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 내일 美비건 대북대표 청와대서 접견 예정
北, 주요 협상 앞두고 '삶은 소대가리' '오지랖 넓은 중재자' 막말 동원
북한 매체는 15일 문재인 대통령을 '남조선 당국자', '남조선 당국'으로 부르면서 "조선반도 비핵화와 평화를 구걸하는 멍텅구리 짓만 일삼고 있다"고 비난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방한한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와 16일 청와대에서 면담한다. 북한이 비건 대표 방한을 앞두고 '평화 구걸' 운운하며 문 대통령을 비난한 데 대해 대북 전문가들은 "북한이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과 관련해 남측을 비난함으로써 협상 지렛대로 삼으려는 수법을 또 쓰고 있다"고 했다.
◇北, 文대통령 외교활동 "구걸" "비굴한 매국적 행태" 비난
북한의 대외용 라디오인 평양방송은 이날 '외세의존으로는 그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제목의 보도에서 "남조선 현 당국은 당장 존망의 위기에라도 처할 것 같은 위구심에 사로잡혀 외세에 조선반도 비핵화와 평화를 구걸하는 멍텅구리 짓만 일삼고 있다"고 했다. 특히 "남조선의 현 당국자는 남조선을 방문한 어느 한 나라의 외교부장을 만났다"며 지난 5일 문 대통령이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을 접견한 사실을 거론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이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중국 정부의 긍정적 역할과 기여에 대해 감사드린다" 등의 발언을 한 것을 '구걸'이라고 비난했다.
또 문 대통령이 지난 7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진전에 관해 30분간 통화한 것을 두고도 "조선반도 정세와 북 비핵화를 위한 한미공조 방안에 대해 쑥덕공론을 벌였다"고 했다. 이어 지난달 개최된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를 비롯해 문 대통령이 지난 1월부터 진행해온 각종 대북 외교 활동을 거론하며 "남조선 당국의 비굴한 사대 매국적 행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남조선 당국이 외세에 빌붙어 관계개선과 평화를 구걸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열을 올렸지만 실제로 북남관계와 조선반도의 정세가 완화된 것이 아니라 더욱 악화했다"며 "외세의존으로는 그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고 했다.
방송은 "외세에 의존하면서 그 무엇을 풀어보려는 것이야말로 어리석은 짓"이라며 "그로 해서 차례질 것은 수치와 굴욕의 올가미를 더 깊숙이 쓰게 되는 것밖에 없다는 것을 똑바로 알고 분별 있게 처신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北, 과거에도 중요 협상 앞두고 "소대가리" 등 막말
북한은 과거에도 자신의 뜻대로 협상이 풀리지 않거나 중대한 협상을 앞둔 상황에서는 막말을 거듭하면서 협상력을 높이려는 시도를 해왔다. 북한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지난 8월 16일 문 대통령을 향해 "정말 보기 드물게 뻔뻔스러운 사람"이라며 문 대통령이 8·15 경축사를 통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계속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에 대해 "삶은 소대가리도 앙천대소(仰天大笑·하늘을 보고 크게 웃다)할 노릇"이라고 조롱했다. 문 대통령을 "아랫사람들이 써준 것을 그대로 졸졸 내리읽는 남조선당국자"라고 문 대통령을 깎아내리기도 했다.
김정은은 지난 2월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이 결렬되고 40여일 후인 지난 4월 13일 열린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문 대통령에게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당사자'가 돼야 한다"며 비꼬았다. 또 한·미 연합훈련이 열린 지난 8월 11일 권정근 북한 외무성 미국담당국장은 담화문을 통해 우리 정부와 군을 '바보' '개' '똥' '웃기는 것' '도적' 등에 비유했다.
여야 정치권에 대해서도 북한은 막말을 일삼아왔다. 대남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는 황교안 한국당 대표를 향해 "박근혜 역도의 특등 졸개"라고 했고, 나경원 전 원내대표에게는 "뻔뻔스럽기 그지없는 X"이라고 했었다.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8월 대북 온건파인 대안신당 박지원 의원을 향해 "주제넘게 설태 낀 혓바닥을 놀려대며 구린내를 풍겼다"라고 한 적도 있다.
그러나 북한의 이 같은 막말은 미국과 비핵화 협상을 앞두고 오히려 북측이 초조해하고 있다는 증거라는 전문가 분석도 나온다. 한 대북 전문가는 "연말 미국에 제시한 '협상 시한'을 앞두고 북한은 무엇인가 결론을 내야만 하는 상황"이라며 "국내 정치권을 향한 북한의 위협적인 언사는 '남한은 최소한 우리 편을 들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며 으름장을 놓으려는 목적으로 보인다"고 했다.
[변지희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