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9.25 (수)

[기자수첩] '증거 조작 논란' 화성 8차 사건, 수사 지휘한 건 검찰 아닌가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조선일보

이동휘 사회부 기자


"화성 8차 사건도 검찰이 직접 지휘했습니다. 검사가 용의자를 2시간 직접 면담하곤 '수사가 잘됐다'고 했고, 현장 검증에도 참여했어요. 그래놓고 인제 와서 남의 일처럼 말해도 되는 겁니까."

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의 경찰 수사팀 관계자들은 30년 전을 생생히 기억했다. 이들이 복기(復棋)한 당시 상황은 이렇다. 1988년 9월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한 주택에서 박모(당시 13세)양이 성폭행을 당하고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이 수사에 나섰고, 이듬해 7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체모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윤모씨가 범인'이란 결론을 내렸다.

경찰은 윤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그러자 담당 검사는 영장을 곧바로 청구하는 대신 "윤씨를 불러오라"고 했다. '경찰 수사를 못 믿겠다'는 취지였다. 검사는 윤씨를 2시간가량 직접 면담했다. 형사들은 문밖에서 기다렸다. 면담을 마친 검사는 "수사가 잘된 것 같다"며 영장을 청구했고, 기소했다.

이런 과정은 1954년 형사소송법 제정 이후 모든 사건에 적용되고 있다. '경찰은 모든 수사에 대해 검찰 지휘를 받는다'는 대원칙이다. 당시 수사팀 관계자들은 "화성 사건은 전 국민의 관심을 받는 사건이었고, 당연히 검찰도 각별한 관심을 갖고 지휘를 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범인이 되어 20년을 감옥에서 보내고 나온 윤씨가 "경찰 강압 수사"를 주장하며 지난달 수원지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최근 경찰은 이 사건에 대한 뼈저린 자체 조사를 벌이고 있다. 의심을 갖고 질문하는 후배 형사, 희미해진 기억의 조각을 맞춰가며 대답하는 선배 형사, 모두가 자존심의 상처를 감수하며 당시를 재구성하는 중이다. 민갑룡 경찰청장도 "(강압 수사 등에 대한) 실체적 진실을 발견한 다음에 거기에 따라서 합당한 조치를 하겠다"고 했다. 경찰 관계자는 "결국 경찰이 공식 사과하겠다는 뜻"이라고 했다.

검찰 쪽은 어떨까. 수원지검은 11일 "이 사건을 직접 조사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검사는 '공익의 대변자'"라고 했다. 경찰이 조사 중이던 이춘재는 검찰이 전날 이미 이감해놨다. 너무나 당당했고, 별다른 자성(自省)도 느껴지지 않았다.

경찰이 강압 수사를 했더라도, 국과수가 증거를 조작했더라도, 결국 지휘권자는 검찰이었다. 권한에 책임이 뒤따르는 것은 상식. 지금처럼 '경찰이 잘못했고, 우리는 바로잡는다'는 식의 유체 이탈 화법을 계속한다면, 굳이 검찰이 수사지휘권을 가져야 할 이유도 없지 않을까.

[이동휘 사회부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