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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카피 제국]②다 그렇게 한다고요?…"디자인 표절시 3년이하 징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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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실제 처벌수위 낮아…"벌금 몇백만원 내고 말지" 생각도

법적 판단 나오기까지 최소 1년…별도 '단속·중재 기구' 필요

[편집자주]"이른바 '짝퉁'(위조 상품)보다 심각한 게 '카피 상품'입니다." 주요 패션업체 관계자의 말입니다. '카피 상품'이란 말 그대로 특정 브랜드 제품 디자인을 고스란히 베낀 제품을 의미합니다. 상표까지 도용해 누구나 불법임을 아는 '짝퉁'과 비슷한 듯하지만 다릅니다. 업계 일각에서는 디자인 도용을 일종의 '관행'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디자인 카피도 명백한 법적 처벌 대상입니다. <뉴스1>은 국내 패션업계의 '경각심'을 일깨우도록 디자인 카피의 문제점을 짚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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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ws1 최수아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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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배지윤 기자 = "다른 브랜드를 사전 조사하면서 모티브(영감)를 얻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명품과 비슷한 제품을 판매하게 됐다. '다른 브랜드들도 그렇게 하니까'라는 저의 안일한 생각이었다."

여성 의류 쇼핑몰 '임블리'를 운영하는 업체 부건에프엔씨 임지현 상무의 해명이다. 지난 4월 임블리 상품들이 다른 브랜드들을 '카피했다'는 의혹에 휩싸이자 임 상무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이 같은 입장을 내놨다. 해당 제품들은 명품 구찌 '원피스', 가방 브랜드 사카이 '사첼백', 패션 브랜드 르메르 '카트리지 백' 등의 디자인을 베꼈다는 논란을 일으켰다.

임 상무의 해명은 다시 한번 거센 논란이 됐다. "모티브를 얻은 게 아니라 디자인을 도용한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거셌다. "'다른 브랜드들도 그렇게 하니까'라는 얘기는 결국 '다른 브랜드들도 모두 카피한다'는 의미인 것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카피로 인정받기 어렵단 점을 악용해 디자인 표절"

21일 패션업계에 따르면 국내 중소 브랜드는 물론 주요 브랜드조차 디자인 카피를 '관행'으로 보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그러나 디자인 카피는 명백한 법적 처벌 대상이다. 법적으로 부정경쟁행위방지법 위반에 해당한다.

구체적으로 다른 사람의 지식재산권(디자인)을 시장에서 혼돈·오인하게 만들어 경제적인 이익을 추구했다는 혐의를 받는다. 부정경쟁행위방지법 위반 시 3년 이하 징역형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형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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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사이트에서 판매되고 있는 프랑스 브랜드 '베트멍' 원피스(왼쪽), 오른쪽은 임블리에서 판매된 원피스. © News1 김일환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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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디자인 카피 상품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이 없다는 점이다. 어디까지가 도용이고 '유행'인지 기준이 뚜렷하지 않다.

'디자인 전문가'가 아닌 재판장은 결국 디자이너와 패션학과 교수 등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카피 여부를 판단한다. 원고 측은 '카피 당했다'는 증거를 제시하기 위해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도 한다. 소송 비용도 최소 1000만원 수준이다. 카피 증명 과정이 부담스럽고 다소 복잡한 데다 결론 내리기도 힘든 셈이다.

임현철 법무법인 주원 변호사는 "'카피 당했다'고 주장하는 제품도 실제로 디자이너 고유의 창작물인지, 이 제품 또한 다른 브랜드 상품을 베끼지 않았는지 살펴보는 법적 절차도 있다"며 "원작자로 그만큼 인정받기 쉽지 않고 배상받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임 변호사는 "이 같은 부분을 파고들어 디자인을 도용하는 업체들이 늘고 있다"며 "형량이나 벌금 등 실제 처벌 수위가 비교적 가벼운 것도 패션 업계가 카피에 경각심을 갖지 않는 이유"라고 꼬집었다.

◇사실상 법 '무풍지대'…'일단 베끼고 보자'

업계에서는 디자인 카피 상품이 사실상 법 무풍지대에 놓였다고 지적한다. 개인이든 법인이든 카피 상품을 겨냥한 법적 대응을 잘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또한 디자인 도용 기준이 모호한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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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피 했다'는 의혹을 받는 내셔널지오그래픽 패딩(왼쪽·무신사 홈페이지 캡처)과 '카피 당했다'는 의견이 나오는 노스페이스 패딩(오른쪽·노스페이스 홈페이지 캡처)© News1 이은현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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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짝퉁' 제품의 경우 그 자체만으로 동일·유사 상표를 무단 사용한 데 따른 상표권 침해에 해당한다. 이 때문에 디자인 모방 여부를 따질 필요조차 없다. 반면 디자인 도용 상품을 두고 상대가 "베끼지 않았고 유행에 따라 제작한 것"이라고 주장해 버리면 소송을 해도 법적 다툼이 장기화할 수밖에 없다.

패션업계 특성상 신속한 대응과 처벌이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패션가 유행은 빠르면 두 달에 한 번꼴 변한다. 그러나 디자인 도용 관련 소송이 진행돼도 결과가 나오는 데 최소 1년이 걸린다. 항소와 상고 과정을 거쳐 3심까지 진행되면 최소 2년은 지나야 결과를 알 수 있다. 그동안 원작자의 디자인은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다. '일단 베끼고 보자'는 인식이 패션업계에 확산하는 이유다.

국내 주요 패션업체 관계자는 "현행법상 카피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등 한계가 분명히 있는 만큼 패션단체 중심으로 단속·감시 기구를 도입해 사전에 카피 상품을 관리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당연히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신속하게 카피 분쟁을 해결하는 중재 기구도 필요한 상황"이라며 "무엇보다 법적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설령 처벌을 받아도 벌금 몇백만 원만 내면 된다'는 식의 인식이 퍼져 디자인 도용이 광범위하게 이뤄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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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대 온라인 패션몰 게시판에 오른 '카피 의혹 상품'. 위와 아래 제품은 서로 다른 브랜드 상품이다. 올린 이는 "누가 먼저 (베꼈는지)?"라고 썼다.(무신사 게시판 캡처)©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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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le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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