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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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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아베는 출구를 원할 것, 문 대통령이 결국 설득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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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단독 인터뷰

김현철 서울대 일본연구소장(전 청와대 경제보좌관), 韓·日 경제전쟁의 본질을 논하다

■ 日 기업 국내 자산 강제 매각은 파국 초래… 갈등 해소 후 보상 생각해야

■ 아베의 수출 규제는 동아시아 3국 분업구조 해체하는 전략적 패착

■ 우경화 현상 속 아베 독주하는 일본, 정경분립 원칙마저 훼손해

■ 한국, 소재·부품·장비 기술 자립과 동남아·인도 시장 개척으로 맞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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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철 서울대 일본연구소장은 일본과의 화해 노력과 별개로 소재·부품 기술 자립, 신남방정책,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병행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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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오로지 학자면 자유롭게 인터뷰할 수 있지만, 현재는 그렇지 못합니다.”

세상에 원인 없는 결과 없다. 혈(穴)을 정확히 짚어야 제대로 된 처방이 나오는 법이다. 한·일 갈등이 비등했던 8월 초, 세상은 김현철(57) 서울대 일본연구소장의 말을 듣고 싶어 했다. 그럴수록 그는 침잠했다. 만남을 청한 기자에게 보낸 그의 휴대폰 문자 메시지에는 짧지만 솔직한 심정이 담겨 있었다.

그의 목소리를 곧 문재인 정부의 것으로 해석하려는 세간의 시선에 그는 무거움을 느끼고 있었다. 정권 출범 직후인 2017년 6월부터 2019년 1월까지 김 소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경제보좌관 신분이었다. 또 정부가 공들이는 신(新)남방정책특별위원회 위원장도 겸임했었다.

김 소장은 서울대 경영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뒤 장학생으로 일본에 건너갔다. 게이오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나고야 상과대학과 미국 하버드 비즈니스스쿨 연구원을 거쳐 일본 쓰쿠바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이 기간 일본경제산업성 프랜차이즈 연구위원, 신일본제철·JR·닛산자동차·후지제록스·캐논·아사히맥주·이세탄·도쿄 디즈니랜드 등 일본 기업들의 자문 및 교육을 담당했다. 귀국 후에는 삼성전자·현대자동차·SK텔레콤·제일모직 등의 자문을 맡았다. 현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런 권위와 별개로 김 소장을 찾는 수요가 높은 근원적 이유는 ‘전략’에 방점 찍힌 그의 콘텐트 덕분이다. 그의 책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는 일본의 저성장 시대를 반면교사로 삼아 우리 경제가 나아갈 길을 제시했다.

이번에 그가 인터뷰를 수락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보였다. 하나는 한·일 관계가 변곡점에 들어선 시점에 ‘일본의 본질’을 알릴 필요가 있다는 현실 인식이었다. 또 하나는 그가 몸담은 일본연구소의 본분에 충실하기 위함이었다. 김 소장은 “세상이 다 변해도 일본을 연구하는 조직이 필요하다. 일본의 본질을 잡아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11월 5일 서울대 국제대학원 연구실에서 진행됐다. 그는 “경제 문제만 이야기하겠다”는 단서를 걸고 응했다. 그러나 한·일 경제 충돌은 역사, 안보 이슈와 구조적으로 얽혀 있음을 김 소장이 모를 리 없었다. 실제 한국과 일본에 관한 총체적 인터뷰로 흘러갔다.



“메이지 시대의 프레임에서 유래된 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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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한 정서를 여과 없이 표출하고 있는 일본 극우세력의 집회. ‘한국은 적이니까 죽이자’는 문구를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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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돌파할 것인가'를 보면, 한·중·일 분업구조가 등장한다. 작동원리를 어떻게 이해하면 될까?

“일본은 소재·부품을 한국에 수출한다. 한국은 이것을 가공해 중국에 수출한다. 중국은 중국에 특화된 것을 일본에 수출한다. 황금의 트라이앵글이 성립되면서 아시아의 세기가 열렸다. 그런데 아베 일본 총리가 (수출 규제로) 한국에 칼을 대면서 이 구조를 흔든 것이다.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해 일본이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베는 (분업구조의 틀을 흔드는) 전략적 실수를 했다.”

전략이 아니라 정치적 판단으로 수출 규제가 작동됐다고 봐도 되겠나?

