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월 7일
나는 형 종문이가 위독하다는 전달을 받았다
추운 새벽이었다
골목길을 내려가고 있었다
허술한 차림의 사람이 다가왔다
한미병원을 찾는다고 했다
그 병원에서 두 딸아이가 죽었다고 한다
부여에서 왔다고 한다
연탄가스 중독이라고 한다
나이는 스물둘, 열아홉
함께 가며 주고받은 몇 마디였다
시체실 불이 켜져 있었다
관리실에서 성명들을 확인하였다
어서 들어가 보라고 한즉
조금 있다가 본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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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맘때가 되면 별다른 사연도 없는데 이 시가 생각나곤 한다. 책을 읽고 나면 간지에다 언제 읽었는지를 꼬박꼬박 적는 버릇 덕분에 내가 이 시를 처음 접한 게 꼭 삼십 년 전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시인은 아마도 그보다 십 년 전쯤 이 시를 썼을 것이다. 요컨대 이 시는 대략 사십 년 전, 1980년 전후의 풍경인 셈이다. 사십 년 저편인데다 지금은 연탄을 때는 집도 흔치 않으니 이 시의 장면들이 오히려 낯설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번 겨울에도 누군가는 추위와 가난을 버티다 하릴없이 죽어 갈 것이고, 또 누군가는 그렇게 죽은 식솔을 끌어안고 울고 있을 것이다. 아니 차마 그 앞에 나서지도 못한 채 꽁꽁 얼어붙은 울음들을 삼키고 있을지도 모른다. 듬성듬성 들리는 캐럴이 춥기만 하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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