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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8 (월)

몰래? 50%?…당신은 어떤 비건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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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혼자가 아니야: 나, 우리, 지구 그리고 비건 ②

<아무튼 비건> 김한민 작가 인터뷰

“비건은 까다롭고 예민하다는 오해…50%라도,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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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피의 ‘저탄소 비건 식당’으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2020년 1월 하루 동안 서울 해방촌에서 아주 특별한 비건 식당이 열립니다. 혼자가 아니라 다함께 실천하는 비거니즘을 위해, 여러 비건들이 모여 이야기하고 체험하는 식당입니다. 응원과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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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동물보호단체 시셰퍼드코리아 활동가이자 작가인 김한민씨는 비건이다. 지난해 말 그가 펴낸 책 <아무튼 비건>은 요즘 비건들에게 가장 좋은 ‘입문서’로 통한다.

김한민 작가는 2010년 구제역 무렵 비건이 되기로 결심했다. 어느 공무원이 온라인에 남긴 글을 읽은 직후였다. 그는 돼지 살처분을 담당했다. 그날도 종일 돼지들을 땅에 파묻었다. 밤이 되었다. 야간 당직을 서던 공무원은 두세 마리 돼지가 매몰지 밖으로 나온 것을 보았다. 그는 돼지들의 머리를 삽으로 내리쳤다. 사력을 다해 땅 위에 올라섰을 돼지들을 다시 땅에 묻었다. 자괴감에 괴로워 글을 쓴다고 공무원은 밝혔다. 김 작가는 글을 읽으며 돼지들의 비명을 떠올렸다. 다시는 고기를 입에 대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11월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촌의 한 책방에서 김 작가를 만나 이후의 생활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진지한 비건이 되는 일은 “길고 꾸준한 절망을 매일 느끼고 파편 같은 희망을 바라보며 매일을 버티는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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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돌아온 돼지의 비극에서 시작된 일


고기를 입에 대지 않기로 결심했다고, 하루아침에 손바닥 뒤집듯 비건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처음엔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것부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얼굴이 있는 동물을 먹지 않았다. 나중에는 생선 또는 동물을 착취해 얻은 생산물까지 거리를 두게 됐다. 이미 지니고 있던 동물성 제품들은 닳을 때까지 쓰거나 비건이 아닌 친구들에게 나눠줬다.

비건 지향으로 약 5년, 비건으로 5년의 시간이 흘렀다. 생활의 많은 부분이 가벼워졌다. 소화가 안 돼 더부룩한 일이 없어졌다. 소비가 줄고, 쓰레기의 양이 줄었다. 설거지할 때 하얗게 굳은 기름 덩어리를 닦을 일도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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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세상에 대한 감각은 훨씬 풍성해졌다. “비거니즘의 핵심은 연결이거든요. 남을 우리 울타리 밖으로 밀어내지 않는 것이죠. 그러다 보니 여러 사회 이슈들도 나의 이슈가 돼요. ‘이제 신경 안 써, 피곤해 죽겠다.’ 더이상 그게 잘 안되는 거죠.”

그렇게 서서히 비건이 되어온 된 김 작가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었다. 어디까지가 비건이고 어디부터는 비건이 아닌 것일까.

비건은 동물로 만든 모든 제품의 소비를 거부하는 사람 또는 그 행위를 일컫는다. 먹는 것부터 입고 쓰는 것까지 모두 포함된다. 이 가운데 먹는 것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므로 동물성 식품을 일체 먹지 않는 ‘엄격한 채식’이 곧 비건이라 해도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라고 김 작가는 설명했다.

‘채식의 강도’에 따라 다양한 명칭이 있다. 어류를 예외적으로 섭취하면 페스코, 가금류를 먹으면 폴로, 유제품을 먹으면 락토, 달걀을 먹으면 오보 등으로 구분하고, 종류를 가리지 않고 가끔 육식하는 사람을 플렉시테리언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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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김 작가는 이런 잣대와는 조금 다른 구분법을 갖고 있었다. △주말 비건 △클로짓(closet) 비건 △50% 비건 △60% 비건 △75% 비건 등이 그것이다.