“그렇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정경분립의 원칙이 굳건한 나라였다. 한·일 관계가 매우 나빴을 때에도 경제는 좋았다. 그런데 역사와 외교 갈등 문제에 아베는 경제 문제를 들고 온 것이다. 일본의 정경분립 원칙을 훼손한 것은 아베의 또 하나의 실수다.”

10월 22일 발간된 [뉴스위크일본판]은 한·일 갈등이 글로벌 경제에도 악재라고 지적했다.

“2008년 세계경제위기는 미국과 유럽이 흔들리는 과정에서 온 것이다. 중국이 내수부양 정책을 취하고 세계 경제를 뒷받침하면서 그나마 위기가 해소됐다. 이런 경제 구조(미국·EU·중국이라는 3개 축으로 움직이는)의 관점에서 봐야 하는 시대다. 그러나 일본이 아시아에 속해 있고, 아시아가 굉장히 중요한 축이라는 현실을 아베는 거부하고 있다.”

아베의 세계관은 왜 그렇게 인식됐을까?

“아베의 ‘복고적 민족주의’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다. 아베의 머릿속에는 메이지 유신 당시를 일본의 가장 화려한 시대라고 생각하고, 그때로 돌아가고자 하는 선망이 있다. 메이지 유신의 핵심이 ‘탈아입구’다. 아시아를 벗어나 서구 속으로 들어간다는 뜻이다. 아시아의 일원임에도 서구에 속한다고 생각하니 미·일 동맹을 중시하고, 중국과 대립각을 세운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일어남에도 견제하는 전략을 취한다.”

그런 맥락이라면 한국과 중국의 국력이 올라가는 상황을 아베는 견디기 어렵겠다.

“아베가 복고적 민족주의를 추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일본 국민 일부의 우경화와 혐한론이다. 우리는 일본을 싫어할 때 ‘반일(反日)’이라고 하지 ‘혐일(嫌日)’이라고 안 한다. 그런데 일본 우경화 세력 일부는 ‘반한(反韓)’이 아닌 ‘혐한(嫌韓)’이라는 용어를 쓴다. ‘식민지 조선은 약속과 법을 안 지킨다’는 당시의 프레임이 2019년 이 시기에 부활한 것이다.”

한·일 경제 갈등이 서로에게 손해가 될 텐데 일본은 왜 결행했을까?

“우리가 일본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일본 사람들은 굉장히 치밀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성장기에는 치밀함이 나왔지만, ‘잃어버린 일본의 30년’을 설명할 때, 핵심 단어가 ‘전략 없음’으로 표현됐다. 기업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일본 정부 조직이 대부분 전략이 없다.”



“日, 삼성전자의 buying-power 경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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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질지언정 구부리지 않겠다’가 일본을 향한 한국민의 정서다. 서울 재래시장도 일본 제품 불매운동에 동참했다.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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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전략 부재를 구체적으로 지적한다면?

“일본은 수출 규제를 준비하면서 4가지 원칙을 말했다. 첫째, 국제규범을 어겨선 안 된다. 둘째, 일본에 피해가 있어선 안 된다. 셋째, (규제의) 핀포인트를 한국에 둬야 한다. 넷째, 민간인에게는 영향을 주지 말아야 한다. 이 원칙들을 고려해서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부품 공급을 제한하는 조처를 한 것이다. 그러나 4가지 모두 들여다보면 엉성한 것이다. 첫째, 이미 WTO(세계무역기구)에 제소를 당하지 않았나.”

둘째와 셋째 원칙도 비현실적으로 들린다.

“한국 기업만 피해를 주고, 일본 기업 피해는 없도록 하겠다? 불가능한 일이다. 한국 산업의 핵심인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에 타격을 주면 한국이 금방 굴복할 것이라고 생각했겠지만, 기업의 핵심인 ‘바잉 파워(buying-power, 구매력)’를 생각하면 우스꽝스러운 발상이다.”

구매자인 한국 기업이 생산자인 일본 기업보다 우위에 있다는 뜻인가?

“삼성전자와 일본의 불화수소 공급 업체의 바잉 파워를 따져보자. 일본의 경제산업성은 일본 기업이 독점적으로 공급하기 때문에 ‘갑’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기업 간 관계에서 삼성전자가 ‘갑’이다. 단순히 한·일 기업 간 파워뿐만 아니라 국제기업 간 밸류 체인의 네트워크 파워를 더 봤어야 했다. 삼성전자가 불화수소 공급을 못 받으면 미국 휴렛팩커드, 구글, 중국의 화웨이, 일본의 소니까지 난리가 나는 것이다. 일본의 수출규제가 떴을 때 미국반도체협회가 즉각적으로 반응했고, 경제산업성은 해명 자료를 내야 했다.”

