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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집값보다 더 불안한 전세난…“부르는 게 값” 전셋값 상승폭 4년 만에 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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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를 강행하면서 매매 시장뿐 아니라 전세 시장 분위기도 심상찮다. 이사 비수기인 겨울철에 접어들었지만 전셋값 상승세가 지속되고 전세 매물이 자취를 감췄다.

KB월간주택가격동향에 따르면 지난 11월 서울 전세수급지수는 150.7로 올 들어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세수급지수가 150을 넘어선 것은 2017년 6월 이후 처음이다. 전세수급지수가 100을 넘어설수록 전세 수요가 공급보다 많다는 의미다. 올 초까지만 해도 전세수급지수는 88.2에 불과해 공급이 수요를 앞질렀지만 어느새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

전세 수요가 넘쳐나다 보니 서울 전셋값 상승세도 두드러진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지난 11월에만 0.41% 올라 2015년 12월(0.76%) 이후 4년 만에 가장 많이 뛰었다. 지난 9월 0.17%, 10월 0.36%에 이어 매달 상승폭을 키우는 모습이다.

실제 강남권에서는 전셋값이 몇 달 만에 억 단위로 오른 곳이 수두룩하다. 서초구 반포 아크로리버파크 전용 84㎡ 전세는 지난 9월 16억원에 계약됐다. 지난 7월 13억8000만원에서 두 달 만에 2억원 넘게 올랐다. 강남구 대치 은마아파트 전용 84㎡도 최근 6억8000만원에 전세계약이 이뤄졌다. 한동안 5억원대 초반에 그쳤지만 1억원 이상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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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은 역전세난 시달려

양천구 목동 전셋값도 불안한 것은 마찬가지다. 목동신시가지5단지 전용 93㎡ 전세가격은 세 달간 1억원 넘게 올라 7억5000만원 수준이다. 목동 현대하이페리온은 167㎡ 전세 매물이 올 들어서만 1억5000만원 오른 15억원에 거래됐다. 사실상 ‘부르는 게 값’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입주 물량이 쏟아지는 강동구조차 전셋값이 강보합세를 보이는 중이다. 4932가구 대단지인 고덕그라시움 전용 84㎡ 전셋값도 6억원 안팎으로 상승세다.

과천 등 수도권도 분위기는 크게 다르지 않다. 과천 전셋값은 지난 11월 한 달간 2.77% 올라 전국 지방자치단체 중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다. 과천시 원문동 래미안슈르 전용 84㎡ 전세는 올 초보다 1억2000만원 오른 8억8000만원에 거래됐다. 아파트보다 저렴한 과천 빌라 전셋값도 몇 달 만에 수천만원씩 올랐다. 의왕시 청계동 청계마을휴먼시아2단지 전용 84㎡ 전셋값도 4개월 동안 1억원 넘게 오른 4억2000만원 수준이다.

서울, 수도권 전셋값이 들썩이는 배경은 뭘까.

정부가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를 도입한 영향이 크다. 분양가상한제 시행으로 ‘로또 분양’이 쏟아질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청약 대기 수요가 전세로 눌러앉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실제로 서울 전세수급지수는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가 공론화된 7월 이후 급격히 상승했다.

과천, 의왕 등 수도권 주요 도시에서는 청약 1순위 자격을 얻기 위한 이주 수요가 급증했다. 현행 청약 시스템에 따르면 당해 지역에 1년 이상 거주한 무주택자에게 1순위 우선권을 준다. 과천의 경우 1순위 청약통장 보유자가 많지 않다 보니 지난해 이후 5개 청약 단지 중 1순위 당해 청약 마감 사례가 없었다. 이 때문에 외지인이 과천에 주소를 옮겨놓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정부 교육정책도 전셋값 상승에 영향을 미쳤다. 대학 정시 비중을 높인 데다 자율형 사립고, 외국어고, 국제고를 일반고로 전환하기로 하면서 명문 학군 쏠림 현상이 뚜렷해졌다. 실제로 지난 11월 전셋값 상승률을 보면 서울 양천구(1.07%), 강남구(0.65%), 송파구(0.61%) 등 학군 수요가 몰린 지역 전셋값이 많이 뛰었다. 양지영 R&C연구소장은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시행으로 청약 시장이 더욱 과열될 가능성이 높다. 정비사업 위축으로 주택 공급이 줄어드는 데다 청약 대기 수요가 늘면서 전셋값은 계속 상승세를 보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뿐 아니다. 조정대상지역 내 1주택자 양도세 비과세 요건이 ‘2년 이상 실거주’로 바뀌면서 자가 입주율이 높아진 것도 전셋값 상승 배경으로 꼽힌다. 새 아파트가 입주할 시기에 전세를 놓지 않고 집주인이 실거주하는 사례가 많아 전세 물량이 예상보다 늘지 않았다는 의미다.

