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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3 (일)

약값만 생각하면, 브라질 아이들이 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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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황혜리] 면역체계가 아직 어른만큼 정립되지 않은 아이들은 자주 아프다. 우리 아들도 한두 달에 한 번 꼴로 감기나 장염 때문에 병원에 간다. 그만큼 약값도 많이 든다. 하지만 한국의 약값은 브라질 약값에 비교하면 새 발의 피처럼 느껴진다.

한국의 약국에선 병원에서 처방해 준 기간 만큼의 약만 준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고, 다른 나라도 다 그렇게 합리적으로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브라질에 살면서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알다시피, 애가 아플 때 먹는 약이 한 가지만 있는 게 아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심한 감기에 걸리면 기관지에 쓰는 약, 코에 쓰는 약, 항생제 등등 아이의 증상에 따라 다양한 약을 한꺼번에 처방받는다. 여기까지는 브라질도 똑같다.

하지만 브라질에서 처음 약을 사본다면 충격받을지도 모른다. 만약에 한국의 병원에서 3일 치의 약을 처방받았다면 기관지약 3일 치, 코에 쓰는 약 3일 치, 항생제 3일 치 등 소분한 약을 약국에서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브라질에서는 병원에서 처방해준 기간과 상관없이 기관지약 한 통, 해열제 한 통, 항생제 한 통을 다 사야 한다. 즉 한국의 약국에서처럼 약을 먹어야 하는 날 수에 따라 나뉜 양만 사는 것이 아니라 성분별로 약 한 병을 통째로 다 사야 한다는 말이다.

베이비뉴스

브라질 약국에서 산 코에 쓰는 약 한 통 150mL(왼쪽). 오른쪽은 한국 병원에서 내린 처방에 따라 약국에서 구입한 약. 먹어야 하는 날만큼만 소분돼 있다. ⓒ황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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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브라질 약값이 싸길 하나? 그렇지도 않다. 항생제를 예로 들어보자.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항생제 한 통은 브라질에서 약 100~160헤알(BRL)이다. 2019년 12월 11일 환율 1헤알=287.77원을 기준에 놓고 계산해 본다면 한화로 약 2만 8000~4만 6000원. 여기에 다른 처방 약까지 같이 사면 감기약 한 번에 3~5만 원은 그냥 나간다는 소리다.

그렇게 비싼 약이라면 잘 보관했다가 다음에 또 사용하면 되지 않냐는 말이 나올 수도 있다. 물론 그래도 되지만 어떤 약들은 오래 보관할 수 없다. 브라질 항생제는 개봉 뒤 냉장고에서 7일만 보관할 수 있으며 그 후엔 폐기해야 한다.

아이를 낳고 나니 눈에 띄는 모든 아이들에게 관심이 간다. 일반 가정의 아이들은 물론, 거리의 아이들에게까지. 브라질에서는 한국과 달리 노숙자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어린이는 물론이고 심지어 갓난아기와 함께 나앉은 노숙자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런 환경의 아이들은 잘 먹지도 못할 텐데, 아프기라도 하면 약은 어떻게 먹을까? 일반 가정에 있는 아이들보다 취약한 환경에서 병에 걸릴 확률도 더 높고 약값도 한두 푼이 아닌데….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정말 아이들이 가엽다. 한국의 합리적인 약 처방 제도가 다른 나라에도 퍼진다면, 거리의 아이들도 아플 때 약을 먹고 나을 가능성이 조금은 커지지 않을까?

*칼럼니스트 황혜리는 한국외대 포르투갈(브라질)어과를 졸업하고 현재 브라질에서 한 살 아들을 기르고 있는 엄마입니다. 브라질에서 임신, 출산, 육아를 경험하며 이 문화들을 한국과 비교하고 소개하고자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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