일본의 넷째 원칙도 현실에서 달리 나타났다.

“민간에 피해가 없게 하라? 한·일 관계의 ABCD 중 A도 모르는 것이다. 일본이 이런 조치를 취하면 한국은 움츠러드는 것이 아니라 민간, 즉 국민이 반응한다. 일본에 피해를 보면 우리 국민은 절대 가만있지 않는다.”

한국에서 여행을 가지 않으면서 일본 소도시들의 타격이 크다고 한다.

“아베와 아소 등 자민당 주류파는 도심에 정치적 기반을 두고 있다. 전통적으로 한·일 우호를 중시했던 현재의 자민당 비주류들은 지역 기반이 농촌이나 소도시에 있다. 주류 입장에서는 ‘도쿄나 오사카에 한국 국민이 안 와도 문제없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비주류 입장에서는 아베에게 ‘빨리 한국과 화해하라’고 주장하는 구조가 되고 있다. 일본이 칼을 뽑아놓고 쓰지 못하는 구조로 가고 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한국 정부는 소재·부품 기술 개발을 들고 나왔다. 단기간에 가능할까?

“한·일 간 산업 경쟁의 역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우리가 경제 개발을 하면서 철저하게 일본을 벤치마킹했다. 그렇게 추격했고, 역전하기 시작했다. 이제 한국 기업은 일본 기업을 따라 하는 전략에서 벗어나기 위한 전략을 취하기 시작했다.”

어떤 전략인가?

“밸류 체인 사업은 소재·부품·장비와 같은 ‘업 스트림’이 있다. 그다음에 조립·가공하는 ‘미들 스트림’이 있다. 그리고 마케팅·브랜드와 같은 ‘다운 스트림’이 있다. 일본의 전략은 수직계열화였다. 너트부터 최종 조립까지 일본 기업 안에서 다 하는 방식이었다. 반면 한국 기업은 축적의 시간이 짧다 보니, 글로벌 1등 소싱 전략을 취했다. 전 세계의 1등 부품을 다 끌어모으는 전략이다. 예를 들어 자동차의 경우, 일본은 3만 개의 부품을 전부 수직계열화했다. 한국의 현대자동차는 그럴 필요도, 능력도 없었다. A 부품은 델파이에서, B 부품은 보쉬에서 이런 식으로 최고 좋은 것으로 조립하니 일본보다 더 좋은 품질로 만들 수 있었다. 글로벌 소싱을 하니 단가를 더 낮출 수 있는 규모의 경제가 됐다. 싸고 좋은 한국 제품에 일본은 점점 밀리게 된 것이다.”

언제부터 한·일 역전이 시작됐을까?

“1990년대, 일본이 ‘잃어버린 10년’으로 들어가게 된 시기부터다. 한국이 어느 정도 축적을 하면서 국제화 능력을 갖추기 시작한 시점과 겹친다. 한국은 미들 스트림을 잡으면서, 다운 스트림에서도 특화했다. 한국 기업이 잘하는 브랜드·마케팅·디자인 전략이 그것이다.”



“한국,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 의리 지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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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안+3 정상회의가 열린 태국 방콕에서 문재인 대통령(오른쪽)과 아베 총리가 11분간 예정에 없던 환담을 가졌다. 문 대통령의 제안이었다. / 사진: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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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갈등이 아니었더라도 우리의 다음 수순은 예정된 것일 수 있겠다.

“이제 남겨진 부분이 업 스트림이다. 한국이 미들 스트림과 다운 스트림을 특화하니까 일본은 업 스트림에서 치고 나간 것이다. 소재·부품·장비 분야에서 일본은 ‘Only One’ 전략을 택했다. 이 분야에서 세계 1등을 육성하는 전략이다.”

나름 일본도 현명했던 것 아닌가?

“일본도, 한국도 현명했다. 이 구조 속에서 한·중·일 황금의 트라이앵글이 구축됐다. 우리는 20년 이상 ‘업 스트림은 (일본에) 안 되니까 글로벌 소싱만 하자’ 이런 구조가 돼 있었다. 그 덕택에 일본은 ‘잃어버린 시간’ 동안 전략적으로 실패했음에도 동북아 협업 틀 속에서 경제가 지탱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베가 칼을 댄 것이다. 그동안 일본에 의존했던 업 스트림을 우리가 안 하면 안 되는 상황이 온 것이다.”

