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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9 (금)

자식들도 깜빡 속은 엄마 손맛···44년간 부동의 1위 이 조미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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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장수 브랜드] 16. 다시다

제일제당, 새 조미료 개발다시다 20일부터 시판= 쇠고기와 생선을 주성분으로 한 새로운 조미료가 제일제당에 의해 개발되어 20일부터 시판된다. 다시마로 이름 붙여진 이 새로운 조미료는 각종 국ㆍ찌개와 김치ㆍ양념장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쓸 수 있고 조리도 간편하여 누구나 손쉽게 쇠고기와 생선의 미각을 낼 수 있는 것이 특징. 원료 75∼80%가 천연원료로 돼 있는 이 조미료의 값은 쇠고기다시다 60g이 1백40원, 생선다시마는 60g이 1백30원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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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다의 탄생. 1975년 출시 기념 신문 광고다. 옛 맞춤법 표기에 사용법까지 안내한 부분이 눈에 띈다. [사진 CJ제일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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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11월 18일 자 중앙일보 2면 하단엔 이런 내용의 단신이 실렸다. 기사 내용은 간단하지만, 이 당시 조미료의 왕좌를 지키던 미원에 도전하던 제일제당(현 CJ제일제당)은 비장했다. 오죽하면 삼성 창업주인 고(故) 이병철 회장은 “세상에서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세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가 자식이고 두 번째가 골프요 세 번째가 미원이다.”라는 말을 남겼을까. 그만큼 미원의 위치는 영원할 것 같았다.



어머니의 맛, 다시다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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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출시된 다시다 명품 골드. [사진 CJ제일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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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어머니가 요리를 잘할 리가 없는데도 우리는 ‘엄마 밥 ’하면 따듯하고 맛있는, 찌개가 보글보글 끓는 밥상을 떠올린다.

이런 자동 연상의 상당 부분은 찌개를 맛보고 “그래, 이 맛이야”라며 흡족해하는 ‘국민 엄마’ 배우 김혜자씨 출연 광고에 빚을 지고 있다. 한국인이면 다 아는 그 맛, 다시다는 ‘고향의 맛’ ‘엄마의 손맛’를 브랜드 이미지 삼아 44년간 조미료 시장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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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11월 18일 중앙일보 2면 하단. 형광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출시를 앞둔 다시다 관련 단신 기사다. 기사 앞부분과 뒤에 나오는 '다시마'는 다시다의 오기.[중앙일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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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다시다의 조미료 시장 점유율은 80% 이상이다. 최근 10년간에도 매해 2만5000t가량을 생산해 왔다. 다시다 브랜드 제품군이 올리는 매출은 연간 3000억원. 기업 대 기업(B2B) 판매 매출 성적도 여전히 좋다.


한국 조미료 역사는 1956년 대상의 전신인 동아화성공업이 출시한 미원에서 시작된다. 미원은 사탕수수 원당을 미생물 발효시켜 만든 발효조미료(MSG)다. 이런 형태의 조미료인 글루타민산은 아미노산의 일종으로 ‘제5의 맛’으로 알려진 감칠맛을 내는 성분을 기본으로 만들어진다.

1세대 조미료로 분류되는 미원은 1970년대 중반까지 20여년간 국내 조미료 시장의 절대 강자였다. 여러 식품업체가 미원에 도전장을 냈지만, 아성을 무너뜨리진 못했다. 제일제당도 63년 미원과 이름도 유사한 조미료 미풍을 시작으로 다양한 도전을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다시다가 나오기 전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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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제일제당 조미료 '아이미' 광고. 미원을 잡기 위해 제일제당이 내놓은 야심작 중 하나지만, 큰 성공을 거두진 못했다. [사진 CJ 제일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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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강자 미원 잡아라



