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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이승만·박정희' 다큐 1표차 판결, 법관 임명권자 따라 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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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김명수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전원합의체 선고에 자리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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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집힌 백년전쟁 판결



대법관 단 1명의 차이로 4년 전 법원의 결정이 뒤집혔다.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판한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관의 의견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관의 견해가 극단적으로 엇갈렸다.

전자는 '백년전쟁'이 "주류적 지위를 점한 역사에 대한 의문제기"라 했고 후자는 "사실을 왜곡한 조롱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인 2013년 1월 방영된 '백년전쟁'은 이승만 전 대통령은 권력욕을 위해 독립운동을 했던 인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은 극단적인 친일파로 묘사하며 사회적 논란에 휩싸였던 시민 제작 다큐멘터리다.



다수의견 7 반대의견 6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1일 '백년전쟁'을 방영한 시민채널 RTV가 "방송의 객관·공정·균형의 유지 의무와 사자(死者) 명예존중 의무를 위반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RTV에 내린 법정제재가 적법하다고 본 1·2심을 파기환송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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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백년전쟁'.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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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결론을 두고 김명수 대법원장을 제외한 대법관 12명의 의견은 6:6으로 엇갈렸다. 대법관들은 올해 1월부터 심리를 개시해 지난달까지 치열한 논쟁을 펼쳤다고 한다.

결국 캐스팅 보트를 쥔 김 대법원장이 파기환송 의견에 서며 '백년전쟁'은 2013년 8월 박근혜 정부에서 받은 법정제재를 6년만에 면하게 됐다. 대법원 재판연구관 출신 변호사는 "정말 아슬아슬하게 갈린 것이다. 대법관 구성에 따라 결론이 다시 뒤집혀도 이상할 것이 없는 판결"이라 말했다.



임명권자 따라 엇갈린 대법관들



이날 전원합의체 결정에서 선고 내용만큼이나 주목받은 것은 대법관들의 엇갈린 의견과 그들의 배경이다.

반대의견에 선 6명의 대법관(조희대·권순일·박상옥·이기택·안철상·이동원) 중 안철상·이동원 대법관을 제외한 4명의 대법관은 모두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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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가운데)이 2018년 8월 6일 청와대에서 김선수(사법연수원 17기) 대법관, 이동원(17기) 대법관, 노정희(19기) 대법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환담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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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다수 의견에 선 7명의 대법관 중 김재형 대법관을 제외한 6명의 대법관은 모두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승만과 박정희란 한국 역사의 논쟁적인 인물을 두고 진보와 보수 대법관의 견해가 완전히 엇갈린 사례"라며 "이번 판결은 논란을 종식시키기 보단 더 큰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 같다"고 말했다.



다수의견의 논리



다수 의견은 RTV에 내린 법정 제재가 위법한 근거로 RTV가 다른 지상파 방송과 달리 일반 시민이 제작하는 방송이므로 심사 기준을 완화해야 한다고 봤다.

또한 방송의 객관성과 공정성의 측면에서도 "이승만과 박정희에 대한 주류적 시각에 의문을 던진 것이지 왜곡이 아니며 제작자가 사실 확인을 위해 상당한 노력을 했으며 사료에 기초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백년전쟁'이 역사적 다큐멘터리 형식을 취했다는 것도 표현과 해석에 있어 보다 폭넓은 자유를 누린다고 봤다. 사자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부분에 대해선 "역사적인 사실이나 인물에 대해선 후대의 평가에 따르고 역사적인 논쟁은 인류의 삶과 문화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끄는 건전한 추진력이 됐다"며 국가가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에 함부로 개입하거나 제재를 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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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이 지난 9월10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대한민국 법원의 날 기념식에서 박수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김재형, 박상옥, 조희대 대법관, 김 대법원장, 권순일 대법관.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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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기술의 발달로 방송이란 매체도 다양한 형식을 띄고있는 만큼 각 매체의 특성에 따른 접근이 필요하다는 논리에 공감한다"고 평가했다.

RTV의 법률 대리인을 맡은 양홍석 변호사(법무법인 이공)는 "다수, 주류의 견해와 다르다고 그 의견에 제재를 가하는 것은 억압과 폭력에 가깝다"며 "한국 사회는 더 다양한 의견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반대의견의 논리



하지만 반대 의견에 선 대법관들은 다수 의견에 각을 세우며 날선 비판을 했다. 대법원이 공개한 판결문에는 과거엔 찾기 어려운 대법관들의 거친 표현도 눈에 띄었다.

반대 의견에 선 대법관들은 '백년전쟁'에 대해 "이 방송을 한번이라도 시청하였다면""공정성·균형성에 대한 일말의 배려도 없다""역사적 인물을 왜곡·조롱·희화화했다""공동체의 선에 무슨 기여를 하는지 알 수 없다"고 비판했다. 또한 다수의견을 따를 경우 "일부 자료만을 근거로 역사적 인물을 모욕하는 방송을 해도 역사 다큐멘터리 형식을 취하면 아무런 제재조치를 할 수 없게 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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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3월 4일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조희대 신임 대법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한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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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TV가 시민방송이더라도 방송법에 보호와 지원을 받는 이상 그에 따른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희대·박상옥 대법관은 보충의견에서 역사적 인물의 평가에 대해 대법원이 지금과 같이 견해를 밝히는 것은 "국민들 사이에 새로운 갈등과 분열을 촉발할 수 있다"는 입장도 밝혔다.

대법관들이 '갈등, 분열, 국민'이란 단어를 보충의견에 사용하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이민규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장은 "이번 결정으로 표현의 자유는 증진되겠지만 역사적 사건에 대해 한국 사회의 논쟁이 더욱 혼탁해질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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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12일 오후 서울 중구 배재학당 역사박물관에서 열린 교육정책 발표 기자회견에 앞서 배재학당 출신인 이승만 전 대통령 흉상을 살펴보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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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거리두는 대법원



대법원은 이날 판결의 의의를 설명하며 "대법관들의 논쟁은 이승만·박정희에 대한 역사적 쟁점이 아닌 국민의 역사 해석과 표현에 대한 국가 개입의 한계"라고 강조했다.

사법부가 이승만과 박정희란 두 인물에 대해 어떠한 역사적 평가를 내린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대법원의 입장과 달리 대법관들의 엇갈린 견해는 한국 사법부가 정권의 권력 다툼과 이념 논쟁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을 드러냈단 지적도 나왔다.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는 "사회적·역사적 쟁점에 대한 대법관들의 의견이 첨예하게 엇갈릴 경우 권력을 잡은 정권 입장에선 코드에 맞는 대법원장과 대법관 임명의 중요성을 더욱 크게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라 지적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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