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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4 (월)

'조국 사태' 100일만에 대입 공정성 방안 내놓은 정부…학부모·학생들 "글쎄요" [김현주의 일상 톡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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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수능·학종 개편 토대로 한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 발표 / 정시확대 대상으로 지목된 곳 서울 소재 16개 대학에 불과하지만 파급력 상당해 다른 대학으로까지 확산할 듯 / 정부 재정에 기대는 대학 많다는 점 감안…당국의 이번 조치 수용하지 않을 수 없는 대학들…다른 대학들도 눈치 보며 정시 확대 검토할 수 밖에 / 정시 확대, 문제 풀이 위주의 수업 부활할 가능성…공교육 정상화 해칠 우려 / 학종 공정성 강화 방안, 학부모·학생 크게 체감하지 못하는 모습 / 공교육 파행, 사교육 조장…입시 위주 교육 부작용 재연 가능성 높아 / "정부 장기적 관점에서 고등 교육 정상화 위한 실질적인 대책 수립해야"

정부가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위주의 정시확대와 학생부종합전형(학종) 개편을 토대로 한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물론 이번에 정시확대 대상으로 지목된 대학은 서울 소재 16개 대학이지만, 그 파급력은 다른 대학으로까지 확산할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가 정시확대를 '고교교육 기여대학 지원사업'과 연계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이는 대학에 대한 재정 지원을 무기로 정시확대를 사실상 강제하겠다는 취지다. 명목상 이 지원사업은 입학전형을 단순화하고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인 대학에 재정지원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시확대 대상으로 지목된 대학은 2023학년도까지 정시 비중을 40%까지 달성한다는 계획서를 교육부에 제출해야 이 사업에 참여할 수 있다. 정부의 재정 지원에 목을 매는 대학으로서는 이 '강제 조치'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대상으로 지목되지 않은 대학 역시 눈치 보기로 정시확대를 고민할 수밖에 없게 됐다. 정시확대가 이처럼 확산하면 학교 현장에서 문제 풀이 위주의 수업이 부활하면서 공교육 정상화를 해칠 것이라는 교육계의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학종 공정성 강화를 위한 방안 역시 학부모와 학생들의 피부에 와닿지 않는 모양이다. 학교생활기록부 비(非)교과 영역과 자기소개서의 대입 반영을 점진적으로 감축해 2024학년도에는 전면 폐지하겠다는 게 이 방안의 핵심이다.

학종을 못 믿는 근본적인 이유가 교사마다 학생부 기록의 작성 수준이 다르기 때문인데 이에 대한 실효성 있는 대책이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교육당국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딸의 대입 의혹이 불거진 지 100일 만에 공정성 강화 방안을 내놨다. 그러나 국민 다수가 공감하기에는 미흡해 보인다는 지적이다.

정시확대의 가장 큰 역기능은 공교육 파행과 사교육 조장 등 입시 위주 교육의 부작용이 재연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정시확대는 교실 붕괴를 예상케 하는 반교육적인 공교육 포기 선언"이라는 교육계 일각의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학종 개편 역시 '조국 사태' 여론 무마용이란 호된 질책까지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교육당국이 이런 지적과 비판을 귀담아 정시확대가 공교육 정상화의 근간을 해치는 일이 없도록 이를 마냥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며 이제부터는 장기적 측면에서 고교 교육 정상화를 위한 실질적인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말한다.

세계일보

정부가 전날(28일) 2023학년도 대학입시부터 정시모집을 40% 이상 늘리고, 학생부종합전형(학종) 비교과 영역을 대폭 축소하는 골자의 '대입 공정성 강화 방안'을 발표한 가운데 벌써부터 교육현장에서는 기존 교육정책과 충돌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수시모집이 도입된 2002학년도만 해도 비중은 28.8% 수준이었으나 지금까지 줄곧 확대됐다. 2007학년도부터 수시 51.5%로 정시 비율(48.5%)을 앞질러 올해 진행 중인 2020학년도 77.3%까지 늘어났다.

하지만 2021학년도 대입에선 22.7%로 최저점을 찍은 정시는 2023학년도부터 서울 16개 대학에 한해 40% 이상으로 두 배 가까이 확대될 전망이다. 정시가 40% 이상을 차지했던 2010학년도 이전으로 돌아가는 셈이다.

대학입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서울 주요대학의 대입 지형이 바뀌면서 그동안 학생 맞춤형 교육을 지향하며 확산돼왔던 기존 교육정책 방향과 충돌이 불가피해졌다.

◆서울 주요대학 대입 지형 달라져…'학생 맞춤형 교육' 정책과 충돌 우려

자유학기제와 혁신학교, 현재 연구·선도학교가 운영되고 있는 고교학점제는 모두 같은 맥락이다. 학생 스스로 꿈과 진로를 탐색하고, 학생의 개성을 존중하는 교육이다.

한 예로 중학교 1~2개 학기동안 중간·기말고사를 치르지 않고 창의·진로활동을 하는 자유학기제는 2016년부터 전면도입됐다. 지식·경쟁 중심 수업 대신 학생 참여형 수업을 실시해 학생의 소질과 적성을 키울 수 있는 다양한 체험활동 중심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제도로, 당시 중학교에 입학한 학생들은 현 고1이다.

혁신학교도 마찬가지다. 기존 공교육과정 대신 창의적이고 자기주도적인 학습능력을 기르는 맞춤형 교육을 실시하는 학교 형태로, 진보교육감이 선출된 지역에서는 확산 추세를 보여왔다.

세계일보

결국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 "성적과 경쟁보다는 꿈과 협력이 중요하다"는 교육제도를 경험한 학생들에게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국가주도 시험에서 고득점해야만 대학에 간다"는 메시지를 던진 셈이다.

