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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5 (수)

"나는 여전히 살아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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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기업인에 주는 '뵈브 클리코 볼드 우먼 어워드' 심재명 '명필름' 대표 수상

접속·건축학개론 등 40여편 제작, 1세대 여성 영화 제작자로 활동

"워킹맘 고충 해결이 우리 숙제"

"제가 서울극장·합동영화사 기획실에 카피라이터로 입사했을 때만 해도 다들 절 '미스 심'이라고 불렀어요. 웬 여직원이 들어왔다고 주위에서 신기해했죠. '명필름'을 설립할 때만 해도 제가 봐온 여성 제작자는 김지미 선생님뿐이었고요. 기쁘게도 그사이 세상이 달라졌어요. 저보다 뛰어난 여성 제작자가 이젠 정말 많으니까요."

머쓱한 미소가 심재명(56)의 얼굴에 번졌다. 프랑스 샴페인 회사 '뵈브 클리코'는 제2회 '뵈브 클리코 볼드 우먼 어워드 코리아'의 수상자로 영화제작사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를 지명했다. 뵈브 클리코가 1972년부터 전 세계 여성 기업인에게 주는 상.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1805년부터 회사를 일궜던 마담 클리코 퐁사르당(1777~1866)의 대담한 정신을 기린다. 한국에선 작년 '클리오'의 한현옥 대표가 첫 번째 상을 받았다. 심 대표는 "내가 받을 상이 아닌 것 같아 처음엔 손을 내저었다. 영화인 전체에게 주는 상이라고 이해하고서야 받겠다고 했다"고 했다. 애슐리 파울 모엣 헤네시 코리아 대표이사는 "치열한 토론 끝에 매년 수상자를 선정한다. 시대를 대표하고, 여성 기업인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 또 다른 미래를 이끌 영감을 주는 인물을 위주로 골랐다"고 했다.

조선일보

‘명필름’은 내년이면 25주년을 맞는다. 심재명 대표는 “영화제작자는 가장(家長)과도 같다”고 했다. “돈을 대고 사람을 모으고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의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죠. 눈에 안 밟히는 자식이 없어요.” /이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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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 대표가 남편 이은 감독과 함께 명필름을 만든 게 1995년이다. 24년 동안 40여편을 만들었다. '접속' '조용한 가족' '해피엔드' '공동구역JSA' '바람난 가족'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마당을 나온 암탉' '건축학 개론' 등을 만들었고, 최근엔 비정규직 노동문제를 다룬 '카트'와 장애인 형제와의 좌충우돌을 그린 '나의 특별한 형제'를 내놨다. 초창기엔 수억원 빚에 허덕이기도 했다. '접속' 같은 수작을 잇따라 내놓으면서 "'명필름' 크레디트가 붙은 영화는 믿고 본다"는 평도 들었다. 갖은 부침(浮沈)에도 영화계 사람들은 심 대표를 두고 늘 "침착하고 대담한 사람"이라고 평한다. 심 대표는 "운이 좋았다"고만 했다. "시대를 잘 타고 났어요. 한국영화가 제2의 르네상스를 맞던 시기에 재능 있는 감독과 배우를 발굴해내는 기쁨을 누리며 신나게 일했으니까요."

워킹맘의 고충이 없었을 리 없다. 아이 이마가 찢어진 것도 모르고 일하다 뒤늦게 병원에 달려갔던 적도 있다. 루게릭병으로 세상을 떠난 친정엄마가 평생 곁에서 도와준 덕에 그래도 견뎠다. 심 대표는 "여성 영화인의 출산율이 한국 평균 출산율보다 늘 낮다. 시어머니·친정엄마 손 빌려야 여성이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건 여전하다. 다 같이 풀어야 할 숙제"라고 했다.

심 대표는 "생존하고 싶다"고 했다. "갈수록 다양한 영화가 나오기 어려운 환경이잖아요. 그럼에도 '명필름'이란 크레디트를 달고 계속 영화를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젊은 세대들과도 손잡고 가고 싶고요. 소박한 꿈 아니냐고요? 전혀요. 살아남는 게 얼마나 지독하고 대단한 일인데요(웃음)."

[송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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