문제는 시간이다.

“단시간에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해야 되는 것이다. 또 하나 생각할 점은 한국의 성공 스토리를 중국도, 인도네시아도, 베트남도 안다는 사실이다. 조립부터 따라올 것이다. 다운 스트림의 브랜드·디자인도 따라 하기 쉽기 때문에 중국이 곧 따라올 것이다. 그럼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무엇인가? 언젠가는 해야 할 숙제를 아베가 당겨준 것이다.”

소재 국산화가 되기 전에 우리 기업들이 타격을 받을 수도 있다.

“수급은 괜찮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한국 기업이 일본 기업의 신뢰를 얻었던 시기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 글로벌 밸류 체인이 일시적으로 붕괴했다. 이때 한국 기업은 일본의 공급이 중단됐음에도 소싱을 옮기지 않았다. 끝까지 일본 기업들의 부활을 돕고 신뢰를 획득한 역사가 있다. 아베가 ‘한국에 공급하지 말라’고 지시한다고 하더라도 쉽게 한국과의 거래를 끊어 버리는 우를 일본 기업들이 범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보다 상황이 더 악화할 수도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불확실성이다. 혹시라도 한국 대법원 판결이 실행돼서 ‘현금화(일본 기업의 한국 내 자산 매각)’해버린다고 결정될 경우, 아베는 2차 보복을 가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일본 기업들도 따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기업들은 불확실성을 가장 두려워한다.

“불확실성에 대비하려면 비용(cost)이 들어간다. 일본 기업들과 협의를 하면서 우회 수입 루트가 없는지, 재고 물량을 확보해서 또 다른 변수가 생겼을 때를 대비하는, 이런 것들에는 비용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플러스적인 측면도 있다. 매뉴얼에 의존하는 일본 기업과 달리 한국은 신바람의 기업 문화다. 한국 기업이 일본을 따라잡거나, 세계적 경쟁력을 가졌을 때가 바로 위기에 직면했을 때였다. 현재 많은 한국 기업들이 비상경영 체제로 전환하고 있다. 조직문화를 일치단결시키는 응축적인 힘이 있다. 밸류 체인상 업 스트림을 발전시키는 것이 산업 혁신의 문제라면, 비상경영은 지금까지 느슨하고 방만했던 부분을 확 쪼이면서 새로운 기회를 찾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신남방정책은 수출 포트폴리오 다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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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철 서울대 일본연구소장은 한국이 일본기업의 국내 자산 매각 실행으로 일본과 전면전을 펼치는 상황을 경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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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의 동남아, 인도 지역 방문횟수에서 짐작되듯 신남방정책은 우리 경제의 중국과 일본 의존도를 분산시키는 의도로 비친다.

“아세안과의 교역이 곧 한·중 교역만큼 늘어날 것이다. 만약 사드 보복을 당했을 당시, 아세안과의 교역이 중국만 했으면 그 피해가 이만큼 컸을까? 경제적으로 보면 중국 시장은 어떻게든 사수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중국만 한 시장이 하나 이상 더 있다면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국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시장이 현재로서는 인도와 아세안이다. 현재 아세안의 건설 수주액이 중동의 그것보다 높다. 우리 금융기관의 거의 80%가 신남방으로 가고 있다.”

중국의 사례처럼 노동시장을 넘어 소비시장이 열릴 수도 있겠다.

“우리 기업들이 처음에는 싼 임금을 보고 제조업 공장을 중국에 열었다. 경제가 성장하니 임금이 올라가니까 아세안으로 이동했다. 나중에는 아프리카로 가게 될 것이다. 마지막 블루오션은 북한이다. (향후 부를 축적할수록) 중국처럼 아세안에서도 소비시장이 커질 것이다.”

아세안과 달리, 북한은 체제 리스크가 존재한다.

“1~2년 이내에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됐다. 여유를 가지고 하나하나 토대를 쌓아 올려 흔들리지 않는 평화 체제로 나아갈 기반을 닦아야 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북한이 최고의 생산기지인 것은 사실이다. 거리에 따른 물류비용만 봐도 그렇다. 다만 급하면 안 된다. 북한은 넥스트의 넥스트다.”

