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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대법원 “이승만·박정희 친일행적 다룬 ‘백년전쟁’ 제재 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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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박정희 대통령 다룬 역사다큐멘터리

2013년 방영 후 방통위 제재…1·2심 “제재 적법”

제재 6년여만에 대법원 7대6 원심 파기 환송

“시청자 제작 방송, 신뢰도·영향력 고려해야”

“객관성·공정성·균형성·사자 명예존중 의무 위반하지 않아”


한겨레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일행적 등을 다룬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에 대해 2013년 방송통신위원회가 제재한 것은 위법하다고 대법원이 판결했다. 박근혜 정부 때의 제재가 적법했다고 판단한 1·2심 판결을 대법원이 뒤집은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김명수 대법원장, 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21일 시민방송 <아르티브이>(RTV)가 백년전쟁에 대한 방통위 제재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의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파기했다. 대법관 7명(김명수 대법원장, 김선수·김상환·김재형·노정희·민유숙·박정화 대법관)은 다수의견으로 “백년전쟁이 공정성·객관성·균형성 유지 의무 및 사자 명예존중 의무를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시청자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은 방송사업자가 직접 제작한 프로그램보다 완화된 심사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전제했다. 방송에 대한 신뢰도가 다르고 방송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 차이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또 ‘백년전쟁’이 주류 역사적 사실과 해석에 의문을 제기해 다양한 여론의 장을 마련하고자 했으며 그 자체로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전제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시청자 제작 프로그램에 대해 기존 방송사에 적용하는 것과 동일한 심의 잣대를 대서는 안되며, 프로그램 자체도 역사적 인물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제시하는 내용이라는 것이다.

대법원은 백년전쟁이 이 전 대통령과 박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도 아니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역사적 사실이나 인물에 대한 후대 평가는 각자 가치관이나 역사관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방송내용 중 역사적 평가 대상이 되는 공인의 명예가 훼손되는 사실이 적시됐다고 해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사자 명예존중을 규정한 심의규정을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 “이 방송은 역사적 사실과 인물에 대한 논쟁과 재평가를 목적으로 하고 있으므로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며 “진실과 다소 다른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진실한 사실이라고 믿을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보인다”고 했다.

김재형 대법관은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 의견으로 “표현 행위에 대한 행정제재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으니 자율심의체계로 가야 한다“고 밝혔고, 김선수·김상환 대법관은 ‘국민의 역사 해석과 표현에 대한 국가권력 개입의 한계와 정도’를 언급하며 “법원의 신중한 자세가 요구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방송의 객관성과 공정성, 균형성에 대해서도 처음으로 판단했다. 객관성이란 “사실을 왜곡하지 않고 증명 가능한 객관적 사실에 기초해 있는 그대로 가능한 한 정확하게 사실을 다뤄야 한다는 것”이고, 공정성은 “사회적 쟁점이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된 사안에 대해 다양한 관점과 의견을 전달함에 있어 편향적으로 다루지 않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또 균형성은 “관련 당사자나 방송대상의 사회적 영향력, 사안의 속성, 프로그램의 성격 등을 고려해 실질적으로 균등한 기회를 제공해 공평하게 다루는 것”이라고 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야 하고 근거를 갖춘 역사에 대한 해석과 평가를 국가가 제재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의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소수의견을 낸 6명의 대법관(권순일·박상옥·안철상·이동원·이기택·조희대 대법관)은 다수의견이 주장하는 ‘완화된 심사기준’의 의미는 처분 사유가 있을 때 방통위의 증명 책임 정도를 강화하거나 제재처분의 수위를 정할 때 재량권 행사에 감안하라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또 ‘백년전쟁’이 두 대통령에게 유리한 부분은 누락하고 편집의도에 부합하는 일부분만 발췌하여 사용했고 제작의도와 다른 의견을 소개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모욕적 표현으로 두 대통령을 조롱해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이라고 볼 수 없으므로 사자 명예존중 의무를 규정한 심의규정을 위반했다고도 판단했다.

백년전쟁은 진보 성향 역사단체 민족문제연구소가 2012년 제작했고, 이듬해 1~3월 아르티브이가 ‘백년전쟁-두 얼굴의 이승만’편과 ‘백년전쟁-프레이저 보고서’편을 각각 29회, 26회 방송했다. 한국 근현대사 100년을 독립운동가와 친일파, 그 후손들의 전쟁으로 보고 두 전 대통령의 공과 등을 다뤘다. 방통위는 그해 8월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공정성·객관성·명예훼손)을 위반했다며 프로그램 관계자를 징계·경고하고 이 사실을 방송으로 알리라고 명령했다.

2014년 8월과 2015년 7월 1·2심 재판부는 방통위 제재가 적법했다고 판결했다. 박 전 대통령 임기 중이었다. 당시 재판부는 “전직 대통령에 대한 긍정적 평가 없이 부정적인 사례와 평가만으로 구성하고, 제작 의도와 달리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은 의도적으로 배제해 사실을 왜곡했다”고 판단했다.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김지영 감독과 프로듀서 최아무개씨는 지난 6월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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