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3일 발표한 '3분기 국민소득 잠정치'에서 눈길을 끈 것은 'GDP(국내총생산) 디플레이터'였다. GDP 디플레이터는 물가를 감안하지 않은 명목성장률과 물가를 감안한 실질성장률의 차이로, 'GDP 물가'라고 한다. 'GDP 물가'는 소비자물가지수와 생산자물가지수 같은 국내 물가뿐만 아니라 수출품과 수입품 가격 같은 수출입 물가까지 모두 포함한 것으로, 우리 경제의 물가수준을 가장 포괄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다.
정상적 경제 상황이라면 이 지표는 플러스를 기록하는 것이 보통이다. 심각한 경기 침체를 겪지 않는 한 매년 물가가 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3분기에 이 지표는 전년 동기 대비 1.6% 하락했다. 외환 위기 때인 1999년 2분기(-2.7%) 이후 20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하락한 것이다.
GDP 물가는 비유하자면 '경제의 체온'이다. 최근 소비자물가지수가 마이너스 또는 0%대 초반에 머물고 있는데, 소비자물가뿐만 아니라 수출 물가 등까지 총체적으로 마이너스여서 우리 경제가 이마만 차가운 게 아니라 배도 차갑고 손발 전부 싸늘하다는 의미다. 하락 폭뿐 아니라 추세도 비정상이다. GDP 물가가 마이너스를 기록하기 시작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작년 4분기부터 4분기 연속 마이너스다. 이런 적은 관련 통계가 만들어진 1954년 이후 처음이다. 외환 위기 때인 1998~1999년에도 3분기 마이너스를 찍은 후 플러스로 회복됐었다. 외환 위기급 충격이 없는데도 우리 경제에 왜 이런 기현상이 벌어지는 걸까.
◇'GDP 물가' 4분기 연속 마이너스… 이런 적 처음
/그래픽=양인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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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대 리스크는 디플레"
우려스러운 건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기업 채산성이 악화돼 고용이나 민간 소비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똑같은 양을 팔아도 가격이 떨어져 기업이 손에 쥐는 돈은 줄어들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경제성장률과 GDP 디플레이터는 2018년을 기점으로 동반 하락 추세로 전환해 최근 들어 내림세가 가팔라지고 있다. 이미 저성장·저물가 국면에 진입했으며, 이대로 가다간 디플레이션이 올 수도 있다고 우려하는 이유다. 홍성일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정책팀장은 "소비자물가 하락, GDP 디플레이터 연속 감소, 잠재성장률을 밑도는 성장률 등 여러 지표로 볼 때 저성장·저물가 양상이 깊어지고 있다"면서 "선제적으로 종합 경기 진작책을 펴야 한다"고 말했다.
국제 신용평가사 S&P(스탠더드앤드푸어스)도 "한국 경제의 핵심 리스크는 디플레이션"이라고 꼽았다. 숀 로치 S&P 아태 지역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3일 서울 여의도에서 간담회를 열고 한국 경제성장률을 올해 1.9%, 내년 2.1%로 전망하면서 "한국은 올해 경기가 바닥을 치고 내년에 반등할 것으로 보이지만, 성장세는 급격하지 않고 점진적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 경제의 국내 핵심 리스크는 디플레이션으로, 디플레가 임금까지 영향을 줘 가구 부채 상환 능력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다고도 봤다.
◇올해 2%대 성장률 달성 쉽지 않을 듯
1분기 -0.4%, 2분기 1.0% 성장률을 기록한 터라, 산술적으로 4분기 성장률이 3분기 대비 0.93%를 넘긴다면 올해 2.0% 사수도 가능하다. 그러나 과연 4분기에 이 정도 과속 성장을 해낼지는 미지수다. 노동과 자본 등 동원 가능한 생산요소를 최대한 활용해 달성할 수 있는 잠재성장률이 분기당 0.67% 수준인데, 이를 훌쩍 뛰어넘어야 하는 상황이다.
정부와 한은은 작년 4분기 정부 주도로 달성했던 깜짝 성장이 재현되길 기대하는 중이다. 지난해 4분기에는 민간의 성장 기여도가 마이너스였지만, 정부가 재정을 퍼부은 결과 정부 지출의 성장 기여도가 10년여 만에 최대치를 기록하며 성장률을 0.9%로 끌어올렸다.
☞GDP 디플레이터
일명 'GDP 물가'로, 소비자물가지수나 생산자물가지수뿐만 아니라 수출입물가지수, 임금 등 각종 가격지수가 반영된 종합 물가지수이다. 국민소득에 영향을 주는 모든 물가 요인을 포괄하며, 명목 GDP를 실질 GDP로 나누어 계산한다.
김은정 기자(ejki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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