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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8 (금)

대법, ‘방통위 심의 잣대’ 첫 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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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가 만든 이승만·박정희 다큐 ‘백년전쟁’ 방송 제재는 부당”

전원합의체 “매체별 고려해 심의 기준 완화 필요” 파기환송

“역사적 논쟁은 피할 수 없어” 사자 명예훼손 위반 없다 판단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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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에 대한 방송통신위원회의 제재가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백년전쟁>은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일대기를 비판적 시각으로 다룬 다큐멘터리다. 판결은 대법원이 처음으로 방송 심의 기준을 명확히 밝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간 여러 하급심의 방송 공정성·공공성 문제에 관한 판단은 엇갈려왔다. 이날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파기환송 판결도 찬성과 반대가 7 대 6으로 팽팽했다.

2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김명수 대법원장, 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백년전쟁>을 방송한 시민방송 RTV가 방통위를 상대로 낸 ‘제재조치 명령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2013년 1월 방송된 <백년전쟁>은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한 6부작 다큐멘터리다. 근현대사 100년을 독립운동가, 친일파와 그 후손들의 전쟁으로 보고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비판적인 내용을 담았다. 방통위는 그해 8월 “사회적 쟁점이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된 사안을 공정성과 균형성을 유지하지 못한 채 다뤘다”며 프로그램 제작진을 징계·경고하고, 제재조치를 받은 사실을 방송으로 알리라고 명령했다.

쟁점은 <백년전쟁>이 ‘옛 방송 심의에 관한 규정’에 따른 객관성·공정성·균형성 유지 의무 및 사자 명예존중 의무를 위반했는지다.

1·2심은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을 희화화했을 뿐 아니라 인물에 대한 새로운 관점·의혹 제기에 그치지 않고 특정 입장에 유리한 방향으로 편집·재구성해 사실을 오인하도록 적극적으로 조장했다”며 제재가 적법하다고 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을 비롯한 7명의 대법관은 다수의견으로 “이 방송이 공정성·객관성·균형성 유지의무 및 사자 명예존중 의무를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방송 내용을 심의할 때에는 매체별, 채널별, 프로그램별 특성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며 “시청자가 제작한 방송 프로그램을 심사할 때에는 방송사업자가 직접 제작한 프로그램에 비해 심사기준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다른 의견을 가진 시청자에게도 방송 기회가 보장되기 때문에 ‘균형성’이 깨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공정성’ 개념도 넓게 봐야 한다고 했다. “제작자 관점과 다른 관점을 가진 당사자 의견을 모두 반영한 역사 다큐멘터리만 방송해야 한다면 주류적 통념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는 다큐멘터리는 방송에서 다루기 힘들 뿐만 아니라 자칫 역사적 관점에 대한 단순한 나열에 그칠 수 있다”고 했다. 방송 ‘객관성’은 “증명 가능한 객관적 사실에 기초해 가능한 정확히 사실을 다루어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제작진이 사실 확인을 위해 상당한 노력을 투입했고, 내용도 사료에 기초한 점을 보면 방송의 ‘객관성’을 위반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역사적 인물에 대해 사자 명예훼손을 했다고 제재 조치한 것도 부당하다고 했다. 대법원은 “역사적 사실이나 인물에 대해서는 후대 평가가 다양하게 때로는 상반되게 나타난다”며 “이 같은 역사적인 논쟁은 피할 수 없는 것이며 인류의 삶과 문화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끄는 건전한 추진력이 된다”고 했다.

조희대·권순일·박상옥·이기택·안철상·이동원 대법관 6명은 “제작 의도에 부합하는 자료만 취사선택해 객관성을 상실했고, 제작 의도와 상반된 의견은 전혀 소개하지 않아 공정성·균형성을 갖추지 않았다”며 반대의견을 냈다.

유설희 기자 s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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