‘주말 비건’은 비틀스의 멤버였던 폴 매카트니가 주도하는 ‘고기 없는 월요일 운동’에서 착안한 행동이다. 1주일 가운데 주말만이라도 고기 없는 날을 보내는 것이다. 육식이 기본 옵션인 한국 사회에서는 공적인 모임이 많은 평일보다 사적인 시간이 많은 주말에 채식을 실천하기가 더 쉽다. 따라서 ‘주말에라도 고기를 먹지 않겠다’는 결심은 비건의 출발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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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토, 페스코…’ 대신 ‘오늘의 비건’


‘클로짓 비건'은 남들 몰래 실천하는 것이다. 비건 지향을 주변에 알리지는 않지만, 내 돈으로는 육류를 구매하지 않거나, 혼자 있을 때 채식하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공연히 부담을 주거나 눈총을 받기는 싫지만, 그래도 비건으로 살고 싶은 사람들이 선택하는 비건 행동이다.

김 작가의 구분법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비율’에 있다. “‘비건 지향’이라는 말을 많이들 하는데, 되게 편리하고 좋은 말이지만 약간의 기준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50%만 되어도 비건 지향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아래는 관심 있는 수준일 것 같고요. 적어도 두 번의 끼니 중 한 번은 채식한다거나, 두 번의 소비 중 한 번은 제대로 하려는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세 번 중 두 번, 네 번 중 세 번… 이렇게 높여갈 수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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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스스로 96% 정도의 비건이라고 말했다. 국제 환경단체 활동가라는 직업 특성상 그는 오지 또는 정글에도 간다. 채식만 고집할 수 없는 경우도 생긴다. 식당에 가면 젓갈이 들어간 김치도 먹는 편이다. “그렇다고 괜찮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고, 반성해요. 하지만 ‘완벽하지 못할 바에는 비건 다 집어치우고 편하게 살자’, 그런 건 하고 싶지 않은 거죠.” 비건으로 생활하는 비중을 높이려고 노력하는 한, 완전한 비건이 아니라 해서 자책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는 “비건의 문턱은 높지 않다”고 말했다. 엄격한 비건의 잣대를 세우고 스스로 학대하는 것보다는, 할 수 있는 만큼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지, 얼마나 꾸준히 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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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몇 퍼센트 비건일까?


지난 한 달간 ‘비건 지향’을 해온 애피 식구들은 몇 퍼센트 비건일까. 4명의 애피 기자들은 평일 점심으로 채식 도시락을 싸와서 나눠 먹었다. 도시락을 못 챙긴 날에는 채식 옵션이 있는 식당을 골라갔다. 편의점으로 달려가는 오후 시간에는 성분표를 꼼꼼히 살펴 채식 간식을 골랐다.

하지만 때때로 부서의 다른 사람이 낀 회식에서는 고기를 먹었다. 육식주의자인 그는 우리를 걱정하듯 “고기를 안 먹으니 생기가 없는 거”라고 했다. 안주로 나온 튀긴 새우를 잔뜩 집어 먹고 다음 날 숙취와 함께 괴로워하기도 했다.

그렇게 내면에서, 그리고 외부로부터 여러 물음에 직면했다. 젊은 세대에서 비건이 유행처럼 번진다는데, 나도 그저 유행에 휩쓸리는 건 아닐까. 진화론적으로 인간은 잡식동물이었다는데 채식이 그것을 거스르는 식습관은 아닐까. 비건들의 주요한 단백질 섭취원인 콩의 소비가 증가하면, 이를 재배하는 과정에서 열대림 등이 파괴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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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비건’의 높은 기준, 그 기준을 달성하지 못하는 일상, 그런 실천을 막아서는 주변과 사회의 시선 사이에서 이런 질문들이 수시로 고개를 들었다.

이에 대해 김 작가는 “비건이 유행처럼 느껴지더라도 고행이 아닌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은 너무 반가운 일”이라고 말했다. 다만 유행에 그치지 않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주류 문화가 되도록 발전시켜 나가면 된다고 덧붙였다. “지구 환경,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육류 소비를 드라마틱하게 줄여야 한다는 것에는 공감해야 하지 않을까요.”

