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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일사일언] 어제 뭐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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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김내현 밴드 로큰롤라디오 보컬


작년 이맘때 다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완결된 문장으로 쓰는 일기라기보다 그날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누굴 만났는지 정도를 기록하는, 사후 스케줄표라고 부르는 게 맞을 것 같다. 그날그날 잠들기 전에 간략하게 단어만이라도 적겠다고 다짐했다. 물론 이마저도 거르고 지나갈 때가 훨씬 많았다. 불현듯 메모장이 생각나 열어 보면 어느새 훌쩍 두 달이 지나가 버린 경우도 있었다. 2개월이란 시간을 통째로 도둑맞은 기분이었다. 요즘엔 밀리더라도 네댓새 정도 몰아서 적어두고 있다. 가능하면 몇 마디 생각 정도는 덧붙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어제의 기억도 가물가물한 상태에서 4~5일 정도 되는 시간을 되새기는 일은 쉽지 않다. 누군가에게 물어볼 수도 없고, 물어본다 한들 돌아오는 건 '그걸 왜 나한테'라고 반문하는 듯한 눈초리뿐이다. 그저 답을 찾을 때까지 비장한 마음으로 휴대폰 통화와 문자 목록을 훑고, 이메일을 뒤지는 수밖에. 영화 '메멘토' 주인공 심정으로 하나씩 퍼즐을 맞추어 나가다 보면 어느덧 시간표가 완성된다. 그야말로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하루였음에도 '아 맞네' '어제 그랬지' 하며 연신 무릎을 친다. 가는 곳이 뻔하고 만나는 사람이 뻔한 나의 심심한 일상에 대한 아쉬움보다는, 잊은 줄 알았던 어제를 다시금 확인했다는 사실에 새삼 안도감을 느낀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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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문득 떠오른 '어제 뭘 했지?'라는 질문에 아무런 답도 하지 못했던 그 충격을 잊지 못한다. 이 질문을 지난주, 지난달로 확장해 보니 업무상 중요하다고 할 만한 공연, 녹음, 미팅 같은 일 외엔 남아 있는 기억이 거의 없었다. 매일매일이 특별할 이유는 없지만, 기억나지 않는 날이 너무도 많다는 사실은 매우 불쾌했다.

일기를 쓰면서 나의 하루는 자그마한 이름표를 달게 되었다. 평범하기로는 별반 다를 것 없지만, 적어도 어떻게 평범한지 정도는 설명할 수 있을 만큼 특별해졌다. 지극히 사소한 이 특별함이 나는 마음에 든다.





[김내현 밴드 로큰롤라디오 보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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