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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검열 맞선 16㎜ ‘기념비적’ 노동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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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CJ 문화재단 공동기획]

(94)<파업전야>

감독 장산곶매(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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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후반 민주화운동과 각종 변혁의 움직임은 청년들의 영화 운동으로까지 이어졌다. 이은, 장동홍, 장윤현, 공수창, 홍기선 등은 ‘장산곶매’라는 영화제작집단을 결성하고 현실 참여적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다. <파업전야>(1990)는 <오! 꿈의 나라>(1989)에 이은 장산곶매의 두번째 16㎜ 필름 장편영화다. 16㎜ 포맷을 택한 것은 상업영화의 제작·배급 방식을 따르지 않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자본과 주류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사회적 메시지를 자유롭게 설파하는 것이 독립영화의 기본 정신이자 기능 중 하나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또한 당시 공권력의 검열을 피하는 데 유효한 선택이기도 했다. <파업전야>는 일반 극장 대신 대학가, 공장, 시위 현장 등 이동이 용이한 16㎜ 영사기를 설치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상영됐고, 이렇게 영화를 본 관객의 수는 수십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전작에서 광주 민주화운동을 조명했던 장산곶매는 <파업전야>에서 노동자 문제를 꺼내 든다. ‘동성금속’의 노동자들은 근로환경 개선을 목표로 노조를 결성하고 투쟁에 나선다. 야근과 특근에 시달리며 손가락이 잘려나가도록 일해도 기계보다 못한 취급을 받던 이들은 노동자 인권을 위해 단결한다. 사쪽이 노조 결성을 방해하려 노동자들을 기만하고 부당해고를 일삼으면서 갈등은 심화한다. 동료들과 여자친구가 노동운동에 열심인 모습을 보면서도 돈과 승진에 대한 미련으로 갈등하던 ‘한수’는 결국 동료들 편에 서기 위해 기계를 멈추고 공구를 손에 든다. 한수의 극적 변화나 슬로모션으로 연출된 마지막 신의 강한 선동성은 시대적 절박함을 잘 드러낸다.

정부 당국은 이 영화 상영을 막으려고 헬기까지 동원했으나 국민들은 투쟁에 가까운 상영 운동으로 맞섰다. 이는 표현의 자유를 향한 외침으로 이어져 1996년 헌법재판소에서 영화 사전심의 위헌 결정을 받아내는 혁혁한 성과를 가져온다. 한국영화사에서 <파업전야>는 비단 한편의 영화가 아니라 위대한 사건이었고 명징한 현상이었으며 빛나는 이정표였다. ‘기념비적’이라는 수식어가 적확하게 들어맞는 작품이다.

윤성은/영화평론가

※한겨레·CJ문화재단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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