유엔 식량 농업기구에 따르면, 공장식 축산이 내뿜는 탄소는 전 세계 교통수단의 매연보다 많다. 아마존 벌채의 80~90%는 공장식 축산에 필요한 사료용 대두 재배를 위해 이뤄진다. 지구를 망치는 주범은 콩 식용이 아니라 콩을 먹여 육류를 대량 생산하는 공장식 축산이고 그것을 먹는 육식이라는 것이다.

김 작가의 말을 요약하자면, 비건은 동물을 좋아하는 극단적이고 예민한 괴짜가 하는 일이 아니다. 자연적이고, 몸에 좋고, 맛있고, 지구에 이득을 주기 위해 하는 일이 비건이다. 간결하고 상식적인 그 말에, 동참 못 할 이유가 무엇이냐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기사 연재가 끝나도 계속 비건의 삶을 살고 싶어졌다. 일단 첫 번째 문턱을 넘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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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가 아니야: 나, 우리, 지구 그리고 비건

신소윤 김지숙 기자 yoon@hani.co.kr

#3회 ‘파이터들은 알아요, 채식이 좋다는 걸’에서는 “힘을 쓰려면 고기를 먹어야지”라는 말로 대표되는, 채식의 영양학적 편견들을 뒤집는 이야기들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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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락도 진화하더라_신소윤의 비거니즘 일기

비건 기획을 준비하면서 도시락을 싸기 시작했다. 채식을 시작하면서 신문사 주변의 식당을 찾기가 꺼려졌다. 거기서 거기인, 뻔한 주변 식당 메뉴들이 지긋지긋하기도 했다.

근데 도시락을 싼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계란말이도 동그랑땡도 어묵도 진미채도 멸치조림도 없는 도시락이라니. 무얼 담아야 하지? 고민이 시작됐다.

10월30일 대망의 첫 도시락 시간. 그날의 주인공은 지숙 기자가 싸온 쌈 채소였다. 편의점에서 긴급 공수한 쌈장이 딸려왔다. 수북이 쌓여있던 쌈 채소가 순식간에 사라지기 시작했다. 삼겹살 없는 쌈도 이렇게 맛있구나. 흔히 간장게장이 밥도둑이라는데, 쌈 채소도 만만치 않았다. 근무 시간에 비례해 시들시들해지는 회사 안 직장인들에게 싱싱한 채소가 주는 묘한 힘이 있는 듯했다.

첫 도시락의 산을 넘으니 다음부터는 수월해졌다. 다들 먹는 데 있어선 배움이 빠른 사람들이었다. 다음날인 10월31일, 무려 하루 만에 우리의 비건 도시락은 한 차원, 아니 세 차원 쯤 업그레이드했다. 팀장은 아침에 구웠다며 미니 감자전을 꺼냈다. 지숙 기자는 끓는 물에 살짝 데친 양배추를 쌈장과 함께 가져왔다. 비건 마요네즈와 브로콜리도 나왔다.

난… 요즘 힙하다는 마라샹궈를 비건과 접목(?)시켰다. 버섯, 호박, 양파를 대충 썰어서 볶고 거기에 마라샹궈 소스를 끼얹으면 끝이었다. 11월4일엔 비건 잡채가 등장했다.

“비건용 강된장 입하. 밥 먹으러 오세요!”

11월6일 진지한 아침 보고가 오가던 카카오톡 팀 채팅방에 느닷없이 ‘오늘의 메뉴’가 공지됐다. 조홍섭 기자였다. 그날 점심에선 쌈 채소들이 외롭지 않았다.

먹는 것을 좋아하는 팀원들에게 채식의 세계는 새로운 미식의 탐색이기도 했다. 우리 ‘수준’에서 미식의 탐색이란 이런 식이었다. “집에 국 끓이고 남은 무가 있는데 뭘 해먹지?” “그거 고등어 졸이듯이 졸이면 돼, 고등어 빼고.” “그날 그 편의점 채식 도시락에 들어간 콩고기 어디서 만든 건지 알아?” “카톡 오픈방서 보니까 ○○○○서 만든 콩불고기라던데.” “나 그거 500g 주문할 건데 같이 할 사람!”

그래서 오늘의 애피 도시락은?! 비건 그린커리와 토마토 샐러드, 오이지무침, 깻잎장, 채소찜…. 각자의 농도로 비건을 실천하며 우리는 오늘도 평화롭고 즐겁게 잘 먹고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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