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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재계 거목' 구자경 마지막 길도 귀감…조화 없는 소탈한 가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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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대기업 최초로 '무계 승계' 사례를 남긴 구자경 LG 명예회장의 장례가 가족장으로 소탈하게 치러지자 재계 안팎에서 고인의 철학이 느껴지는 마지막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LG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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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2대 회장' 구자경 첫 '무고 승계' 실현…"한결같은 그 다운 마지막"

[더팩트|이민주 기자] 재계 최초로 '무고 승계'라는 전례 없는 사례를 남기며 귀감이 됐던 고(故) 구자경 LG 명예회장.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이후 인재 양성에 매진하는 것 외 소탈한 '자연인'의 삶을 선택하며 '정도(正道)'를 강조해 온 고인의 경영 철학은 마지막 가는 길까지 한결같았다.

구자경 명예회장은 지난 14일 오전 10시 향년 94세 나이에 숙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곧이어 마련된 고인의 장례는 재계의 '큰 인물'답지 않게 소박하게 준비됐다. 빈소는 서울의 한 대학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고인과 유족의 뜻에 따라 비공개 가족장으로 4일간 치러지고 있다.

빈소 앞으로는 가림막을 설치해 내부를 볼 수 없도록 했고 빈소 밖에는 단 한 개의 조화도 놓이지 않았다. 가림막 위로 "차분하게 고인을 애도하려는 유족의 뜻에 따라 조문과 조화를 정중히 사양하오니 너른 양해를 바랍니다"라는 문구가 쓰였다.

빈소 안에는 문재인 대통령, 문희상 국회의장, 이낙연 국무총리, LG 임직원 일동, GS 임직원 일동, 구자두 LB인베스트먼트 회장, 구자원 LIG 명예회장, 구자열 LS 회장 등이 보낸 조화가 놓였으며 유족들은 연신 들어오는 근조화환을 돌려보냈다.

조문도 범LG 일가와 일부 정·재계 인사만 최소한으로 받아,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에서 진행되고 있다.

'재계의 거목'답지 않은 소탈한 장례는 구자경 명예회장의 뜻에 따른 것이다. 재계 관계자 등에 따르면 고인은 생전 자신의 장례식을 가족장으로 조용하게 치러 달라고 가족과 주변에 당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LG그룹도 15일 보도자료를 통해 "구 명예회장의 장례는 고인과 유족의 뜻에 따라 가족장으로 최대한 조용하고 차분하게 치르기로 했다"라며 "별도의 조문과 조화를 정중히 사양한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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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경 LG 명예회장의 빈소는 서울 소재 한 대형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비공개 가족장으로 4일간 치러지며 이틀차를 맞은 15일 정·재계 인사들의 조문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LG그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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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는 차분하고 소박한 장례에 '역시 그답다'는 반응이다. 재계에 따르면 구자경 명예회장은 재임 당시에도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겸손한 경영 방식을 고집했다. 생전에도 허례허식 없는 간소한 삶을 살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구자경 명예회장은 은퇴 후 충남 천안시 성환에 있는 연암대학교 농장에서 버섯 연구에 몰두하는 등 자연인의 삶을 살았다.

그가 쓴 회고록에서도 "외양보다는 내실을 다져야 한다"는 삶의 태도가 잘 드러난다. 회고록에는 "나는 주로 구태회 숙부의 옷을 대물림해 입었다.", "조부께서는 학용품도 하나를 다 써야 새것 하나를 꺼내 주셨다. 그 정도로 철저하게 절약 정신을 익히게 했다"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회장님' 답지 않은 소탈한 모습에 대한 증언도 나왔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15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구 명예)회장님께서 1980년대 정부청사 인근 허름한 식당에서 일행과 수행원도 없이 혼자 비빔밥을 드시던 소박한 모습을 몇 차례나 뵀다"며 "회장님의 그런 풍모가 국민의 사랑을 받는 기업을 키웠다. 회장님의 명복을 빈다"는 글을 올렸다.

국내 대기업 중 최초로 스스로 회장직을 후대에 넘기는 '무고 승계'라는 모범 사례를 남기기도 했다.

구자경 명예회장은 지난 1970년 구인회 창업회장이 타계한 이듬해에 45세 나이로 LG그룹 2대 회장 자리에 올랐다. 이로부터 25년이 지난 후인 1995년 2월 LG와의 고락을 뒤로하고 스스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구 명예회장은 이전부터 "선친의 갑작스러운 타계로 경영권 승계 준비에 대해 아쉬움이 있었다"며 "70세가 되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날 것"이라고 말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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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경 명예회장은 국내 대기업 최초로 스스로 회장직을 후대에 넘기는 무고 승계 사례를 남겨 귀감이 됐다. 사진은 1970년 1월 9일 LG그룹 2대 회장으로 취임한 구자경 명예회장. /LG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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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통해 LG그룹의 전통인 장자승계 원칙을 굳건하게 만들고 안정적인 승계가 이뤄지도록 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구자경 명예회장의 뜻에 따라 장자인 고(故) 구본무 회장도 1975년부터 20년 동안 그룹 내 여러 현장을 두루 거치면서 후계자 수업을 받았다.

재계 한 관계자는 "대기업 최초의 무고 승계는 업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며 "은퇴할 나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경영 혁신을 위해 세대교체를 단행한 것이다. 변함없는 장자 승계 원칙과 후계자 수업 등이 LG그룹의 안정적인 경영권 승계의 비결"이라고 말했다.

고인의 '인화의 경영'이 불협화음 없이 이어진 구 씨·허 씨 양가의 동업에도 영향을 준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재계에 따르면 구 씨·허 씨 양가의 동업 관계는 특수한 사례로, 양가는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사업매각이나 합작, 지주회사 체제 전환 등 위기 극복, 경영 사안을 결정하는 데 있어 잡음 없이 합의로 일을 처리했다.

LG그룹과 GS그룹 계열 분리 과정 또한 합리적이고 순조롭게 이뤄졌다. 구자경 명예회장의 직계가족이 전자, 화학, 통신 등을 맡고 허 씨 집안이 GS그룹을 설립해 정유와 유통, 홈쇼핑 등 분야를 맡기로 하면서다.

한편 장례 이틀 차인 15일 구자경 명예회장의 빈소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해 정·재계 사람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minju@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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