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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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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가족] 남북 보건의료 용어 통일, 생명 살리는 소통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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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김신곤 통일보건의료학회 이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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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눈앞에 70년 된 중증 환자가 있다. 자신의 힘으로 질병 해결의 능력이 없는 비관적인 환자다. 그 환자는 전쟁을 치르고 아직도 상흔을 지속하고 있는 분단된 한반도다. 그런데 최근 조금씩 움직이며 소생의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곧 건강을 회복하지 않겠냐는 기대를 갖기도 했다. 남북 정상, 북·미 정상의 연이은 사상 유례없는 만남을 목도하며 가졌던 희망이다. 그러나 70년 동안 지속돼 온 분단의 벽은 높고도 공고했다.

경색은 막힘이다. 숨통이 막히면 죽게 되고, 혈관이 막히면 세포와 조직이 죽는다. 주변 세포와 소통하지 않는 암세포는 생명을 잠식한다. 그래서 경색과 불통의 결과는 ‘생명 없음’이다. 그런 절망적인 상황일수록 우리는 생명을 살리는 끈을 놓을 수 없다. 역설적이게도 절망에서 잉태되는 생명이 더 큰 기쁨이 된다.

모든 소통이 중요하지만 특별히 보건의료 영역에서의 소통은 생명과 직접 관련된다. 생명의 출발인 임신과 출산에서부터 생명의 마지막인 임종에 이르기까지 보건의료인들은 서로간에, 그리고 환자 및 보호자들과 수많은 소통을 하며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해서 보건의료인의 삶은 타인과의 소통의 여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생명을 살리는 소통이 어긋나면 안 된다. 서로에게 진의(眞意)와 맥락(脈絡)이 잘 전달되고 정확하게 이해돼야 한다. 보건의료 영역에서의 소통 부족은 생명과 건강을 해치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70년을 넘어선 분단은 남북한 사람들을 마치 이방인처럼 살아가게 했다. 생긴 모습과 말은 비슷해도 진짜 소통은 쉽지 않다. 분단 자체가 소통의 부재다. 남측은 서구화된 교육과정을 통해 영어가 보건의료인의 일상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북측은 주체의학과 고려의학이라는 특성을 기반으로 한글에 바탕을 둔 전통 용어가 보건의료 현장에 자리 잡고 있다.

언젠가 남북 간의 교류협력이 활발해지게 될 때 서로가 사용하는 보건의료 용어에 대한 이해의 부족, 소통의 어려움은 남북을 가로질러 만나게 될 보건의료인과 환자들에게 난맥상을 초래할 수 있다. 남북 보건의료 전문가들 간, 현대의학과 전통의학 간, 보건의료인과 남북 주민들 간에 소통할 때 초래될 수 있는 삼중(三重)의 난관이다.

위기는 한편으로 기회다. 해서 남북 보건의료 용어 통일을 위한 준비는 오히려 삼중의 난관을 극복하는 삼중의 기회가 될 수 있다. 경색된 정국과 상관없이 생명을 살리는 소통은 시작돼야 한다. 남북 보건의료인들은 조건 없이 만나야 한다. 깊은 밤이 맑은 새벽의 전조이듯이 한반도의 암울한 상황이 머지않아 다가올 희망의 전주곡이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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