판도 변화는 시판 조미료에 대한 기본 생각을 바꾸면서 시작됐다. 제일제당은 72년부터 종합 조미료로 시장 구조를 아예 바꾸기 위한 방안을 연구했다. 화학조미료가 아닌 쇠고기, 생선, 양파 등 천연 원료를 섞어 가장 이상적인 혼합비를 찾는 여정의 시작이었다. 원재료와 부재료의 영양분을 파괴하지 않으면서도 액체 원료를 분말로 만들어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이상적인 혼합비를 찾기 위한 2년의 연구 끝에 다시다가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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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후반 여성들이 제일제당이 주최한 다시다 요리 강습에 참여하고 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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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다는 ‘입맛을 다시다’는 말에서 따온 순우리말이다. 이 네이밍도 다시다가 국민 조미료로 자리 잡는 데 기여했다. 한자 이름에 비해 친근하고 현대적인 느낌을 주기 때문이었다. 이름을 붙인 것은 제일제당의 한 직원이었다(출처CJ제일제당 60주년 사)고 전해진다. 신제품 출시를 앞두고 전 직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사내 공모를 했고, 당선작이 다시다였다는 점은 사사에 기록돼 있지만, 막상 제안자가 누구였는지는 현재로는 알 수가 없다.



‘밥상 위의 해결사’로 인기



다시다는 등장하자마자 밥상 해결사로 급부상했다. 국, 찌개, 국수, 장국, 조림 등 거의 모든 한식 요리에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소비자의 마음과 혀를 동시에 점령했다. 간편하게 쇠고기 국물맛을 낼 수 있는 조미료에 대한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주머니가 가벼운 서민이 저렴하게 고기 맛을 낼 수 있는 비법이었기 때문이다. 이 덕에 출시 첫 달 20t이었던 다시다 생산량은 두 달 만에 200t으로 10배 증가했다. 기존 화학조미료와는 다른 감칠맛의 시대를 열었다. 미원이 밀리기 시작하자 대상은 82년 다시다와 같은 종합 조미료 ‘맛나’, ‘감치미’ 등을 내놓았지만 이미 다시다가 종합 조미료 시장을 장악한 뒤였다.

뭐니뭐니해도 다시다 성공의 1등 공신은 배우 김혜자씨다. 다시다 출시와 함께 처음 전파를 탄 광고에 출연한 그는 “그래 이 맛이야”라고 카피를 반복하며 장기집권했다. 다시다 마케팅은 한국 상업 광고사에서 가장 성공적인 광고 캠페인 중 하나로 꼽힌다. 25년간 광고 모델을 한 김씨는 한국 최장수 광고모델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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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혜자씨는 다시다 브랜드 이미지 형성의 9할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5년간 이 브랜드 광고 모델로 활동하면서 기네스북에도 올랐다.[사진 CJ제일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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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에 다시다가 쇠고기 맛이 난다는 점을 강조했다면, 살림살이가 좀 나아진 80년대 후반에는 여기에 ‘고향의 맛’이라는 이미지를 추가했다. 이 캠페인은 90년까지 이어졌다. 고향과 맛을 연계해 ‘맛의 상징화’를 성공적으로 달성하면서 소비자 향수를 자극했다는 평가다. ‘다시다=어머니=고향의 맛’이라는 등식은 다시다 브랜드의 핵심 자산이 됐다.



부엌 사라지는 시대, 기로의 다시다



요즘 다시다는 두 가지 도전에 직면해 있다. 건강, 웰빙 바람과 맞물린 조미료를 꺼리는 문화와 가정에서 부엌이 사라지는 현실이다. 90년대 들어 시작된 흐름은 최근 가속 페달을 밟은 듯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이에 따른 다시다 업그레이드 프로젝트는 자연스럽고 담백한 맛을 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 어떤 음식도 배달 가능한 한국의 요식업 환경, 가정간편식(HMR) 산업의 성장으로 집에서 밥을 해 먹는 가정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점 등이 다시다 브랜드가 변신을 시도해야 한다는 신호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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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다 요리의 신 3종. 1인 가구 증가와 배달문화 확산으로 갈수록 집에서 밥을 해 먹는 빈도가 줄어들고 있다. 이에 다시다는 새로운 시장 창출에 나서고 있다. [CJ 제일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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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제일제당은 이런 추세에 따라 2012년 프리미엄 제품(명품 골드 다시다 쇠고기)을 내놓는 등의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2017년 등장한 ‘다시다 요리의 신’은 편리함을 극대화한 제품이다. 다시다에 각종 양념을 다 넣은 ‘올인원(All In One) 방식으로 한 가지 조미료만 있으면 국물과 볶음 요리에 맛을 낼 수 있게 돼 있다. 1인 가구, 요리를 꺼리는 소비자의 마음을 다시 사로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전영선 기자 az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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