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저녁 서울 마포구 상암동 <문화방송> 미디어센터에서 열린 ‘국민이 묻는다, 2019 국민과의 대화’에 참석해 진행자인 방송인 배철수씨와 인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광주에 사는 일용직 노동자 정호창씨(51)는 19일 아침 일찍 서울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이날 저녁 서울 마포구 MBC 미디어센터에서 열린 <국민이 묻는다. 2019 국민과의 대화>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그는 수많은 신청자 중 국민 패널 300명 중 한명으로 뽑혔다. 운이 좋았다.
오후 5시까지 가도 됐지만 1시 반쯤 서울에 도착했다. 교통체증이 생겨 참석하지 못할까봐 걱정됐다. 이날이 그에겐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 오후 5시쯤 MBC 사옥에 도착해 줄서서 한 시간을 기다린 뒤 입장했다. “촬영이 끝나고 집에 가니 새벽 5시였어요. 가슴 한쪽이 훌훌 털어질 줄 알았는데 허탈하기만 했습니다.”
정씨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질문할 기회를 얻은 몇 안되는 사람이었다. “곤란한 말씀 드리겠습니다!”라고 외친 덕분이다. 그는 문 대통령에게 “저는 일용직 노동자”라며 입을 뗐다. “하루 시작은 새벽 4시쯤이다. 집에 가면 오후 7시가 된다. 삶의 질은 말할 수가 없다. 요즘 같이 춥거나 비가 많이 오거나 여름이 오면 일은 더 없어진다. 중개소에 수수료도 내야 한다. 우리는 노동자이지만 고용노동부가 아닌 지방자치단체 소속이다. 노동조합도 없다. 어느 곳에서도 일용직 노동자를 위한 정책이 없다.”
문 대통령은 소속이 없는 일용직 노동자인 정씨에게 “어디에 소속돼 있느냐”고 물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느냐”고도 했다. 정씨는 “대통령이 일용직 노동자가 어떤 존재인지를 전혀 모르는 것 같아 실망했다”고 했다. 그는 다음날인 20일 동료와 저녁에 소주 한잔을 기울였다. 동료는 정씨에게 말했다. “희망이 없어요. 호창씨가 나서서 얘기했는데 실망만 하고 왔구만요.” 정씨는 일용직 노동자가 사회에서 꼭 필요하지만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는 ‘잠수함’과 같은 존재라고 했다. ‘국민과의 대화’에서 잠수함을 수면 위로 끌어내지 못했다고 했다.
정씨는 ‘국민과의 대화’에서 그동안 언론에서 조명 받지 않은 문제가 조명받고, 진일보한 논의가 나오길 바랐다. 하지만 대부분 질문과 대답이 원론적이며 언론에서 숱하게 반복됐던 수준에 그쳤다고 봤다. 정씨는 “일용직 노동자들이 중개소에 일당 10~20% 수수료를 떼지 않고 사업주와 직접 계약을 맺을 수 있는 플랫폼(애플리케이션) 개발”을 바란다. 그렇게 되면 일용직 노동자들이 새벽 4시에 일찍 집을 나설 필요도, 중개소까지 갔다가 허탕을 치고 돌아오는 일도 사라질 것이다. 업무 기록이 플랫폼에 남겨지면 재직증명서가 없어 통장 발급도, 대출도 받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 정씨는 “이런 대안을 허심탄회하게 얘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서울 동대문구에 사는 김종민 청년전태일 대표(33)는 이날 질문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가 이날 본 문 대통령의 표정은 구김이 없었다. “불편한 질문이 하나도 없었다는 거죠. 지지율이 40%라면 절반은 반대한다는 건데 반대자들은 토론회에 과연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청년과 노동, 불공정에 대한 이야기가 거의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김 대표는 문 대통령에게 못한 질문을 다시 해본다. “문재인 정부는 가진 자들의 정부라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대통령께서는 과정의 공정은 이야기하지만 결과의 불평등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경쟁에서 뒤처진 청년들의 삶은 열악하다”고 말이다. 그는 문 대통령에게 헬멧도 보여줄 것이다. “제가 오늘 들고 온 건 배달 노동자들이 쓰는 헬멧이다. 김용균이 비정규직을 없애달라고 쓴 안전모이기도 하다. 2019년 상반기 20대 초반 산업재해 사망 8건 중 6건이 배달 노동자 사고이다. 청년들의 산재 사망, 불평등, 기득권 대물림에 대해 어떻게 해결하실 생각인지 묻고 싶다.”
이보라 기자 purple@kyunghyang.com
▶ 장도리 | 그림마당 보기
▶ 경향신문 최신기사
▶ 기사 제보하기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