한·일 갈등 국면에서 문 대통령은 평화경제 해법을 제시했다. 일본과의 경제 전쟁은 당장 닥친 현안인데, 평화경제는 먼 미래에나 될 법한 얘기 아닌가. 그 시간적 갭을 국민이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일본과의 경제 문제에 국한해 말하자면) 한국이 과거의 한국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일본이 찌르면 금세 꼬꾸라지는 나라라고 생각한다면, 천만의 말씀이다. 일본이 우리를 식민지 시절의 복고적 시각으로 이해한다면, 엄청난 오산이다. 일본 부품업체가 공급 안 한다고 삼성전자가 무너진다? 잘못된 생각이다.”

이를 계기로 한·일 관계의 위상을 재정립할 시점이라는 뜻인가?

“한국 경제는 항공모함급이 됐다. 그 의미는 태풍에도 흔들리지 않지만, 방향 전환을 서서히 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게 됐다는 것이다. 예전처럼 순발력 있게 움직일 수 있는 국가가 아니다. 선장이 방향을 틀자고 명령하면, 관료와 기업, 민간이 움직이더라도 시간이 걸린다. 성과가 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구조를 이해하지 않으면, 한국이 가고 있는 흐름이나 방향을 잘못 이해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아베의 자민당이 지난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했다. 일본 국민 여론도 한국에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이 스탠스를 바꿀까?

“일본이라는 국가의 전체적인 시스템을 제대로 봐야 한·일간 문제들에 대응할 수 있다. 현재 일본 사회는 아베 독주체제로 돼 있다. 자민당 주류와 비주류가 바뀌면서 아베가 공천권까지 장악한 상황이 됐다. 자민당 내에서 이견이 나오기 힘들게 됐다. 일본은 관료가 의원들을 움직일 수 있는 관료 우위 국가였다. 아베가 들어온 뒤 총리관저가 인사권까지 행사해서 관료들이 목소리를 못 내는 상황이다. 경제산업성에서 (한국을 향해) ‘전략 없는 전략’을 냈을 때도 내부에서 이견이 있었지만 무시됐다. 아베가 눌러버렸다.”



“끝까지 가면 우리 상처가 더 크다”



일본 내 시민사회 분위는 어떤가?

“아베는 철저하게 (리버럴 성향의) [아사히신문] 패싱을 했다. 관저는 좋은 정보를 일부러 (우익 성향의) [산케이신문]으로 흘려서 특종을 할 수 있도록 도왔다. 언론이 관저에 어느 정도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구조 속에 놓인 것이다. 실제 세계 기자클럽 발표 자료를 보면 일본의 언론 자유도가 아베 집권 뒤 20계단 추락했다.”

경제가 어려워진 것도 우경화의 요인이 아닌가?

“일본이 고령화됐다. 경제가 어려워지니 우경화된 조직이 여론을 주도하고 있다. 양심 있는 지식인들의 목소리를 자꾸 누르는 상황이다. 일반 국민 속에서도 혐한 감정이 퍼져 있다. 일본의 전통적 다양성과 자정 기능이 소멸하고 있는 우려스러운 형국이다. 그 정점에서 아베가 독주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구조라면 해결이 더 비관적이겠다.

“단기간에 해소하기 힘들 것이다. 역지사지로 아베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렇게 모든 것이 갖춰져 있는 데다 자신을 사무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칼을 빼든 것이다. 다시 거둬들이겠나? 아베의 역사관을 볼 때, 쉽게 상황이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럼 어디를 뚫어야 할까?

“현재로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아베를 설득하고, 자민당 내에서도 잘못된 것을 짚어주는 (투 트랙) 방향으로 가야 한다. 물론 아베가 잘 안 움직이겠지만, 그래도 해야 한다. 한·일 관계는 아시아 번영의 핵심이다. 앞으로도 잘 작동해야 한국도, 일본도, 중국도, 세계도 번영할 수 있다.”

우리도 일본을 화이트 리스트(수출 우대국가)에서 배제했다. 또 지소미아(GSOMIA,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를 예고했다. 결과적으로 우리도 경제 문제를 안보 문제로 대응한 것 아닌가?

