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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수에서 선택으로 바뀐 가족 구성
한때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결혼’이라는 걸 꼭 해야 할까? 사랑하는 이와 한 공간에서 살면, 그냥 그게 행복한 삶이 아닐까? 이런 생각 말이다. 물론 나는 40년이 훌쩍 넘는 세월을 뒤로한 채 결혼을 했다. 어떤 결속을 위해, 그러니까 그냥 보통 사람들처럼 결혼을 하고 아기를 가졌다. 시쳇말로 ‘가족’을 이룬 셈이다. 이에는 애초 태어나면서부터 구성되어 있던 부모님 이하 가족의 입김도 컸다. 사회적 제도라는 규범과 관습이 얽매어 놓은, 그래서 인간은 태어나 성장한 이후 가족을 이루어 또 다른 조직으로서의 가정을 꾸려야 한다는 그런 생각들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삶에 대한 불만 또는 불평은 없다. 나름대로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나는 이제 법적 구속에 의한 가장이고, 동시에 한 집의 세대주이며, 한 여인의 남편이고,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책임의 무게를 실감하고 있다. 어쩌면 이제부터 남은 생은 ‘끈끈한 연대’의 범주 속에서 이루어져야만 할 것이라는 두려움 역시 엄습한다.
아마 끈끈한 연대는 국가, 사회라는 범주 속에서 살아가는 인류에게 오랜 기간 지속될 형태의 모습일 거다. 그럼에도 시대가 변화하며 이 연대의 기준이 점차 희석되어 가고 있음을 느낀다. 그것이 바로 지금 이야기하려는 ‘느슨한 연대’다. 유명한 경제학자이자 미래학자인 자크 아탈리에 따르면 “2030년이면 결혼 제도가 사라지고 90%가 동거로 바뀔 것”이라 한다. 불과 10여 년 후에 대한 예측이다. 필자가 결혼보다는 동거를 상상했던 것 역시 수많은 유럽 영화를 통한 인지 때문이 아니었을까라고 추측된다. 많은 프랑스 영화에서는 결혼이라는 관습 없이 연인과 사실적 가족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의 애정으로 삶을 살아가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 역시 기존 관습에 저항했던 또 다른 형태의 이미지였을 뿐이다.
주류였던 결혼이 동시대는 비주류로 자리하고 있다. 또한 세계적 지표 상에서도 혼인율이 매년 최저치를 갱신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도 있다. 한국의 상황 역시 마찬가지다. 유교적 전통에 따라 한 가문의 대를 이어야 한다는 고리타분한 규범 따위는 잊힌 지 오래다. 결혼 후 남아보다 여아를 바라는 부부가 많아진 것에서도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이 같은 인식론적 변화에 따라 이제 ‘비혼’ 애티튜드가 비주류로 손가락질 받던 시대는 종결되었다. 사실 밀레니얼 세대에게는 역사적으로 결혼이 심어 주었던 막연한 동경 또는 환상이 사라진 지 오래다. 가족 제도에서 필수적으로 꼽혔던 결혼은 이제 다양한 삶의 형태에서의 선택 사항일 뿐이라는 말이다. 최근 출간된 『라이프 트렌드 2020: 느슨한 연대 Weak Ties』(저자 김용섭/부키 펴냄)는 이 ‘느슨함’에 대한 관계 지형도의 변화를 주요 골자로 한다. “실제로 진짜 가족 대신 가짜 가족을 원하는 사람도 많아졌다”고 책의 저자는 말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가족’이 된다는 건 법적 관계로 맺어진, 쉽게 말해 어떤 변화에도 법적 절차를 밟아야만 구성원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결혼 후 혼인 신고라는 걸 하면 주택 매매 및 전세에 있어서 혜택을 받기도 한다. 출산 후에는 출생 신고를 통해 주민등록상 가족 구성원이 되었음을 명백히 해야만 한다. 하지만 법으로 묶인 가족이라는 건 관계의 해체에 있어 굉장히 복잡한 행위가 있다는 것 역시 알아야 한다. 끈끈함과 강력함을 주 무기로 하는 법적 가족은 그렇게 오랫동안 사회를 지탱해 온 노동과 생산의 근원이었다. 하지만 가짜 가족, 흔히들 대안 가족이라고 칭하는 구성체는 또 다르다. 사실 국가에 대한 신고를 제외하고 가족을 두고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칸국제영화제 황금 종려상 수상작 ‘어느 가족’을 보자. 이 영화는 일종의 대안 가족의 삶을 잘 보여 준 영화일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은 자본주의 계층에서 하위 범주에 있는, 이런 저런 인연으로 얽히고설킨 가짜 가족의 이야기다. 영화 속 가족에게는 사실 시련이 크게 없다. 그저 행복하다. 하지만 법이라는 국가 제도가 들이닥치자 대안 가족은 파국을 맞이하게 된다. 