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추럴 와인이란,
아무 것도 첨가하지 않고
아무 것도 제거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만드는 와인
내추럴 와인으로 유명한 구토가우(GUT OGGAU) 와이너리의 레이블. 병입한 와인의 상태를 남녀노소 캐릭터로 표현하기로 유명하다. 최승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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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가장 핫한 내추럴 와인 지난 3일 서울 안다즈 호텔 강남에선 ‘노벰버 내추럴 와인 페스티벌’이 열렸다. 국내 내추럴 와인 시장 활성화를 위해 마련된 행사로 마이와인즈, 카보드, 포도당, 노랑방, 크란츠코퍼레이션, 와이너, 이티씨, 나루글로벌, 모멘텀, 투플러스, 수빈셀렉션, 레이져스미스, 윈비노 등 13개 내추럴 와인 수입사가 참여해 150여 종의 와인을 소개했다. 당일 행사장에는 500여 명의 인파가 몰려들어 문전성시를 이뤘다. 도대체 내추럴 와인이 뭐길래, 휴일 정오부터 와인을 마시겠다는 사람들로 이렇게 붐빈 걸까.
글=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사진=각 업체
“이것저것 좋다는 와인들을 꽤 먹어본 편인데, 처음 내추럴 와인을 먹고는 너무 맛이 색달라서 꽤 충격 받았어요. 이게 뭐지? 그런데 마시면 마실수록 그 오묘한 맛에 중독되더라고요. 지금은 본격적으로 내추럴 와인만 마시고 있어요.”
‘노벰버 내추럴 와인 페스티벌’에서 만난 직장인 이승민씨는 스스로를 와인 매니아라고 소개했고, 그런 자신에게도 내추럴 와인은 아주 신선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행사장을 찾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옆에서 들어보니 “바디감” “탄닌” “산도” “소비뇽블랑” 등등의 용어를 자연스럽게 쓰는 것이 웬만큼 와인을 아는 듯 보였다. 그런 이들이 내추럴 와인에 대해선 이구동성으로 “역시 다르다” “신기한 맛”이라는 감탄사를 쏟아냈다.
‘내추럴 와인’이 국내에서 유행하게 된 건 불과 2~3년 전부터다. 그러니 와인 맛 좀 안다고 자처했던 사람들에게도 낯선 건 당연하다.
『내추럴 와인(NATURAL WINE)』(한스미디어)의 저자 이자벨 르쥬롱은 내추럴 와인을 “유기농법을 사용하는 포도밭에서, 병입 과정에서 소량의 아황산염을 넣는 것(아예 안 넣는 양조장도 많다) 외에는 아무 것도 첨가하지 않거나 제거하지 않고 생산한 와인이다. 즉 옛날 방식대로 자연스럽게 발효된 포도즙에 가장 가까운 것”이라고 정의했다. 말하자면 ‘아무 것도 첨가하지 않고, 아무것도 제거하지 않은 와인’이 내추럴 와인이다.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꼽히는 덴마크 코펜하겐의 '노마'가 셀렉션한 내추럴 와인 '에스코다 사나우하'. 레이블에는 양조장 근처에서 볼 수 있는 야생동물들을 그려넣었다. [사진 내추럴 와인 수입사 '윈비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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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추럴 와인 양조자들이 가장 자부심을 느끼며 강조하는 것은 ‘살아 있는 와인’이라는 점이다. 포도 껍질 등에 붙어 있는 효모와 박테리아를 제거하지 않고, 알아서 활동하도록 자연스러운 환경을 만들어주면 아주 복잡하면서도 끊임없이 변하는 변화무쌍한 와인을 만들 수 있다는 것. 건강한 포도밭에서 자란 포도는 좋은 미생물로 뒤덮여 있고, 저절로 와인은 만들어진다는 게 이들의 철학이다. 때문에 와인을 만들면서 무언가를 촉진시키고, 시간을 앞당기고, 맛을 변화시키기 위한 인위적인 첨가물과 액션은 필요 없다는 것이다.