대학입시가 교육과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한국 사회 특성상 앞으로도 자주 대입제도가 흔들릴 경우 고교학점제 역시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문제풀이식 교육으로 퇴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가주도 시험에서 고득점해야만 '명문 대학' 간다?"

이번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를 위한 정부 방안에 대해 중위권 학생들도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정량적인 점수가 낮아도 정성평가를 통해 서울 소재 주요대학에 입학했던 학생들의 진학 통로가 좁아졌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점수 위주 문답풀이 교육이 더 강화되는 현상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문제는 학종과 논술 축소로 대입제도가 학생부교과전형과 수능위주전형 중심으로 재편될 경우 중위권 학생들이 서울 소재 대형대학에 진학할 통로가 축소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학생부교과전형은 고교 내신성적으로 진학하는 전형인데, 학생과 학부모들의 선호도가 높은 서울 주요대학에 진학하려면 보통 1.0등급 후반대에서 2.0등급 초반대의 점수가 필요하다.

교육업계 한 관계자는 "고등학교 1학년 1학기부터 3학년 1학기까지 전 과목에서 평균 2.0의 내신성적을 받은 학생은 10%밖에 안 된다"며 "학교에서 10등 이내에는 들어야 하는 성적"이라고 설명했다.

세계일보

수능위주전형도 고득점이 가능한 일부 학생들에게 혜택이 돌아갈 공산이 크다.

이른바 'SKY'로 불리는 서울대학교, 고려대학교, 연세대학교를 포함해 서울 일부 대학에 진학하려면 보통 수능에서 국어·수학·탐구 300점 만점 기준 280점대 후반 점수가 필요하다.

종로학원하늘교육이 가채점결과를 토대로 분석한 올해 대학 예상 합격선을 보면 서울대 의예과에 진학하기 위해 294점이 요구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1과목 당 평균 98점을 확보해야 하는 셈이다.

여기에 내신이 다소 부족하더라도 작문능력으로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던 논술전형 축소가 예고돼있 다. 내신과 수능 모두 정량적 점수여서 여기서 토대될 경우 대학진학이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학생들도 학교와 학원 등에서 정량적 점수 확보를 위한 문제풀이 수업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중위권 학생들 서울 소재 대학 입학 통로 좁아질 수 밖에 없어

대학입시에서 수능 위주 정시 비율을 40% 이상으로 늘리도록 하면서 전형 비율을 두고 대학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물론 학생 선발은 대학 자율 사항이기 때문에 정부의 '정시 40% 이상 확대' 등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아도 된다. 16개 대학이 손잡고 반발할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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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학들이 재정난을 겪고 있는 만큼 국고사업인 고교교육기여대학사업 참여자격과 연계한다면 대학들이 정부 정책을 따를 수 밖에 없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교육부는 당장 2022학년도부터 30% 이상인 35%, 2024학년도부터 40% 이상을 정시로 선발하라는 단계별 확대방안을 검토 중이다.

올해 559억원이었던 고교교육기여대학사업을 통해 각 대학은 10억원 내외의 지원을 받아 입학사정관 인건비 등에 사용하고 있다. 교육부는 사업 예산을 대폭 증액하고, 평가지표나 예산 활용 항목 등을 전면 재설계할 방침이다.

문제는 정시 확대가 단순히 전형비율을 늘리고 줄이는 사안이 아니라는 점이다. 특히 교육부가 이날 발표한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방안에는 학종을 사실상 무력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학종에서 주로 평가했던 학생부 비교과영역, 즉 자율·동아리·봉사·진로활동 기재를 2024년부터 대폭 축소 반영한다는 것이다.

학종 취지가 학생이 학교생활을 하면서 참여해온 다양한 활동을 살펴보기 위한 전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교과 외 사항을 전부 반영하지 않게 되면 사실상 내신성적 위주의 학생부교과전형과 차이가 대부분 사라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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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는 학생부에서 '교과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 기재를 단계적으로 필수화하고, 기재 표준안을 만들어 2020년부터 보급하겠다고 밝혔지만 대학은 학생선발을 위한 변별력이 떨어진다고 보고 있다.

고른기회전형 등 사회적 배려 대상자 선발을 10% 이상 의무화하는 내용도 대학에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현재 정원내·정원외로 나눠 선발하는 고른기회전형의 경우 자격요건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경쟁률이 높지 않고 미달되는 사례가 나오더라도 정시모집으로 이월하지 못하면 미충원 사태까지 불거질 수 있다.

◆사실상 학종 무력화? 학생부 비교과영역 기재 2024년부터 대폭 축소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서울 주요 16개 대학교 적정 정시 비율에 대해 "40% 정도 선이면 학생부종합전형과 정시를 적정 비율로 맞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 부총리는 이날 국회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16개 대학의 정시 비율을 최대 몇 퍼센트까지 허용할 것이냐'는 자유한국당 곽상도 의원의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앞서 유 부총리는 이날 오전 2023학년도까지 16개 대학의 수능 위주 정시 전형 비율을 40% 이상으로 올리는 내용을 골자로 한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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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부총리는 '정시 비율이 40% 이상인만큼 60%까지 가도 무방하다는 것이냐'는 추가 질의에는 "그렇지는 않다. 대학 자율 권한이기에 협의가 필요하지만, 정시와 수시의 비율을 적절히 맞춰야 한다"고 답변했다.

그는 정시 비율의 확대와 함께 자립형사립고(자사고) 등의 일반고 전환으로 혼란이 예상된다는 지적에는 "외고·자사고·국제고는 2025년부터 일반고로 전환한다"며 "제도개선이 동시에 시행되기 때문에 잘 관리해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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