영화를 사례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앞서 말한 가족의 진위 여부 확인에 관해서다. 동시에 끈끈함이라는 강력한 연대를 법과 제도만으로 구분하기도 쉽지 않다. 실제 가족이라도 어떤 연대감을 형성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의해 형성되는 연대를 반드시 제도적 범주 속에 구속할 필요도 없다. 현시대에는 말이다. 연대의 형성에 있어 강력함보다는 느슨함을 골자로 하는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는 밀레니얼 세대의 여러 가치관과도 부합되어 확산되고 있다. 동세대는 취업이 어렵다. 이는 넉넉한 경제력을 가지기 어려워졌다는 의미다. 그러니 관계에 있어 굉장히 무거운 책임을 짊어져야 하는 결혼까지 고려하기가 쉽지 않다. 과거에는 회사에서도 ‘우리는 가족’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노동과 열정을 요구했다. 이는 구시대적 포디즘(Fordism, 벨트를 도입한 일관 작업 방식)에 근거해 일종의 착취를 위한, 강력한 연대를 강요하는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시대는 완전히 변했다. 점차 노동자의 지위는 격상되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춘은 가난해져만 간다. 밀레니얼은 스스로를 위한 행복을 추구한다. 그래서 관계 역시 언제든 쉽게 털어 버릴 수 있는 어떤 것이어야만 했다. 이런 이유로 느슨한 연대는 점차 각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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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슨한 연대의 핵심은 ‘현재 관계망’과 ‘평등’
사실 느슨한 연대의 핵심은 현재를 함께하는 관계망이다. 대안 가족 혹은 대안으로서의 연대는 존재하지만 이 관계를 보호하고 지켜 줄 제도는 전혀 없다. 연인 간의 동거로 느슨한 연대의 행복을 누리는 이도 있고, 친구, 이성, 동성 간의 나이를 불문한 다양한 관계가 존재한다. 최근 밀레니얼 세대의 거주 문화로 자리하고 있는 ‘셰어 하우스’ 개념 역시 느슨한 연대의 직접적 사례가 된다. 함께 먹고, 자고, 살면서 가족과 같은 친밀함을 느끼지만 엄밀히 말해 이 동거인들은 법규상 가족이 아니다. 한국의 법은 배우자, 직계 혈족 및 형제 자매 등을 가족으로 규정한다. 가족 간에 나눠 쓸 수 있는 항공 마일리지의 ‘가족’은 더 좁다. 나의 부모는 되도 형제는 안 된다. 아내와 그의 부모는 되어도 그의 형제는 나와 가족이 아니다. 이 모든 게 결혼 중심의 법제상 가족 규정이 그렇기 때문이다. 여전히 가족을 만드는 건 ‘결혼’과 ‘혼인 신고’라는 법으로 명시된 항목을 충족해야만 한다. 이와는 별개로 우리는 이제 반려동물까지도 가족이라고 부른다. 일종의 느슨한 연대의 범주에서는 가능하지만 진위 여부를 따지면 결코 가족이 아님에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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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 중심의 역사적 전통에 따르면, 고대 로마 때부터 ‘가장’은 강력한 힘을 가졌고, 이에 따라 구성원을 지배했다. 동시에 가족은 경제 단위로 치부되었고, 노동의 근원이었다. 때문에 가족 구성원은 실제로 생산을 위한 노동자였고, 도구였다. 결혼의 법적 제도화는 역사적으로 이런 배경과 연관이 있다고도 말한다. 앞서 ‘가족 같은 회사’라는 전통적 기업의 슬로건을 말한 바 있다. 가족의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면 그 슬로건이 어떻게 도출되었는지 명확히 이해된다. 가족의 역사성은 단지 이와 같은 노동의 배분에만 그치는 건 결코 아니다. 그 연대감으로 인해 가장은 가족을 어떤 위협으로부터 지켜 내야만 했고, 그 힘을 상실했을 때 가장은 자신의 위치를 지켜 내지 못했다. 몇 년 동안 많은 이들이 사랑했던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과 같은 고대적 허구 내러티브 속에서도 왕이라 불리는 가족 단위 공동체 속 가장의 존재 역시 그렇지 않던가! 끈끈한 연대를 형성한 공동체는 스스로 계급을 양산했고, 또 그에 순응하면서도 전복을 통해 체제를 변형시켜 왔다. 이제 느슨한 연대의 시대에 돌입하면서 이에 대한 사회적 보호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수직적 계급으로 구분되었던 가족 구성원의 형태는 힘의 분산을 통해 점차 수평적 관계로 변화하고 있다. 동시에 기존 가족 제도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라이프스타일 트렌드에 의해 현대 가족의 핵심은 ‘평등’이 되어 가는 것 역시 사실이다.
