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2시간, 최저임금 ‘그러나 지나치지 않게’
민생 문제는 이념 아닌 현실에 속도 맞춰야
김광현 논설위원 |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의 3대 모토는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다. 그중 소득주도성장이 간판 격이다. 이를 추진할 3가지 수단은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다. 최저임금은 2년 연속 경제성장률의 3배가 넘는 9% 이상씩 올렸다가 내년에는 2.9%로 낮췄다. 정규직화는 공기업에서 출발해 민간기업으로 확산한다는 전략이었는데 당초부터 직접 전환이 아닌 자회사 형식 전환이라는 완충장치를 가지고 갔다. 민간기업으로의 확대는 정부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다.
이번에 정부가 내년 1월 1일부터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을 적용하려던 것을 사실상 1년 유예했다. 특별연장근로요건도 재난, 사고 재해에 국한돼 있던 것에서 경영상 사유를 포함시켰다. 소주성 3가지 수단 가운데 남은 근로시간 단축에 대해 속도조절을 한 것이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현장을 파악한 결과 중소기업들이 준비가 안 돼 있었다”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이에 대해 경총과 중소기업중앙회는 불완전한 땜질 처방이라고 아쉬움을 표시했다. 민노총은 최저임금 1만 원에 이어 근로시간 단축도 포기한 문 정권 노동정책에 대해 총파업도 불사하겠다고 한다.
아쉽고 불만스럽겠지만 속도조절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현실적 여건이 안 돼 있는데 공약이라고 밀어붙였다가는 제2의 자영업 대란이 일어날 게 불을 보듯 뻔하다. 명분과 체면은 정치에서 찾고 민생이 걸린 경제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실리와 현실 위주로 갈 수밖에 없다. 마음 같아서야 시속 100km, 200km 달리고 싶어도 도로 사정이 안 좋거나 바깥에 눈비 쏟아지면 속도를 늦추는 게 올바른 이치다. 국내 경기는 이미 하강 사이클이고 세계 경기는 꽁꽁 얼어붙어 언제 풀릴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저소득층의 소득을 올려 경제적 사회적 격차를 줄여야 한다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 불평등의 대가는 경제적 약자만이 아니라 사회 공동체 전체가 치러야 한다는 걸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시위들이 보여준다. 격차 해소를 위한 정책적 노력은 당연하다. 평등의식이 강한 한국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요컨대 최저임금이나 주 52시간이나 모두 정책의 방향이 문제가 아니라 속도와 방법이 문제였다. 처음부터 신중하게 설계했으면 좋을 뻔했다. 어쨌거나 지금이라도 속도를 늦춘 건 그 자체만 놓고 보면 적절한 선택이다.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도 비슷한 지적을 하고 있다. 최근 월간 신동아 인터뷰에서 최저임금 근로시간 단축 등을 예로 들면서 “저소득층 소득을 올리는 것은 마땅히 할 일인데 그것이 경제성장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잘 모르겠다. 설명이 필요했다”고 한다. 비록 경제전문가는 아니지만 대표적인 석학이 이런 질문을 던지는데 일반인들이야 말할 것도 없지 않을까. 김 교수는 그러면서 “개념이나 이념을 하나의 가설로 생각하고 현실에 맞춰 시험하며 끝없이 수정해 달라”고 당부한다.
청와대는 임기 절반을 돌았으니 이제 성과를 보여줘야 할 때라고 한다. 성과는 심은 만큼 나온다.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 무리하게 추진하면 반드시 탈이 나기 마련이다. 학교 다닐 때 음악 시간에 한 번쯤 들어봤을 용어 가운데 ‘마 논 트로포(Ma Non Troppo)’가 있다. ‘그러나 지나치지 않게’란 뜻이다. 예를 들어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라면 ‘빠르게 그러나 지나치지 않게’란 의미다. 사자성어로 하자면 ‘지나친 것은 모자람과 같다’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경제 정책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세상 이치가 다 그런지도 모르겠다.
김광현 논설위원 kk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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