“아베가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해서 규제를 거둬들일까? 명분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일본의) 보복이 실질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지금 이 상태다. 또 하나는 강제노동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역사 문제, 한·일의 근본 문제다. 경제 문제와 교환을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역사 문제는 우리의 정당성, 자존심, 국가의 품격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쉽게 해결이 안 되는 부분이다. 이를 해결하려고 경제 보복을 가져온 아베는 전략적 실수를 범한 것이다. 아베가 이를 거둬들이기 위한 명분 중 하나가 지소미아다. 지소미아 연장(한국)과 경제 제재 철회(일본)로 딜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아베에게 ‘출구’만 제대로 제공한다면, 이 문제는 조용하게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쓰비시중공업 등 일본 기업의 한국 내 자산 강제매각이 만약 실행된다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게 된다. 일본이 가만있지 않을 터다.

“일본과 한국이 직접 칼싸움을 한다면, 물론 둘 다 손해겠지만, 상처는 우리가 더 클 것이다. 일본은 아직도 경제 대국이다. 이 구조는 엄연한 현실이다. 그래서 문 대통령도 8·15 경축사에서 일본과의 협상을 얘기한 것이다. 태국 방콕(11월 4일, 아세안+3 정상회의)에서 아베의 손을 끌고 (11분간) 만난 이유도 이 구조 속에 있는 것이다.”



“일본의 한국 금융 공격은 있을 수 없는 일”



일본을 향한 한국 내 여론도 풀리지 않고 있다.

“일본에게 사죄를 받고, 위자료를 받는 것도 중요하다. 피해자분들 처지에서는 일생의 한(恨)을 푸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현금화(일본 기업의 한국 내 자산 매각)’를 하는 순간, 일본의 보복 가능성이 커진다. 보복이 있으면 우리 경제에 타격이 가는 것은 사실이다. 현금화 조치는 유예해줘야 한·일 관계가 그나마 해결될 것이다. 해결되고 나면, 보상은 (어떤 식으로든) 반드시 이뤄진다고 본다.”

시중에서 나돌았던 일본의 금융보복 루머는 실현 가능성이 있는 말인가?

“우리나라 경제가 작았을 때의 시각으로 말하는 것이다. IMF 때 일본이 자금을 빼가서 우리가 경제 위기를 맞지 않았나. 지금 한국은 경제 강국이 됐는데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번 달 외환보유고가 최고 수준이다. (만에 하나 일본의 금융 공격으로) 우리나라에 경제 위기가 오면 세계 경제에 영향이 없을까. (세계가 방관하지 않을 것이기에 일본이 이런 시나리오를 실행할 수 없다는 뜻으로 들렸다.)”

현대중공업이 최근 대우조선을 합병하려고 하는데 글로벌 승인 과정에서 일본이 훼방을 놓을 수도 있다는 예상이 나돈다.

“한국 기업 간 합병이 왜 해외 승인을 얻어야 하는가. 그만큼 세계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체급이 됐다는 의미다. 일본이 견제할 순 있겠지만, 한·일 조선업 관계도 굉장히 깊다. 일본이 조선업 패권을 한국에 넘겨줬지만, 한국은 여전히 핵심 부품을 일본에서 구입한다. 우리가 이를 조립해서 해외에 수출하는 국제적 분업구조가 있다. 오랫동안 기업 간 신뢰가 있기에 큰 문제는 없다고 생각한다. 아베가 경제에 또 관여하고자 하는 돌발변수만 없다면 잘 해결될 것이라고 본다.”

일본은 우리보다 먼저 저성장을 경험했다. 우리가 일본을 답습하지 않을 수 있을까?

“말하려면 끝이 없다. 하나만 얘기하면 ‘부정적인 사고’다. 일본이 왜 R(리세션, 침체)의 공포에 빠졌는가?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순간, 잃어버린 것이다. 일본을 통해서 배울 점은 비관론에 빠지지 않는 것이다. 우리도 ‘디플레이션이 온다’고 말하는 순간, 진짜로 올 가능성이 높다.”

한·일 갈등은 결국 양국 정상이 풀지 않으면 안 되는가?

“과거에는 자민당 비주류가 있고, 연립 여당이 있고, 야당이 있고, 관료도 있고, 언론도 있고, 양심적인 지식 사회도 있었다. 그런 구조였다면 정상회담 안 해도 밑에서 풀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 일본은 아베 독주 시스템이다. 아베가 안 풀면 안 풀리는 것이다. 개인이 시스템이 돼버린 것이다. 결국 아베를 풀 수 있는 존재는 한국의 대통령이다. 문 대통령이 올바른 방법으로 풀려고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글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 사진 전민규 기자 jun.minkyu@joongang.co.kr / 녹취 정리 박호수 월간중앙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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