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인싸
‘여의도 인싸’는 국회 안(inside)에서 발생한 각종 이슈와 쏟아지는 법안들을 중앙일보 정치팀 2030 기자들의 시각으로 정리합니다. ‘여의도 인싸’와 함께 ‘정치 아싸’에서 탈출하세요.
지난 1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88건의 법안 중에는 ‘새마을운동조직육성법’이라는 이름의 개정안도 있어요. 조원진 우리공화당 의원이 지난해 7월 발의한 법안으로, 새마을운동 조직이 해외협력사업을 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보조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내용이죠.
‘새마을운동’이라고 하면 누가 떠오르시나요. 아마 박정희 전 대통령을 꼽는 분들이 많으실텐데요. 내년이면 50주년을 맞는 새마을운동은 1970년 4월 ‘새마을가꾸기 운동’ 제창으로 출발, 72년 ‘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가 설치되면서 본격화됩니다. 한마디로 ‘열심히 일해서 우리도 잘살아 보자’는 취지였어요. 박정희 정부는 새마을운동의 상징인 새마을기(旗)를 각 공공기관의 기관기보다 앞서서 달도록 했고, 노태우 정부는 각급 공공기관에 반드시 게양하도록 하면서 “공직자부터 새마을정신을 함양하고 이를 솔선 실천해 나가도록 하라”는 대통령 지시도 내렸죠.
서울 중구 장충동 장충단길, 70년대 권위주의 정부 경제개발의 상징인 새마을기가 줄지어 펄럭이고 있다. [중앙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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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운동은 근면·자조·협동의 정신으로 국민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과거 권위주의 정부의 상징이자 전유물처럼 여겨져 온 것도 사실이에요. 그런데 이러한 새마을운동 사업을 국가와 지자체가 더 적극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이번 새마을운동조직육성법 개정안은 재석 의원 198명 중 찬성 188명, 반대 2명, 기권 8명으로 압도적 지지 속에 가결됐습니다. 이 법안은 조 의원 외 10명의 자유한국당 의원 서명으로 발의됐는데, 표결 결과를 보니 72명의 더불어민주당, 3명의 정의당 의원들도 찬성표를 던졌네요.
사실 문재인 정부 초기 공직사회 적폐청산 분위기 속에서 새마을운동을 적폐로 여긴다는 얘기가 많았어요. 실제 새마을운동 지원 예산 규모는 문재인 정부 출범 직전인 2016년 142억9300만원이었는데, 올해에는 4억8000만원으로 대폭 줄었습니다. 각 관공서에 걸린 새마을기를 ‘시대정신’에 맞게 내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고요. 지난해 6·13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계열 후보로는 최초로 당선된 장세용 구미시장은 취임 직후 시청 조직 중 ‘새마을과’의 명칭을 ‘시민공동체과’로 바꾸려고도 했어요.(※구미시 상모동에는 박 전 대통령의 생가가 있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오후 수원실내체육관에서 전국새마을지도자대회 참석자들과 생명살림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진영 행안부 장관, 문 대통령, 정성헌 새마을운동중앙회장.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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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최근 새마을운동에 대한 현 여권의 인식이 달라졌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이 있었어요. 지난달 29일 경기도 수원에서 열린 전국새마을지도자대회에 문 대통령이 직접 참석했는데요. 문 대통령은 축사에서 “오늘의 대한민국 밑바탕에는 새마을운동이 있다”며 “우리가 기적이란 말을 들을 만큼 고속 성장을 이루고, 국민소득 3만 달러의 경제 강국이 된 것은 농촌에서 도시로, 가정에서 직장으로 들불처럼 번져간 새마을운동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했어요.
새마을운동중앙회 회장의 이력도 눈길을 끕니다. 지난해 3월 취임한 정성헌 회장은 박정희 정부 시절 3번 구속된 민주화운동 인사거든요. 가톨릭농민회 시민운동가였던 그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을 지내기도 했죠. 그는 취임 후 생명·평화·공경·지구촌공동체라는 가치를 내세워 “새마을운동 대전환”을 선포했어요. 이에 문 대통령도 “역사적인 대전환에 나선 것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라고 격려했고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오후 수원실내체육관에서 전국새마을지도자대회에 참석한 해외 새마을운동 관계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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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운동이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과 아프리카 일부 국가에 ‘수출’되면서 한국형 공적원조 모델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상황도 여권의 시각 변화에 영향을 미쳤어요. 이번 법안 심사 과정에서 홍문표 한국당 의원은 “해외에 있는 어떤 대사가 지난번에 한국에 왔다가 나한테 전화를 주셨는데 지난번에 대통령께서 아세안 3개국 가셨을 때 그 대사들하고 부총리급들이 찾아와서 새마을 예산이 깎였으니까 새마을 예산을 좀 더 많이 달라고 대통령께 말씀을 해서, 대통령이 돌아와서 국무회의에서 그 얘기를 해 갖고 조금 살린 예산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2016년 25억3800만원이었던 맞춤형 새마을운동 지원사업(ODA) 예산은 2017년 35억4800만원으로 늘어났다가 이후 30억원대로 유지되고 있죠.
정치권에서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전국적 망을 갖춘 새마을운동 조직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란 관측도 나와요. 새마을운동중앙회의 ‘새마을지도자 및 회원 현황’(2017년 5월 기준)에 따르면 전국 새마을운동 지도자·회원은 총 206만5130명에 이릅니다. 대학생과 청년으로 이뤄진 Y-SMU(청년-새마을) 포럼 회원도 5454명이나 됩니다. 충청권 한 의원은 “새마을운동 회원이 읍·면 단위마다 50~60명 정도 된다. 선거에서 이들 조직이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는 만큼 새마을운동의 조직적 기반을 신경쓰지 않을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지난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71회 국회 제11차 본회의에서 여야 의원들이 법안 투표로 분주하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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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새마을운동조직육성법 개정안 통과는 이처럼 여야의 동상이몽(同床異夢)이 만든 ‘합의’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사족 하나. 이 법안 통과에 반대한 의원 중 한 명인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은 통화에서 “국가의 예산이 투입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처리할 땐 굉장히 신중해야 한다는 취지로 반대표를 던졌을 뿐, 새마을운동에 대한 개인 의견과는 관계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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