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전원합의체 선고에 자리하고 있다./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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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아픈 남편을 수년간 간호했더라도 통상 부부로서의 부양 수준에 그쳤다면 법정 상속 비율을 넘어 추가로 상속 재산을 받을 수 없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김명수 대법원장)는 21일 망인(亡人)의 유산 분할을 두고 전처(前妻) 측과 후처(後妻) 측이 맞붙은 소송에서 후처 측의 기여분 주장을 인정하지 않은 원심을 확정했다.
2008년 사망한 A씨는 앞서 숨진 전처와 사이에 3남 6녀를, 재혼한 후처 B씨와는 두 아들을 뒀다. A씨는 생전에 B씨와 다섯 아들에게 재산 일부를 증여했고, A씨 사후 남은 유산을 나누는 과정에서 협의가 원만히 이뤄지지 않아 결국 가족 간 법정 다툼으로 번졌다.
전처 측 자녀들은 "법정 상속 지분대로 나누자"고 소송을 냈고, 후처 측은 "A씨 사망 3년 전부터 병수발을 도맡았고 오랜 기간 재산 관리를 대신해왔다"며 30%의 '기여분'을 주장하며 맞소송을 냈다.
민법은 동거·간호 등 피상속인을 특별히 부양하거나, 재산 유지·증가에 특별히 기여한 상속인이 있는 경우 '기여분'을 떼고 유산을 나눠 갖도록 하고 있다.
법정 상속 지분은 상속인 일부에게 따로 증여된 재산(특별수익)을 포함한 전체 상속재산에 법정 비율(자녀끼리는 균등, 배우자는 자녀보다 50% 가산)을 곱해 상속분을 계산한 뒤, 각자 물려받은 재산에서 상속분에 모자라는 비율로 유산을 나누게 된다.
기여분이 인정되는 상속인이 있으면 전체 상속재산에서 이를 떼어준 뒤, 나머지를 상속인들이 다시 나누는 식이다. 또 상속분을 넘는 특별수익을 얻었던 상속인은 유산을 나눌 대상에서 빼고 실제 상속분을 나머지 상속인들끼리 다시 계산하게 된다.
1·2심 모두 B씨의 두 자녀는 이미 상속분이 넘는 재산을 증여받아 따로 상속받을 유산이 없다고 봤다. 결국 B씨 몫 중 얼마나 전처 자녀들에게 나눠줄 것인지를 다투는 재판이 되면서 기여분 인정 여부가 핵심 쟁점이 됐다.
1·2심은 "B씨의 간병 사실은 인정되지만 본인 건강도 좋지 않아 통상의 부양을 넘어서는 수준의 간병을 할 수 있는 건강 상태가 아니었다"며 "통상 부부로서 부양의무를 이행한 정도에 불과해 특별한 기여라고 평가하기 부족하다"고 했다. 또 2심은 B씨가 따로 증여받은 재산의 규모를 1심보다 크게 인정하면서 B씨의 상속분은 1심 때의 10분 1 수준으로 감액됐다.
B씨 측은 재항고했지만 대법원 역시 기여분을 인정하지 않았다. 대법원은 "법원은 배우자의 간호가 1차 부양의무를 넘어서는 '특별한 부양'에 이르는지 여부와 함께 간호의 정도, 부양비용의 부담 주체, 상속재산의 규모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실질적인 공평이 도모되도록 기여분의 인정 여부와 정도를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또 "민법은 배우자에게 자녀보다 높은 부양 의무를 부담시키는 대신 다른 상속인보다 50% 가산된 상속분을 인정하고 있는데, 통상 기대되는 정도를 넘지 않는 장기간 간호했다는 이유만으로 특별한 기여를 인정하면 부부 사이의 부양의무를 정한 민법 취지에 어긋난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은 "전처보다 혼인 기간이 10년 정도 짧은 B씨는 별다른 직업 없이 자녀들과 A씨 수입에 의존해 생활하면서 따로 증여받은 재산도 가장 많았던 반면 전처 소생 딸들의 경우 증여받은 몫이 전혀 없었다"고도 지적했다.
다만 조희대 대법관은 "부부 사이에 부양 의무가 있다는 것과 이를 성실히 이행한 배우자에 대해 기여분을 인정하는 것은 양립불가능한 것이 아니다"며 "배우자의 기여분을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고령화·핵가족화로 노인 돌봄 문제를 안고 있는 우리 사회 현실에 비춰 바람직하다"는 소수의견을 냈다.
[정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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