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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상품 미끼를 꽉 문 것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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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리, 미니 가습기, 쿠션….

많은 돈을 들이지 않아도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제품들이다. 그런데 이 제품을 손에 넣으려고 커피 10여 잔을 마시고, 도너츠를 만원어치 넘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 웃돈을 주고 조기에 품절된 제품을 기어코 손에 넣는 이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식음료업계가 중심이 돼 선보이고 있는 '굿즈(goods·상품)'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이다.

식음료업계에서 특별 굿즈를 선보이는 모습이 트렌드를 넘어 일반화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똘똘한 굿즈는 브랜드 이미지를 높여줄 뿐 아니라 매출 상승도 이끈다"며 "배(취급 상품)보다 더 큰 배꼽(굿즈)을 만드는 게 업계 공통 미션으로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R&D만큼 중요해진 굿즈 기획

요즘 커피 전문점 업계에선 '굿즈 대전(大戰)'이 벌어지고 있다. 11~12월에 맞춰 커피 전문점들이 새해 한 해 동안 쓸 수 있는 다이어리를 특별 굿즈로 앞다퉈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스타벅스는 지난달 28일부터 12월 31일까지 크리스마스 시즌 음료와 리저브 음료 중 3잔을 포함해 총 17잔의 음료를 구매하고 e-스티커를 모은 고객들에게 다이어리(플래너)를 선착순으로 준다. 할리스, 공차, 엔제리너스 등도 마찬가지로 11~12월에 맞춰 다이어리를 내놓았다.

커피 전문점뿐 아니다. 던킨도너츠는 최근 영화 '사탄의 인형' 주인공인 처키 캐릭터를 활용해 만든 쿠션을 선보였고, 파리바게뜨는 인기 캐릭터 브랜드 '핑크퐁'과 협업해 우산, 방한용 귀마개 등을 내놓았다.

조선비즈

왼쪽부터 토이스토리4 컨테이너(던킨도너츠), 플래너(스타벅스), 핑크퐁 귀마개(파리바게뜨), 호빵 찜기 모양 가습기(SPC삼립), 우산(파리바게뜨). /던킨도너츠·스타벅스·파리바게뜨·SPC삼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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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즈가 일반화하면서 소비자들의 눈도 높아지고 있다. 이에 맞춰 스타벅스커피코리아는 별도의 디자인팀을 두고 있다. 스타벅스 관계자는 "미국 본사를 제외하고 전 세계 스타벅스 가운데 별도의 디자인팀이 있는 국가는 한국뿐"이라며 "어떤 국가보다 한국 소비자들이 희소성 있는 굿즈에 좋은 반응을 보인다"고 말했다. 스타벅스는 다이어리 이벤트가 시작되기 9~10개월 전부터 2명의 직원을 배치해 새 다이어리 기획에 들어간다.

엔제리너스는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인 작가 앙드레 사라이바와 협업해 유명 캐릭터 스누피를 활용한 다이어리를 내놓았고, 할리스는 디즈니와 손을 잡았다. 업계 관계자는 "어설픈 제품을 내놓았다간 오히려 브랜드 이미지만 갉아먹게 된다"며 "제품 R&D만큼이나 굿즈를 만드는 데 힘을 쏟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웃돈 얹어 거래되는 굿즈

인기 있는 굿즈는 웃돈까지 얹어져 거래되고 있다. 최근 SPC삼립은 호빵 찜기를 형상화한 미니 가습기를 한정판으로 출시해 인터넷에서 판매했는데 준비한 3만개의 상품이 1시간 만에 완판됐다. 이후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이 제품은 회사가 책정한 권장소비자가격(1만8900원)보다 비싼 2만5000~3만원에 팔리고 있다. 최근 인터넷 맘카페, 중고 거래 사이트 등에는 스타벅스 다이어리를 얻기 위해 필요한 e스티커를 판매하겠다는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업체들이 주(主)가 아니라 객(客)인 굿즈 제작에 총력을 기울이는 건 고객의 충성도를 높일 뿐 아니라 실제 매출 증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던킨도너츠가 지난 6월 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 4'에 등장하는 캐릭터(버즈)의 모습으로 간식이나 소품 등을 담을 수 있는 굿즈를 선보였는데, 3일 만에 5만개가 조기 품절됐다. 던킨도너츠 관계자는 "작은 크기의 도넛인 먼치킨 10개와 이 굿즈를 1만3900원에 판매했는데, 먼치킨 판매 수량이 전년 동기 대비 200% 이상 상승했다"고 말했다. 스타벅스는 전체 매출의 10% 정도가 굿즈 판매에서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굿즈 마케팅'의 원조로는 1979년부터 어린이 메뉴인 '해피밀 세트'를 구매하면 장난감을 주는 맥도널드가 꼽힌다. 맥도널드 관계자는 "한 점주가 어린이와 함께 매장을 찾는 고객들이 햄버거를 늘 남기는 데에서 착안해 장난감을 준 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40년 전 맥도널드가 시작한 굿즈 마케팅이 최근 한국에서 열풍을 일으키는 이유는 뭘까.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대학원장은 "제품 홍수 시대에 가장 중요한 고객 충성도를 높이기 위해 업체마다 굿즈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굿즈 열풍의 뒤에는 소셜미디어도 있다"며 "소셜미디어가 일상인 젊은 세대에 희소성 있는 굿즈를 올리는 건 또 다른 재미를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석남준 기자(namju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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