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수요 막기 위해 대출 규제
현금부자 아닌 실수요자 영향
잘못된 진단과 극약 처방 계속돼
"이러다가 시장 마비될 우려"
홍남기 경제부총리와 김현미 국토교통부장관이 16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 관련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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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가 정권 반환점을 돌면서 '집값과 전쟁'에 나섰다. 16일 갑작스럽게 각종 규제를 총망라한 초유의 부동산 종합 대책을 발표했다. 16일 정부 서울청사에서 열린 ‘주택시장 안정화’ 관련 기획재정부ㆍ국토교통부ㆍ금융위원회ㆍ국세청 등 관계부처 합동 브리핑이다.
정권 전체로 보자면 18번째 대책인데 역대급 규제로 손꼽힌다. 대출제한, 보유세 및 양도세 강화,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지역 확대 등을 담았다. 대책대로라면 집을 사기도, 보유하기도, 팔기도 어렵다. 거래시장을 사실상 마비시키는 조치라는 지적이 나온다.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략연구부장은 “정부의 가격 규제 정책이 시장을 왜곡하고 부작용으로 가격이 오르는데, 이를 과열로 진단하고 계속 잘못된 처방을 하고 있다”며 “한계가 많은 대책으로 시장경제 시스템이 망가지고 중장기적으로 집값 불안을 더 키울 수도 있다”고 말했다.
16일 오후 서울 송파구의 한 공인중개사 사무실 앞에 붙어 있는 시세표.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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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요 위한 대책일까
이번 대책에서 가장 강력한 것은 대출규제다. 서울 등 투기지역 및 투기과열지구에서 시세 15억원 이상의 아파트를 살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없다. 시세로 9억원 이상 초과하는 아파트의 경우 초과분의 LTV(담보인정비율)는 20%로 줄어든다. 1년 이내에 들어가 살아야 한다. 사실상 주택거래허가제인 셈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금융대출이 투기수요의 자금동원 수단이 되는 상황을 원천적으로 근절하겠다”고 말했다. 대출을 중단해 집값 하락을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중에 투자처 잃은 돈이 넘쳐나고 있다. 시중통화량을 말하는 광의통화(M2)가 지난 9월 기준 2853조에 달한다.
반면 현금 부자가 아닌 실수요자들은 서울에서 대출 없이 집 사기 어렵다. 허윤경 건설산업연구원 주택 도시연구실장은 “금융규제는 사실상 자산 있는 사람에게 유리하도록 시장을 만든다”며 “시세 9억원을 기준으로 대출규제를 하면 실수요자들까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번에 고가 주택 기준을 공시가격 9억원 이상에서 시세 9억원 이상으로 조정했다. 가격을 4억원 가량 낮춘 셈이다. 시세 9억원을 기준으로 주택담보대출 뿐 아니라 전세자금 대출 등 각종 대출 규제를 받는다. 부동산 114에 따르면 서울에서 시세 9억원을 넘는 아파트는 45만8778가구로, 36.6%에 달한다. 서울 아파트 보유자 열 명 중 넷은 고가 아파트에 사는 셈이다. 강남ㆍ서초구로 보면 열 중 아홉이 해당한다. KB국민은행의 11월 월간 주택가격 동향을 보면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8억8014만원에 달한다.
종부세도 강화된다. 대출 문턱을 높이는 것과 동시에 보유 부담을 늘려 고가주택 수요를 억제하려는 것이다. 1주택자와 조정대상지역 외 2주택 보유자에 대한 종부세 세율이 기존에 비해 0.1∼0.3%포인트 오른다. 3주택 이상 다주택자나 조정대상지역 2주택 보유자에 대한 세율은 0.2∼0.8%p 인상된다. 내년 공시가격 현실화에 따른 세금 부담에 보유세 인상분까지 더해져 세금폭탄이 예상된다.
김종필 세무사는 "올해 아파트값이 별로 오르지 않았더라도 세율 인상, 세부담상한선 상향 조정 등으로 세금이 훨씬 많이 늘어날 것"이라도 말했다.
정부는 규제 강화와 함께 '출구'를 마련했다. 내년 6월 말까지 다주택자가 조정대상 지역 내 10년 이상 보유한 주택을 파는 경우 양도세 중과를 배제하고 장기보유 특별공제를 적용해준다. 2017년 8·2대책과 마찬가지로 양도세·종부세 강화 전 매물을 유도하기 위한 경과 조치다. 다주택자들이 이미 임대주택 등록 등으로 세제 부담을 줄이는 방안을 모색했기 때문에 매물이 얼마나 늘어날지 미지수다.
정부는 이번 대책에서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지정 동네를 사실상 서울 전역으로 넓혔다. 지난달 6일 핀셋 지정한다며 27개 동만 지정했다가, 한 달 만에 번복했다. 과천ㆍ하남ㆍ광명 등 수도권까지 확대해 322개 동이 됐다. 상한제로 분양가도 싸지고 집값도 저렴해져서 실수요자들이 웃어야 하는데 청약 가점이 올라 청년 및 신혼부부들은 엄두도 못 내는 시장이 됐다. 서울 강남 등 수요가 많은 지역 내 새 아파트의 평균 당첨 가점은 60점이 넘어섰다.
서울에 9억원 넘는 아파트 얼마나 되나.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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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발표는 문재인 대통령의 집값 잡기 의지를 담았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19일 ‘2019 국민과의 대화’에서 “부동산 문제는 우리 정부가 자신 있다고 장담하고 싶다”며 “부동산 가격을 못 잡으면 보다 강력한 여러 가지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이후에도 서울 아파트값 상승세가 꺾이지 않고 더욱 커지자 기재부를 주축으로 관련 부처가 총동원돼 대책을 마련해 발표한 것이 이번 12ㆍ16대책이다.
국토부의 한 관계자는 “내년 1월께 발표로 예상했는데 급히 잡혔다”고 말했다. 실제로 분양가 상한제 지역 추가 지정을 위해 주거정책심의위원회를 열어야 하는데 국토부는 12일 심의위원들에게 동의 여부를 서면으로 빨리 제출하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대책이 끝이 아니다. 이날 홍 부총리는 “필요하면 내년 상반기 중으로 추가적인 종합 대책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내년 총선 전에 각종 규제를 퍼부어 시장을 일시 정지시키고 집값을 잡았다고 홍보하려는 의도로 보인다”며 “규제 악순환에서 못 벗어나면 집값은 안정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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