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방통위 '정치적 편향' 제재 위법…하급심 파기 환송
전원합의체 "역사논쟁은 건전 추진력 돼"…6년만에 결론
김명수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21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전원합의체 선고에 자리하고 있다. 2019.11.21/뉴스1 © News1 이동해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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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서미선 기자 = 방송통신위원회가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판적으로 다룬 역사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을 제재한 조치는 정당하지 않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소송 제기 6년만의 결론으로 향후 유사 사례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1일 '백년전쟁'을 방영한 시청자 제작(퍼블릭 액세스) 전문 TV채널 시민방송이 방통위를 상대로 낸 제재조치명령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원고 승소 취지로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방송법상 방송의 공정성·공공성 심의대상이 보도프로그램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엔 대법관 전원이 동의했지만, 이 다큐가 공정성·객관성 및 사자(死者) 명예존중 의무를 지켰는지에 대해선 7대6으로 의견이 갈렸다.
김명수 대법원장 등 7명은 "시청자 제작 방송프로그램의 객관성·공정성·균형성을 심사할 땐 방송사업자가 직접 제작한 프로그램에 비해 심사기준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며 이같은 특성을 반영해 심사하면 이 다큐가 지켜야 할 의무를 어겼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다큐는 이미 많은 사람에게 충분히 알려져 사실상 주류적 지위를 점하는 역사적 사실과 해석에 의문을 제기해 다양한 여론의 장을 마련하고자 한 것"이라면서 "그 자체로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전제한다"며 편향적으로 다루지 않았다고 봤다.
이어 "역사적 인물 평가는 각자 가치관·역사관에 따라 때로는 상반되게 나타나고, 역사적 논쟁은 인류의 삶과 문화를 긍정적 방향으로 이끄는 건전한 추진력이 된다"며 "방송내용 중 역사적 평가 대상이 되는 공인의 명예가 훼손되는 사실이 적시됐어도 심의규정을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또 "명예훼손과 모욕적 표현은 구분해 다뤄야 한다"며 다큐에 나온 일부 표현이 '저속한 표현'을 제재하는 심의규정 위반이 될 여지는 있을지라도, 명예훼손 금지규정 위반이라고 할 순 없다고 밝혔다.
반면 조희대·권순일·박상옥·이기택·안철상·이동원 대법관은 이 다큐가 "제작의도에 부합하는 자료만 취사선택해 내용 자체가 사실에 부합하지 않아 객관성을 상실했고, 제작의도와 상반된 의견은 전혀 소개하지 않아 공정성·균형성을 갖추지 못했다"고 반대의견을 냈다.
이어 "다수의견을 따를 경우 선별·편향된 일부 자료만을 근거로 특정 역사적 인물을 모욕·조롱하는 방송을 해도 '역사 다큐' 형식만 취하면 아무런 제재조치를 할 수 없게 된다"고 지적했다.
진보성향 역사단체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한 백년전쟁은 이 전 대통령 편 '두 얼굴의 이승만'과 박 전 대통령 편 '프레이저 보고서' 두 가지로, 시민방송에서 2013년 1~3월 총 55차례 방영됐다.
다큐엔 이 전 대통령이 친일파이자 기회주의자로 사적 권력욕을 채우려 독립운동을 했다는 내용, 박 전 대통령이 친일·공산주의자로 미국에 굴복하고 한국 경제성장 업적을 가로챘다는 내용이 담겼다.
방통위는 그해 8월 "사회적 쟁점이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된 사안을 다루며 공정성과 균형성을 유지하지 못했고 사자 명예존중 조항을 어겼다"며 프로그램 관계자를 징계·경고하고 이 사실을 방송으로 알리라고 명령했다. 시민방송은 이에 2013년 11월 소송을 냈다.
1,2심은 "해당 역사적 인물에 대한 새로운 관점·의혹 제기에 그치지 않고 특정 입장에 유리한 방향으로 사실을 편집하거나 재구성해 공정성과 객관성을 상실한 정도로까지 나아갔다"며 방통위 손을 들어줬다.
시민방송의 불복으로 2015년 8월 대법원에 상고된 이 사건은 당초 대법원 1부에 배당됐다가 3년 5개월만에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명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에 회부, 심리돼오다 이날 결론이 났다.
대법원 측은 "이번 전합 판결은 하급심에서 명확한 개념이 정리되지 않았던 방송심의기준의 객관성·공정성·균형성 및 사자 명예존중의 의미를 제시하고, 역사에 대한 해석논쟁 자체가 공동체에 주는 긍정적 영향을 고려해 이 다큐가 관련법령 한계 안에 있음을 확인한 것"이라고 밝혔다.
smith@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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