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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5 (화)

이슈 미술의 세계

김환기 '우주' 미술품 경매 최고가, 후원자 우정이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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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 홍콩 경매 132억원 낙찰

의사 김마태 박사 40여년간 소장

절친 겸 후원자…뉴욕 이주 돕기도

"김환기는 언제나 환영 받는 손님"

이데일리

23일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 앞서 전시 중인 김환기의 대표작 ‘우주’(Universe 5-IV-71 200)(사진=크리스티 코리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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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한국 추상화를 대표하는 김환기(1913~1974)의 작품 ‘우주’(Universe 5-IV-71 200)가 23일 홍콩컨벤션전시센터(HKCEC)에서 열린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낙찰가 131억 8750만원(8800만 홍콩 달러)을 기록하며 한국 미술품 경매 최고가 기록을 새로 썼다.

‘우주’는 김환기의 1971년 작품이다. 그의 작품들 중 유일한 두폭화로 254×254㎝ 크기에 폭 넓은 푸른 색조를 사용한 큰 그림이다. 작가의 기량이 절정에 이르렀던 말년의 정수를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번 작품이 경매에 나오기까지는 김환기의 오랜 후원자이자 절친이며 주치의이기도 했던 의사 김마태(91) 박사와의 인연이 계기가 됐다. 이번 경매를 앞두고 크리스티가 발간한 ‘우주’ 도록에는 작품을 40여년간 소장해온 김마태 박사가 김환기와 오랜 우정 이야기를 전하는 인터뷰를 담고 있다.

인터뷰에 따르면 김환기와 김마태 박사의 첫 만남은 한국전쟁 시기인 1950년대 부산 광복동의 한 커피집이었다. 당시 전쟁을 피해 내려온 많은 예술가들이 이곳에 모여들었는데 김마태 박사의 부인 전재금의 어머니 소설가 김말봉도 그 중 하나였다.

김마태 박사는 당시 약혼자였던 전재금과 함께 길에서 우연히 김환기와 만나 인연을 맺었다. 당시 김환기는 아시아 사상과 서양의 추상을 혼합한 작품을 발표하면서 한국 미술계에서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었다. 두 사람은 곧 절친이 됐다.

김마태 박사는 1953년 미국으로 떠났다. 김환기 역시 한국을 떠나 파리에서 3년간 머물렀다 1959년 서울로 귀국했다. 몸은 대륙을 넘어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돈독해진 두 사람의 우정은 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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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우주’가 걸려 있는 김마태 박사 집 거실에 앉아 있는 김환기 화백의 모습(사진=환기재단·환기미술관, 크리스티코리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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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가 미국으로 건너는 데에도 김마태 박사의 후원이 있었다. 인터뷰에 따르면 1963년 김환기가 서울에서 뉴욕으로 이주할 것으로 결심하고 그의 부인이 이듬해 합류할 때 김마태 박사가 항공권 비용을 도왔다.

이에 김환기는 감사의 표현으로 자신의 1959년작 ‘섬의 달밤’을 김마태 박사 부부에게 선물했다. 이후 이들 부부는 점점 더 자주 만났으며 김마태 박사는 개업과 함께 더 많은 김환기의 작품을 구매하며 콜렉션을 점차 키워갔다.

1971년은 김환기 화백에게 중요한 해였다. 걸작으로 평가받는 대형 작품 ‘우주’를 그릴 무렵이었다. ‘우주’는 뉴욕의 포인덱스터 갤러리에서 열린 김환기의 개인전에서 처음 전시됐다. 그때 김마태 박사와 그의 부인이 이 작품을 구매했고 현재까지 소장을 해왔다.

인터뷰에서 김마태 박사는 “김환기 화백은 언제나 환영 받는 손님이었다”며 “친화력 있는 웃음과 짓궂은 농담으로 인해 그는 중심 인물로 종종 주목을 받곤 했다”고 회상했다. 김마태 박사는 ‘우주’ 외에도 여러 작품을 구매했는데 이중 ‘산월’ ‘아침 별’ ‘20-V-69 94’는 환기미술관에 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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