 국회의원들이 쪽지예산을 끼워넣을 예산 여유 공간을 만들어 재정건전성을 해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16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해 국회 예산심의 결과 주택구입·전세자금 지원사업처럼 정부가 국회 동의 없이 지출을 늘릴 수 있다는 부대의견이 달린 감액 폭이 4808억원에 달했다. 국민연금은 물가상승률 탓에 자동으로 4000억원이 감액됐으며, 공무원연금도 같은 이유로 3000억원 삭감됐다. 이 3개 가짜 감액을 모두 합치면 1조1808억원에 달한다. 내년도 예산안이 국회 심의 결과 정부안 대비 1조2075억원 줄어들었는데 이것의 97.8%에 해당하는 규모다.

부대의견이 달린 가짜 감액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주택도시기금이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주택도시기금 3606억원을 삭감했는데, 삭감액 전액에 이 같은 부대의견이 달렸다.

이 같은 가짜 감액이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액수만큼 국회 심의 과정에서 무분별한 증액 사업을 끼워넣을 여지를 주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한 달 남짓 진행되는 국회 심의 과정에서 예산을 사업별로 심사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결국 총액 개념으로 정부안 대비 증감을 논의할 수밖에 없다"며 "총액 개념으로 접근하면 가짜 감액이 늘어나는 만큼 새로운 사업을 추가할 여지가 커지고, 이미 정부안이 제출된 상태에서 증액 논의는 아무래도 의원들이 제안하는 사업 위주로 진행되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문재용 기자 / 김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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