국내 내추럴 와인 바 '에세트라'에서 맛볼 수 있는 와인들. 내추럴 와인 레이블들은 맛뿐만 아니라 레이블도 개성이 강하다. [사진 에세트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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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의 유명 내추럴 와인 바 ‘에세트라’의 방수미 대표는 “맛의 스펙트럼이 방대한 게 내추럴 와인의 매력”이라고 소개했다. “컨벤셔널 와인(기존의 통념적인 와인)이 라거 맥주 같다면, 내추럴 와인은 크래프트 맥주라 할 수 있다”며 “라거는 브랜드가 다양해도 그 맛·향·색의 폭이 정해져 있는 반면, 크래프트 비어는 만드는 자의 철학과 의지에 따라 맛·향·색·매력도 천차만별”이라고 설명했다. 내추럴 와인 수입사인 ‘다경’의 진정훈 대표는 “내추럴 와인의 매력은 생동감”이라고 했다. “와인 테이스팅 노트를 적을 때 글로 표현이 안 되는 입체적인 맛과 느낌이 있다. 컨벤셔널 와인들과 비교하면 살아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느껴진다. 전통적인 방법으로 발효된 된장과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된장의 복잡 미묘함과 깊이, 풍부함의 차이와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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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전물이 보이고 뿌옇다
내추럴 와인의 시각적 특징 중 하나가 병 속 침전물이다. 덕분에 색깔도 뿌옇고 탁해 보인다. 그런데 이는 내추럴 와인 제조법의 자연스러운 결과물이다. 투명도를 얻기 위해 첨가물을 넣거나 여과 처리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침전물을 살짝 흔들어 마시면 더 깊은 풍미와 질감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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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황산염이 뭔데?
아황산염은 항산화제 및 방부제로 사용되는 물질이다. 수확된 포도가 자연 효모에 의해 알코올 발효를 일으킬 수 있으므로 산화방지를 위해, 또 와인 운송에서의 안정성과 보존력을 위해 와인 병입 시 사용한다. 그런데 내추럴 와인 양조자들은 바로 이 아황산염을 사용하지 않는다. 와인 보존을 위해 황을 사용한 게 18~19세기부터이니 ‘원래의 전통 방법대로’를 고집하는 이들이 아황산염을 사용하지 않는 건 당연하다. 내추럴 와인 중 병입 단계에서 아주 소량의 아황산염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와인을 빨리 출하해야 할 때 사용하는 선택이다.
내추럴 와인은 숙취가 없다?
우리 몸이 알코올을 분해하는 작용의 핵심은 글루타티온인데, 이는 아황산염에 취약하다. 때문에 아황산염을 사용하지 않는(소량 넣기도 하는) 내추럴 와인이 숙취가 덜 하다는 얘기가 있다. 『내추럴 와인』에도 로마대학교 의과대학 임상영양학 및 영양유전체학과의 최근 연구가 이를 뒷받침한다고 적혀 있다. 아황산염을 넣은 레드 와인과 넣지 않은 레드 와인을 마시기 전후를 실험한 결과, 내추럴 와인의 경우 혈중 아세트알데히드 농도가 감소한다는 것. 또 인체에 유해한 나쁜 콜레스테롤도 덜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는 연구 결과다. 방수미 대표는 “내추럴 와인을 아주 많이 마신 다음날, 솔직히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말끔하진 않아도 무겁고 기분 나쁜 증상은 확실히 덜하다”고 했다.
프랑스 루아르 지역에 위치한 도멘 알렉상드르 방에서 생산하는 내추럴 와인. 국내에선 '다경'이 수입한다. [사진 다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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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거리 운송하면 변질된다?
보존제인 아황산염을 쓰지 않으니 내추럴 와인은 장거리 운송에는 안 맞는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이는 틀린 말이다. 다경의 진정훈 대표는 “와인 산업은 꾸준히 성장했고 지금은 냉장시설도 훌륭하다”며 “잘 된 발효 와인은 공기와 접촉했을 때 맛을 유지하려는 힘이 강해서 컨벤셔널 와인은 병을 따고 하루 이틀 정도 안에 다 마시는 걸 권장하지만, 내추럴 와인은 마개를 잘 막아서 냉장고에 두면 1주일까지도 보관이 가능하다”고 했다. 다만, 한국 도착 후 안정화를 위한 회복기간이 필요하다. 이는 좋은 와인 수입업자의 몫이다. 와인이 제 맛을 낼 때까지 안정되도록 기다렸다 와인을 팔아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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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 빛깔 와인의 정체는?