느슨한 연대라는 삶의 관계망은 가족이 진짜든 가짜든 관계 없이 진행되는 트렌드라는 사실도 이해해야만 한다. 누군가가 진짜 가족을 꾸렸든, 임의적 가족으로서 가짜 가족을 꾸렸든 간에 연대는 평행적이고 느슨해지고 있다는 것. 필자 역시 법적 가족의 카테고리 속에서 느슨하면서도 수평적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고 믿는다. 이는 구성원 간의 역할 구분이 점차 사라지는 시대이기에 가능해지는 것이기도 하다. 전통적 가족에서는 가장이 모든 식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 가족을 희생시키더라도 부를 축적하고 노동력을 강화해야만 했다. 이는 출산의 문제와도 연동되는 사안이다. 대를 이어 가장의 자리를 물려주어야 하고, 또 많은 출산을 통해 노동력을 확보해야 하는, 다르게 보면 대단히 동물적 본능의 시대를 거쳐 왔다. 현재에는 완전한 평등의 관계를 위해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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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취향을 존중하는 것이 첫걸음
나를 예로 들어보겠다. 우리 가족은 혼인 신고를 했고, 아이의 출생 신고까지 마쳤으니 법적 범주 속에 있다. 하지만 살아가기 위한 경제적 책임은 나와 아내가 동시에 짊어지고 있다. 맞벌이 부부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났다. 잠깐의 출산 휴가 기간 동안 아내가 낮의 육아를 담당한다. 물론 나는 직장에서 생업에 종사한다.
그렇다면 나만 노동하는 것일까? 결코 아니다. 현재 나와 아내는 동시에 가족을 위한 노동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퇴근 후 내가 가사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 끈끈하다고 생각한 가족의 연대는 순식간에 깨트려지기 십상이다. 육아라는 현재의 최대 관심사 역시 마찬가지다. 아내가 하루 종일 육아 노동을 했기에, 나는 저녁이라도 미비한 힘을 보태야만 한다. 이러한 평등의 관계는 느슨한 연대의 또 다른 핵심이기도 하다. 셰어 하우스를 이용하는 구성원들 역시 마찬가지다. 거주비가 고가인, 그러니까 레지던스 형태의 고급 거주지가 아니라면 조직 구성원은 공간을 유지하기 위해 육체적 노동과 경제적 지원을 분담해야만 할 것이다. 해외에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이 같은 느슨한 연대의 시대가 개막되어 있었다. 기억하겠지만 우리에게 많은 인기를 끌었던 시트콤 ‘프렌즈’의 공동체 역시 그런 관계 속에 지탱되어 온, 그래서 진짜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관계의 형성을 잘 보여 준 작품이었다. 또 다른 시트콤 ‘모던 패밀리’를 기억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프렌즈’와 달리 ‘모던 패밀리’의 구성원들은 법적 구속력을 가진 가족의 연대에 더 가깝다. 할아버지는 젊은 여인과 재혼을 했고, 그녀의 아들과 함께 산다. 그의 딸은 세 아이의 엄마며, 가장이지만 가장으로서의 파워는 지니지 못한 남편이 있다. 그의 아들은 동성애자이며, 느슨한 연대의 표본으로서의 파트너가 있다. 심지어 두 사람은 베트남에서 입양을 해 딸을 키우고 있다. 10년에서 20년 이상 된 작품들이지만 이 두 시트콤은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느슨한 연대’의 완벽한 사례를 잘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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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용섭의 『라이프 트렌드 2020: 느슨한 연대 Weak Ties』를 다시 한 번 인용하자면, “더 이상 출산과 대를 잇는 것만이 가족의 기본이 아니다. 그런 가족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가족을 원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한다. 전통적으로 인류의 행복은 결혼과 출산에 있다고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동시대에 들어 그것은 어떤 강요가 되고 있다. 여전히 우리 부모 세대는 결혼과 출산을 성장한 자녀들의 행복이라 믿는다. 그래서 적령기에 들어선 아들딸에게 명절이면 어김없이 잔소리를 해댄다. 하지만 삶은 스스로 살아가는 것이며, 자신의 라이프스타일 역시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것임을 믿어 줘야 한다. 어떤 이는 그에 순응하며 자신의 행복을 찾을 것이고, 또 어떤 이는 또 다른 연대에 따른 관계를 형성해 스스로의 행복에 젖을 것이다. 무엇이 옳다고 강조할 필요도 없고, 자신과 다른 관계를 만들었다 하여 비난할 필요도 없다. 느슨한 연대는 ‘나 아닌 타인의 취향을 인정할 때 비로소 시작’된다. 사회의 일차원적 조직으로 규정했던 가족에서 시작된 연대의 변화는 확장되어 그 관계망을 넓혀 가고 있다. 그렇다면 모든 분야에서 이 변화를 인정하고,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국가 역시 그래야 하리라 믿는다. 구성원의 삶에 변화가 있다면 그에 맞는 법제를 마련하는 것이 타당하기 때문이다. 전통적 가족을 벗어나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자신들만의 연대감을 형성하며 조직되고 있다. 그리고 이제 본격적인 느슨한 연대의 시대가 펼쳐질 전망이다.
[글 이주영(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사진 픽사베이]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705호 (19.10.26)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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