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 원내대표를 비롯한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29일 오후 필리버스터를 신청한 뒤 국회 본회의장에서 의원총회를 열고 있다(왼쪽). 이날 오후 국회 본회의가 파행된 가운데 고 김태호 군의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며 도로교통법 개정안 통과를 호소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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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이 29일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카드를 전격적으로 꺼내들었고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본회의 불참을 선언하면서 20대 국회 막판 내년도 예산안과 민생법안 처리가 줄줄이 차질을 빚게 됐다. 여야 3당 원내대표는 국회 일정을 놓고 대화를 이어가겠다는 전략이지만 의견 차이가 워낙 크기 때문에 국회 정상화가 이뤄질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이날 한국당은 소속 의원 전원(108명)에게 1인당 4시간씩 시간을 할당해 다음달 10일 정기국회 폐회 때까지 의사 진행을 지연시키기로 했다.
이론적으로 한국당 소속 의원 108명이 법안 1건당 432시간을 진행할 수 있으며, 법안 200건에 대해 8만6400시간 무제한 토론이 가능하다. 정기국회 종료까지 11일(264시간)가량 남은 만큼 한국당이 필리버스터를 이어갈 경우 더 이상 안건을 처리하지 못한 채 막을 내리게 된다.
국회법상 필리버스터는 본회의 안건에 대해 국회 재적 의원 3분의 1 이상(99명) 서명으로 시작되는데 현재 국회 재적 의원은 295명으로 108명인 한국당 단독으로 필리버스터 개시가 가능하다.
한국당의 이날 결정은 황교안 대표가 단식을 끝내고 여당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법안 저지를 위해 새로운 대여 투쟁 방안을 모색한 끝에 나왔다. 청와대 앞에서 8일간 단식농성을 벌이다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된 황 대표는 이날 단식을 중단하고, 향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과 선거법 저지, 3대 친문 농단 진상 규명 총력 투쟁을 선언했다.
민주당은 이날 한국당의 전격적인 필리버스터 신청에 당황한 모습이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민생법안을 볼모로 20대 국회 전체를 식물국회로 만들었다"며 "30년간 정치를 했지만, 이런 꼴은 처음 본다. 더 이상 참지 않는다"고 밝혔다. 일단 민주당은 본회의 개의 권한을 가진 문희상 국회의장에게 본회의를 열지 않도록 요청했다. 조정식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다음달 2일 본회의를 열어 내년도 예산안과 패스트트랙 법안을 상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한국당이 필리버스터에 나서면서 유치원 3법, 데이터 3법 등 본회의에 상정되는 모든 안건 처리가 무산됐다. 한국당의 필리버스터 결정을 놓고 '패스트트랙 법안 저지를 위해 민생법안을 볼모로 잡았다'는 비판이 제기될 전망이다. 정기국회 일정이 사실상 마비될 경우 다음달 2일이 법정 처리 시한인 내년도 예산안은 물론 패스트트랙에 오른 선거법 개정안, 공수처 설치 법안, 검경수사권 조정 법안 등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여당과 일부 야당의 끊임없는 이합집산과 밀실 거래를 보면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대한민국을 망치는 포퓰리즘 세력의 야합선거제"라며 "이제 한국당은 평화롭고 합법적인 저항의 대장정을 시작한다"고 말했다.
나 원내대표는 이어 "이 저항의 대장정을 막을 수 있는 것은 바로 불법 패스트트랙의 완전한 철회 선언과 '친문게이트' 국정조사 수용"이라고 압박했다. 한국당은 이날 밤 긴급 의원총회를 마친 뒤 "(민식이법 등) 민생법안에 대해선 필리버스터를 철회해 우선 처리하겠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이희수 기자 / 이석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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