한태욱 동양미래대학 경영학부 교수는 “단기 급등한 집값을 감당하지 못해 주택 구입을 포기하고 전세로 전환하는 수요가 적잖다. 저금리가 상당 기간 이어질 것이라는 판단에 집주인도 전세보다 월세를 선호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분양가상한제 여파로 재건축, 재개발 등 정비사업이 위축되면 당분간 전셋값 상승세가 이어질 전망이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내년 서울 아파트 입주 예정 물량은 4만3000여가구로 넉넉하지만 2021년에는 2만1700여가구로 반 토막 난다. 서울에서는 재건축, 재개발 이외에 주택 공급 통로가 마땅치 않은 만큼 이후 주택 공급 물량은 계속 줄어들 수밖에 없다.

전셋값이 들썩이면서 전세를 안고 집을 사는 ‘갭투자’가 늘어날지도 관심이 쏠린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서울 갭투자 비율은 57.8%(올 8월 기준)로 서울 전체 주택 매매 거래량의 절반을 넘어섰다. 지난 3월까지만 해도 갭투자 비율은 46.3% 수준이었지만 6월 52.9%로 오르더니 꾸준히 증가세를 보이는 중이다. 특히 강남 4구(강남·서초·송파·강동구)의 갭투자 비율은 3월 55.6%에서 8월 63.8%로 급등해 서울 평균치를 한참 앞질렀다.

“올 들어 서울 아파트 매매가가 상승세를 이어가면서 대출 규제에 막힌 수요자들이 전세를 끼고라도 집을 사는 경우가 많다. 과거보다 갭이 벌어지기는 했지만 전셋값이 급등한 단지 중심으로 갭투자 수요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갭투자가 전셋값 상승세를 떠받치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 분석이다.

이처럼 전세 시장이 불안한 상황에서 정부가 계약갱신청구권, 전월세상한제를 도입할 경우 전셋값이 폭등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계약갱신청구권이란 임대차 계약 기간이 끝난 임차인이 재계약을 요구하면 집주인이 계약을 의무적으로 연장하는 권리다. 현재 상가 임대차에 대해서만 최장 10년의 계약갱신청구권이 시행 중인데 이를 주택임대차보호법에도 적용하겠다는 의미다. 전월세상한제는 계약 연장 시 일정 인상률 이상으로 전월세가격을 올려 받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제도다. 정부와 여당은 이들 제도를 담은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집주인 재산권 침해, 도입 초기 전셋값 상승 등 부작용이 상당할 것이라는 우려다.

전문가들은 전세 시장 안정을 위해서는 분양가상한제 등 공급을 옥죄는 규제를 풀어 수급 불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조언한다. 전셋값이 하락할 경우 세입자가 집주인으로부터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역전세난’이 나타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전셋값이 급등한 서울, 수도권과 달리 지방은 역전세난 우려에 노출된 가구가 수두룩하다. 국토연구원에 따르면 올 6월 기준 전국 12만2000가구가 역전세 위험에 노출된 것으로 분석됐다. 역전세난 위기 가구는 전셋값이 5% 떨어지면 15만가구, 15% 하락하면 16만가구로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 국토연구원 분석이다.

윤재호 메트로컨설팅 대표는 “전세 시장 불안을 해소하려면 규제를 풀어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확대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민간 임대사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리츠 등 기업형 임대사업자 지원책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강조하는 지역별 핀셋 규제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서울, 수도권과 지방 전세 시장 양극화는 계약갱신청구권, 전월세상한제 등 편협적인 정책으로 해결되기 어렵다. 로또 청약 가수요를 막기 위해 채권입찰제를 도입해 수익 중 상당 부분을 공공주택 공급 확대 재원으로 활용해야 한다.” 한태욱 교수 분석이다.

[김경민 기자 kmkim@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37호 (2019.12.11~2019.12.1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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