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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신동민의 인생영업]다양성의 힘, 앨런 튜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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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민 머크 생명공학 R&A 컨트리헤드·‘나는 내성적인 영업자입니다’ 저자] 전쟁을 2년 단축시키고 1400만 명의 목숨을 구한 사람이 있다. 그는 영국의 수학자이자 컴퓨터 과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앨런 튜링(Alan Turing, 1912~1954년)이다. 튜링은 케임브리지대학 킹스칼리지에서 수학을 전공하고,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영국으로 돌아와 연구를 하고 있었다. 1939년 2차 대전이 발발하자 정부암호학교에서 독일의 암호 체계인 에니그
이데일리

마(Enigma)를 해독하는데 성공한다. 에니그마 암호해독은 2차 대전의 분기점이 되었다고 할 정도로 전쟁 종료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2차 대전 발발 후 영국은 독일 잠수함에 무차별적으로 공격을 당해 영국과 중립국의 선박 1124척이 격침당할 정도로 수세에 몰려 있었다. 독일은 유보트(U-boat) 잠수함을 이용해 대서양 해역을 완전히 제압했다. 영국은 해상항로가 막혀 물자부족으로 점차 패전을 향해 가고 있었다. 특히 정보전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하던 영국은 독일의 암호화체계를 푸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러나 독일의 에니그마는 ‘풀 수 없는 수수께끼’라는 별칭으로 불렸을 정도로 해독이 어려웠다. 정교한 기술로 제작된 에니그마는 수만 가지의 경우의 수가 생성되어 사람의 연산으로 풀어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타자기처럼 생긴 에니그마는 전달할 문자를 타이핑하면 암화화 되고, 다시 암호화된 문자를 타이핑하면 일반 문자로 볼 수 있는 구조였다. 2200만개의 배열을 매일 바꿀 수 있을 정도의 복잡한 체계를 가지고 있었고, 그것마저도 24시간마다 새롭게 생성되는 난공불락의 암호 생성기였다. 침몰하는 독일 잠수함에서 암호화 기계 에니그마를 입수하기는 했지만, 매일 바뀌는 배열로 기계 자체를 획득한 걸로는 암호 해독에 무용지물이었다. 영국은 암호해독 없이는 대서양에서 꼼짝도 못하는 절망적인 상태였다.

마침내 영국은 독일 암호체계인 에니그마를 해독하면서 유보트의 예상위치, 진로, 목적지 등을 모두 파악할 수 있었고, 독일의 전력은 급격히 약화했다. 어쩌면 암호해독 하나가 전쟁의 운명을 갈랐다고 볼 수 있다. 암호를 완전히 해독하게 된 영국은 가짜 암호를 만들어 흘리면서 독일군을 교란했고, 마침내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실시하면서 2차 대전은 종말을 맞게 된다. 사실 독일은 암호해독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고 정보가 새어 나가는 것은 스파이 때문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에니그마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2차 대전이 끝날 때까지 독일은 자신들의 암호가 해독되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고 한다.

튜링은 암호화 과정을 역 추적하는 봄베(Bombe)를 개량하고, 암호해독용 콜로서스(Colossus) 컴퓨터와 같은 기계를 개발하면서 독일의 에니그마를 해독하는데 성공했다. 24시간마다 변경돼 해독이 어려웠던 독일군의 암호를 5시간 내에 해독할 수 있었다. 튜링은 현대의 컴퓨터와 인공지능(AI)의 개념을 수립했다. 최근 AI 사용이 활성화하면서 그의 업적이 주목 받고 있다. 하지만 그는 비운의 삶을 살다가 42세라는 젊은 나이에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심지어 군사비밀이라는 이유로 그의 존재조차 기록에 남겨지지 않았다.

천재수학자 튜닝의 이야기는 2015년 ‘이미테이션 게임’이라는 영화로 세상에 알려졌다. 또 올해 영국의 50파운드 지폐의 인물로 선정되면서 60년도 더 지난 후에 기술 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널리 인정받게 되었다.

영국은 기존의 방법으로는 에니그마의 암호를 해독할 수 없었다. 기존의 암호해독은 주로 언어학자들이 담당 했지만 튜링은 수학자였고, 인간이 하는 속도보다 빠른 기계를 개발해서 암호를 해독하려고 했다. 기존의 암호해독가들은 이러한 튜링의 시도를 마땅치 않아 했다. 정신 나간 시도로 보았던 것이다. 만일 영국이 기존의 방법으로 독일의 에니그마를 계속 해석하려고 했다면 영원히 불가능했을 것이다.

현재 시장은 엄청난 변화 속에 있다. 기존의 잘 나가던 기업들이 변화 속에서 경쟁력을 잃으면서 휘청거리고, 한편에서는 새로운 방식으로 급성장하는 기업도 나타난다. 과감한 전환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새로운 방법을 시도하더라도 결국 목표를 실현하는 것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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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의 한 장면. 영화 속 주인공 앨런 튜링(배네딕터 컴버배치 분)이 독일군 암호 ‘에니그마’ 해독을 위한 장치를 고안하고 있다.(사진=‘이미테이션 게임’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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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링은 학창시절 뛰어난 수학적 재능과 지력을 보였지만,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외톨이였다. 그는 너저분한 외모에 말을 더듬고, 남의 눈을 제대로 볼 수 없는 자폐성향도 갖고 있었다. 영국군의 암호해독방법 개발 시에도 군대내의 규칙은 모두 무시했고, 기행을 일삼았다고 한다.

우리 조직은 이런 사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지 자문을 해보아야 한다. 평범하고 동료들과 관계가 좋고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좋은 인재로 평가받고 있다면 조직의 미래를 포기하는 것이다. 같은 시기에 입사하고 비슷한 학교, 나이에 유사한 스펙을 가진 사람들로 조직이 채워져 있다면 결코 새로운 시장에 대응하는 경쟁력을 갖출 수 없다. 다양한 배경과 경험이 없으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올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글로벌 기업들이 다양성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다양성은 우리나라에서는 단순히 남녀 차별을 해소하는 정도로 이해된다. 그렇지만 세계적인 기업들은 다양성&포용성 최고 임원(Chief of Diversity & Inclusion)를 두고 경영지표(KPI)로 관리할 정도로 집중을 하고 있다. 구성원의 다양성이 기업의 지속적인 발전에 원동력이 된다고 믿는다. 즉 혁신과 매출 증대라는 기적을 만들어낸다. 보스턴 컨설팅그룹이 700개 기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인종, 연력, 성별 등 다양성이 높은 기업이 혁신성은 19%나 높고 매출도 9% 컸다고 한다. 실리콘 밸리의 기업들은 다양성을 확보한 기업들의 수익이 43%나 더 높았다.

우리의 기성세대들은 과거 교육을 통해서 단일 민족 같은 순혈주의를 교육받았다. 심지어 이질적인 것에 적대감을 품기도 한다. 학연, 지연, 혈연과 심지어 나이, 취미, 정치적 성향까지도 분류하여 동질적인 그룹과 끈끈한 연대감을 가진다. 그런데 이런 연대감 뒤에는 갈등, 혐오, 차별이 동반된다. 이런 감정적인 부분들이 다양한 의견을 수용하고 판단하는데 번번이 걸림돌로 작용한다. 우리는 미래를 위해서 튜링 같은 인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조직이 성공하는 것은 증명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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