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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일사일언] 심양과 선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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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임경희 국립고궁박물관 학예연구관


이번 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청 황실의 아침, 심양 고궁' 전시가 시작됐다. 청 태조와 태종의 칼 등 중국 국보급 유물 13점이 포함돼 있다.

전시를 준비하면서 지명 등 외래어 표기 때문에 고심했다. 국립국어원이 정한 외래어 표기법에는 "중국의 역사 지명으로서 현재 쓰이지 않는 것은 우리 한자음대로 하고, 현재 지명과 동일한 것은 중국어 표기법에 따라 표기하되, 필요한 경우 한자를 병기한다"라고 돼 있다.

심양은 청 왕조 최초의 수도라는 역사 지명인 동시에 현재도 같은 한자로 표기되는 도시다. 국어원 규정대로라면 전시 제목은 중국어 표기법에 따라 '선양(瀋陽)'이라고 해야 맞는다. 하지만 심양은 우리 국민 대다수가 병자호란 때 소현세자가 끌려간 곳으로 익히 배워 알고 있는 곳이다. 한 명이라도 더 익숙한 지명을 쓰는 게 전시 효과가 클 것 같아 결국 '심양'을 선택했다. 참고로 현재 교과서에서는 심양과 선양을 같이 사용하고 있다.

외래어 표기법을 두고 심양과 선양을 고민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만주어를 생각했다. 청 황실은 스스로 만주족의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여러 면에서 노력했다. 궁궐 현판이나 중요 문서는 만주어와 한자를 함께 적었다. 하지만 현재 만주어는 중국 신장자치구 이리(伊犁)지역 시보족(錫伯族) 중 몇만 명만 사용할 정도로 사어(死語)에 가깝다. 만주족에서 발흥한 청 황실 주요 유물을 전시하는데 청 태조 '누르하치'나 태종 '홍타이지'처럼 몇몇 단어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우리식 한자음이나 중국어 발음으로 표기할 수밖에 없다.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언어의 처지는 서글펐다. 동시에 우리 말과 글을 유지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도 소중한 것인지 새삼 깨달았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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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의 역사적 성격을 드러내는 용어 하나도 고심해야 하는 것이 박물관 전시다. 청대 초기 역사와 문물을 살피기에 좋은 이번 전시를 꼭 한번 관람하시기 바란다. 유물과 함께 전시 기획자의 문제의식도 찾아보면 더 재미있을 것이다.





[임경희 국립고궁박물관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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