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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눈/구르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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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

Silence / 윤병운 - 80×117㎝, 캔버스에 오일, 2012미술학 박사, 인사미술제 우수상


눈/구르몽

시몬 눈은 네 맨발처럼 희다

시몬 눈은 네 무릎처럼 희다

시몬 네 손은 눈처럼 차다

시몬 네 마음은 눈처럼 차다

눈발을 녹이던 뜨거운 키스

언 마음 녹이던 작별의 키스

눈은 소나무 가지 위에 쌓이고

네 이마와 머리카락 위에 쌓이네

시몬 눈은 고요히 뜰에 잠들었다

시몬 너는 나의 눈, 나의 자장가

***

이발소에서 처음 이 시를 읽던 초등학교 시절, 이 시가 좋았다. 낡은 바리캉이 머리를 뜯어나갈 때 눈을 찡그리며 계속 이 시를 읽었다. 시몬이란 이름이 달콤하게 느껴졌다. 영희, 숙자, 정님이 등 동네 아이들 이름과 느낌이 달랐다. 나중에 더 자라 뽀뽀를 하게 되면 영희나 숙자보다 시몬과 하는 게 가슴이 설렐 것 같았다. 그 시절 내 마음 안에 이국정서라는 개념이 싹텄는지 모르겠다. 이발소에는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노여워하거나 슬퍼하지 말라’는 푸시킨의 시도 걸려 있었다. 내가 별이 되었을 때 내 시의 하나가 어느 궁핍한 나라의 후미진 이발소에 붙어 있을 수 있다면 참 좋겠다.

곽재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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