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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현장에선] ‘마을 공동체’에 걸어보는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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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종영한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을 재밌게 봤다. 드라마 속 배경 ‘옹산’이란 가상의 지역이 주는 따스함이 기억에 남는다. 극중 인물인 야구선수 강종렬은 연애시절 주인공 동백이에게 옹산에 대해 “온 동네가 가족 같다”고 설명한다. “밥때가 되면 아무 집에나 들어가 밥을 먹어도 뭐라 하지 않고,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 숟가락 하나 더 놔주는” 곳이다. 게장골목 ‘아지매’들은 동백이를 계모임에 끼워 주지도 않고, 물건값도 더 받으며 구박하지만, 김장 때가 되면 김치 안 가져가냐고 성화를 부린다. 옹산에 형성돼 있는 끈끈한 공동체는 동백이에게 닥친 위기를 힘을 합쳐 막아낸다.

세계일보

이진경 사회부 차장


새삼 옹산이 부러워진 이유는 성북 네모녀, 인천 일가족 등 세상을 등진 사람들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안타까움 때문이다.

이들 대부분 주변과 단절된 채 지냈다. 갚지 못할 만큼 불어난 빚, 생활비 부족 등 어려움이 발생하자 극단적 선택을 했다. 정부, 지방자치단체에서 위기가구를 찾기 위한 노력에도 사각지대는 있었다. 주민센터에 도움을 요청한 경우도 있었지만 부양의무자 등 일정요건을 갖춰야 해 지원에도 한계가 있었다. 이웃들도 이들의 어려움을 몰랐다. 성북 네모녀의 경우 숨진 지 한 달이나 지난 뒤에야 발견됐을 정도다.

만약 이들이 옹산에 살았다면 어땠을까. 하루 이틀만 얼굴이 보이지 않아도 무슨 일이 있진 않은지 들여다보고, 식사를 챙겨주고, 어려움이 있으면 내일처럼 나서주지 않았을까.

경제 성장에 온 힘을 쏟은 뒤 한국은 여러 과제에 직면해 있다. 양극화, 세대갈등 심화, 가족 해체, 안전하지 않은 사회, 1인가구 증가 등 다양한 문제가 터져나오고 있다. 일가족 사망도 계속되고, 자살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며, ‘월거지’(월셋집에서 사는 거지)·‘이백충’(한 달에 200만원 이하 버는 사람) 등 차별적인 신조어들이 등장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마을공동체가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일정 부분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웃이 이웃의 사정을 알고, 손을 내밀고, 아이들을 함께 돌보고, 차별하지 않고, 위험요소를 함께 제거하는 것이다.

현실에서도 아주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지난달 말 현장탐방 형식으로 방문한 부산 해운대구 반송2동에서 도시 속 공동체 모습을 봤다. 반송2동은 마을건강센터를 중심으로 25개 동아리가 조직돼 있었다. 걷기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봉사활동을 하고, 인근 건축폐기물 업체가 규정을 어기지는 않는지 감시한다. 반찬 나눔 활동을 하면서 마을 어르신들이 고독사하지 않게 살핀다. 한 주민은 “돌봄 동아리 활동을 하시는 80대 어르신은 자신이 더 늙으면 다른 사람이 나를 돌봐줄 것이란 믿음을 갖고 계신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마을공동체가 한국이 안고 있는 문제를 치유할 만병통치약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공동체가 있어서 한 번이라도 이웃을 돌아보는 기회를 준다면 그 가치는 충분하다. 주민 스스로 공동체를 만들 수 있도록 정부, 지자체가 주민들과 함께 고민해야 한다. ‘동백꽃 필 무렵’ 대사를 인용하자면, 우리는 ‘오지랖으로 굴러가는 민족’이기에 공동체를 통해 작은 관심이라도 끊기지 않게 한다면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이진경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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