내추럴 와인과 동시에 유명해진 것이 ‘오렌지 와인’이다. 이는 와인을 레드·화이트·핑크(로제) 등 색으로 분류하면서 붙은 이름이다. 대부분의 화이트 와인은 투명한 색을 내기 위해 껍질·줄기·씨는 버리고 포도 알맹이만 착즙해서 만든다. 그런데 오렌지 와인은 껍질·줄기·씨까지 함께 발효시킨다. 덕분에 환타같은 노란색부터 맥주같은 적갈색까지 다양한 오렌지색을 얻을 수 있다. 조지아에선 약 8000년 전부터 오렌지 와인을 만들었다고 하니 오래 전 방식대로의 와인 제조법이긴 하다. 단, 모든 오렌지 와인이 내추럴 와인은 아니다. 양조자에 따라 배양 효모를 쓰거나 정제, 여과 과정을 따로 추가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오렌지 와인은 껍질이 함께 발효된 덕분에 타닌 맛도 강하고, 신맛도 강하다. 그래서 음식과 함께 어울렸을 때 아주 매력적이다. (주)노벰버 내추럴의 신민호 디렉터는 “화이트 와인과 레드 와인이 조합된 형태로 아로마의 스펙트럼이 아주 풍성하다”며 “무엇보다 우아한 산미가 음식을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점에서 최근 식당과 바에서 인기가 높다”고 했다.
여기가 핫플레이스, 내추럴 와인 추천 바 에세트라
지난해 오픈한 내추럴 와인 전문 바. 프랑스에서 통역가로 일했던 방수미 대표는 파리에서 가장 핫하다는 레스토랑과 바들을 방문했을 때 내추럴 와인을 처음 접하고 본격적으로 내추럴 와인 전도사가 된 케이스다. 현재 150여 개의 내추럴 와인 리스트를 보유하고 있으며, 벽 한 면을 차지한 냉장고에서 신중하게 와인 컨디션을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품질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르다. 특이하게도 실내에는 분재 화분이 가득한데 실제로 판매도 한다. 젠 스타일의 실내에서 내추럴 와인을 마실 수 있는 공간은 흔치 않을 듯하다. 점심에는 스페셜티 커피도 마실 수 있다.
내추럴 와인 바 '에세트라'. 실내 곳곳에 분재 화분을 두었는데 바라볼수록 마음이 차분해진다. 원하는 사람들에겐 판매도 한다. [사진 에세트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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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시디떼
노벰버 내추럴의 디렉터 신민호씨가 운영하는 멕시칸 레스토랑이다. 그는 내추럴 와인 중에서도 특히 오렌지 와인을 좋아한다. 부르고뉴 와인처럼 깔끔하면서도 화이트 와인보다 풍미가 강하고, 향신료가 들어간 음식들과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라시디떼가 멕시칸 레스토랑인 동시에 내추럴 와인 바, 오렌지 와인 전문 바로 유명한 이유다.
멕시칸 레스토랑 '라시디떼'. 스파이시한 멕시칸 음식과 잘 어울리는 오렌지 와인들을 마실 수 있다. [사진 라시디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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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차로
스페인에서 오랜 경력을 쌓은 이경섭 셰프가 스페인 바스크 지역의 타파스 요리를 메인으로 올해 1월 차린 식당이다. 바스크 지역은 프랑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어서 스페인 요리와 프랑스 요리의 장점을 잘 살린 음식이 발달해 있다. 이 집은 내추럴 와인으로도 유명하다. 셰프가 일일이 와인 맛을 직접 체크해 보고, 음식의 특징들에 맞춰 신중하게 페어링하는데 손님들의 만족도가 높다.
스페인 바스크 지역의 요리들을 선보이는 레스토랑 '치차로'. 셰프가 음식과 어울리는 내추럴 와인을 꼼꼼하게 페어링해준다. [사진 치차로 인스타그램] |
빅 라이츠
한남동에 위치한 빅 라이츠는 국내 내추럴 와인 전문 바로는 가장 먼저 간판을 단 곳이다. 2017년 이주희 대표가 사업 아이디어를 얻으려고 갔던 일본에서 내추럴 와인 방식으로 만든 스파클링 와인을 맛본 후 이전 계획을 모두 엎고 차렸다고 한다. 일찍부터 다양한 종류의 내추럴 와인을 접한 덕에 손님의 취향과 입맛에 따라 맞춤 추천을 잘 할 수 있다는 게 이 대표의 자부심이다. 프렌치를 베이스로 한 음식은 호주 시드니에 있는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 출신 셰프가 만든다.
내추럴 와인 전문 바로는 국내에서 처음 문을 연 '빅 라이츠'. 오랜 노하우로 고객의 취향에 맞는 와인을 추천해준다. [사진 빅 라이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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